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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실

독버섯과 식탁의 논리

by 김핸디 2013. 8. 23.



멀고 먼 괴로운 과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반 에덴이라는 동화작가가 버섯에 관해 쓴 동화가 있는데, 내용은 이런겁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산책을 가다가 버섯을 보고 그중 하나를 지팡이로 딱 찍어서 가리킵니다.


"얘야, 이 버섯이 독버섯이다."


그때 독버섯이라고 지목을 받은 버섯이 충격을 받고 쓰러집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버섯 친구가 위로합니다. 


"너는 절대로 독버섯이 아니야.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이면 네가 얼마나 나한테 큰 도움을 주는데 너를 독버섯이라고 하다니, 말도 안 돼."


"그래도 저 사람이 나를 정확하게 딱 지목해서 독버섯이라 그랬는데..."


그러니 옆에 있는 친구가 더 이상 위로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최후로 하는 위로의 말이 이래요. 


"독버섯이라는 건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사람들이 하는 말, 이게 무슨 뜻이죠? 버섯은 버섯이 하는 말을 들어야지, 그런 뜻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식탁의 논리라는 겁니다. 먹는 버섯이냐, 못 먹는 버섯이냐, 이건 식탁의 논리인 거죠. 버섯인 우리가 왜 먹는 버섯과 못 먹는 버섯이라는 준거로 우리를 판단해야 되냐? 맞는 말이죠.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지 못하면 식탁의 논리로 자기를 판단할 수 밖에 없는 거죠. 자신의 논리로, 자신의 이유로 가야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그 먼 길을 감당할 힘이 나오질 않습니다.


- 신영복






소장입니다.


버스에서 책을 보다가 이 부분을 읽는데 꼭 눈물이 나올것 같더라고요.(공공장소라 울지는 않았어요 ㅜㅜ) 예전에 문득, 취직준비를 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 때 맨날 떨어지니까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구나...' 낮춘다고 낮춰 써도, 자꾸만 떨어지니까, 나는 진짜 별 볼일 없는 사람이구나... 이런 자괴감도 느끼고, 굉장히 위축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 때의 저는, 어떻게 보면 계속 이런 말을 듣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너는 독버섯이야.' 그러니까, 그 말에 충격먹고 쓰러져 있었던거지요.


근데 나중에 회사생활을 해 보니까... 그게 아니란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먼저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 직급이 높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나보다 잘하는 게 분명 있고 능력이 있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내가 모든 부분에서 그 사람들보다 못한 인간인건 절대 아니더라고요. 그냥 회사에서 추구하는 '그들의 논리' 에 그들이 더 적합하고, 제가 적합하지 않았던것 뿐이었지요. '너는 독버섯이야' 이건 나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그냥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그들의 논리' 였다는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많이 당당해졌습니다. 그들의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식탁은 저보고 '독버섯' 이라고 그랬는데, 다른 기준으로 바라보면 '책도 많이읽고 글도 열심히 쓰는구나' 하면서 인정받는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점이 있는게 분명 사실이긴 한데, 남들보다 뛰어난 부분도 분명 있구나 라는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은 자신감도 생기고, 누가 뭐라고 하든 별로 위축되지도 않습니다. 


넌 이래서 안 돼. 넌 이래서 아마 안 될거야. 너는 독버섯이야. 너는 쓸모없는 존재야. 아마 오늘도 숱하게 많은 식탁의 논리들이 우리를 판단하려고 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어디에서 나왔든, 어느 누구에게서 나온 것이든, 그건 '그의 기준' 이고 '그들의 논리' 일 뿐이라는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식탁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는 독버섯이야' 그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건, 그냥 그들이 하는 말일 뿐입니다. 나의 진짜 가치는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서 와야 한다는 것, 내 옆 사람의 따뜻한 진심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 뭉클한 진리를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참고. 영화 헬프 中  http://labmental.tistory.com/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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