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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극복실/힐링시네마

우리들의 청춘은 이곳에 있다,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by 김핸디 2016. 7. 29.



장래엔 영화감독이 되시는겁니까?

- 영화감독은... 무리겠지

그럼 왜 지금... 영화 찍고있는거야?

- 가끔은 말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 내가 좋아하는 영화가 연결됐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정말 아주 가끔이지만... 그게 그냥 좋으니까.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中



소장입니다. 부천국제영화제에서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라는 영화를 보고왔습니다. 좋은 영화였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작품이었는데 특히 저 장면이 너무 좋더군요. 주인공이 "영화감독은 무리겠지" 라고 말하면서도 "그게 그냥 좋으니까" 라고 말할 때, 저의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나 눈물이 뚝뚝 흐르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제목처럼 키리시마라는 중심적 인물과 그 주변을 다루며 전개됩니다. 배구부 에이스이자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자애와 사귀는 키리시마. 그런 그가 갑자기 동아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학교에 나오지 않자, 친구들의 삶에는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인 것처럼 보이는 키리시마를 단 한번도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대신 그 주변의 사람들을 비추며 우리가 보내왔던 '진짜 청춘'을 이야기합니다.


생각해보니 너무 의아했습니다. 잘생기거나 예쁜 주인공. 어떤 특별한 사건에 휘말리는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그리고 한 바탕 소동끝에 성장하는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청춘영화는 대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청춘이 정말 그곳에 있었나요? 실제 우리의 청춘은 학교 교실 뒤에서 끄적이던 낙서속에서, 점심시간 친구와 나누던 대화속에서, 방과 후 동아리활동을 하던,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영화는 각자 다른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인물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비추어냅니다. 내신때문에, 라고 얼버무리지만 실제로 배드민턴 하는게 너무 좋고, 야구선수가 될지는 모르지만 매일 밤마다 배트를 휘둘러대고, '로메로 영화 본 적 있으세요?' 라며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그리고 이 진짜 '청춘의 모습' 에서 저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대로 옮겨온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그래, 나도 그랬지. 저때는 저게 내 세계의 전부였었지.


특히 인상적인 것은 히로키라는 남학생의 존재였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얼굴이 잘생겨 인기가 많은, 키리시마처럼 학교의 아이돌같은 인물. 친구들은 그를 여기저기서 찾고, 여자애들은 자기가 지나가기만 해도 꺅꺅 거리지만 그곳에 자기의 청춘은 없음을 그는 깨닫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있어, 그것에 열정을 쏟는 누군가의 하루는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중심에 있는듯 보이지만, 자신의 내면이야말로 텅 비어버린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뭐라도 된 것마냥 카메라를 들고 다니고, 시나리오를 고쳐쓰고, 촬영스케쥴을 잡고, 학교 축제때 상영한 영화를 보며 즐거워하던 그 때- 영화, 와 동아리, 라는 것이 삶의 구원처럼 느껴졌던 그 때. 지금은 그때만큼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 나의 하루를 온전히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채우는 삶을 살아가본지가 언제인지,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스포트라이트 가득했던 '누군가'의 청춘이 아닌,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소중했던 것들로 은은하게 빛났던 '우리들'의 청춘. 무엇이 되려고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가 아니라, 좋아하는 것과 내가 하는 일의 연결고리에 마냥 흐믓했던 그 시간. 그곳에 우리의 '진짜 청춘' 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겁니다. 이 영화를 보고 그 시절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졌던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