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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극복실/멘탈붕괴의 현장19

영화감독 정근섭, 실패에 또 실패를 겪었을 때 1998년 교육방송국 스태프 일을 하다가 타의적으로 나오게 됐다. 막말로 잘렸다. 그래. 차라리 잘 됐다. 하고 싶었던 영화를 한번 해보자. 연출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영화 작업을 할 수 있어 행복했다. 그러나 1년 동안 60만원으로 버텨야 했다 1년을 60만원으로 버티기 위해 무조건 안 쓰고 안 먹었다. 다행히 영화 현장에선 밥은 잘 챙겨주더라. 강철수 화백 만화 '내일 뉴스'를 각색한 시나리오를 쓴 뒤 영화사를 돌아다녔다. 곧 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다는 영화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되 그 영화사는 문을 닫았다. 희망을 가졌다. 긍정적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다음 영화사에서 내 시나리오를 좋게 봐줬다. 그 대표와 영화를 기획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하지만.. 그 대표는 병역문제로 인해 .. 2013. 8. 13.
영화감독 장항준,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졌을 때 2001년 봄 죽을 맛이다. 준비하던 이 엎어졌다. 캐스팅이라는 장벽을 뚫지 못했다. 지난 1년간 모두가 고생했는데. 믿고 따라준 스탭과 연출부들 볼 면목이 없다. 나란 놈은 지독히도 운이 없다. 스탭들과 가진 술자리. 내색하진 않지만, 속으로 피눈물을 쏟고 있다. 급기야 감성이 풍부한(그놈의 감성, 아니 술이 문제다) 연출부 한놈이 울음을 터뜨린다. 옆에 있던 제작실장도 뒤따라 흐느낀다. 씨팔…. 욕이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결국, 이대로,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는구나. 1시간쯤 지났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다. 이제 그따위 영화는 집어치우라신다. 벌써 3년째 같은 말씀이다. 서른 넘은 아들 생활비까지 챙겨줘야 하는 아버지로선 답답하기도 하실 테다. 용기를 북돋워주는 마누라와 나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 2013. 7. 12.
공지영, 남들의 시선이 두려울 때 엄마의 고3 시절을 생각해 봤어. 엄마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힘든 시기를 맞았단다. 외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셔서 하나밖에 없는 집이 차압을 당하고 우리는 그야말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던거지. 엄마의 마음을 다 줄 수 있었던 친한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버리고, 엄마가 짝사랑하던 사람은 어느 날 정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나름대로 이보다 더 불행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숨죽여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제일 힘든건 우리 집안의 사정도 아니고 유학 간 친구도 아니고 짝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도 아니었어. 그건 나의 이런 딱한 처지가 알려지게 되어서 반 아이들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가엾다는 눈치를 보내게 되었다는 거지.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마는,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나 엄마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2012. 11. 30.
노희경, 인생의 불행이 예고없이 들이닥칠 때 " 뭐 하나 되는 일이 없었어요. 글을 썼지만 엉망이라는 소리만 듣고, 지독한 연애를 한 후에 상처만 남았지요. 평생을 착하게 살아온 엄마는 암에 걸렸다는 통보를 받고... " 드라마를 쓰고 싶었지만 두려웠다. 내가 세상에 할 말이 있을까, 인간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수십 번 되뇌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사회 부적응자일지도 모른다는 자책,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눈물, 오지게도 추운 반지하방의 구들장... 노희경은 자신의 20대를 그렇게 생생한 촉감으로 기억한다. - 올댓드라마티스트 中 저는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90년대, 정말이지 왠만한 드라마는 다 보고 자랐어요. 드라마를 좋아하니까, 드라마 작가들에게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는 편인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노희경입니다. 배용준, 김혜수.. 2012.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