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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실

어디까지, 내려가봤니

by 김핸디 2013. 9. 5.




소장입니다.


요즘 거의 야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기에 충분히 즐기며 하고 있지만, 가끔은 몸이 너무 피곤해서 '아 내가 꼭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였나요, 인터넷에서 이런글을 봤습니다. '밤을 새며 야근하는 지금의 일이 살면서 했던 것중에 가장 편하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앉아 일하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 간다' 충격적이더군요.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던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그 분은 그동안 몸을 쓰는 일을 하다가 뒤늦게 사무직을 갖게 된 분이시더군요. 그러니, 그분의 입장에선 사무직 야근은 여태까지 해왔던것중에 가장 쉽고 가장 편한축에 속했던 거지요.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하루종일 서서 일하기도 하고, 밤낮이 뒤바뀌어 일하기도 하니까요. 나는 퇴근하고 나면 그만이지만 내가 지나고 난 그 거리에는 다시 버스가 다니고 또 지하철이 다닙니다. 누군가는 쉬지 못하는 것이지요. 주말에도 나는 쉬어서 좋다지만 그 시간 누군가는 식당에서, 도서관에서, 카페에서, 버스에서, 영화관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밤이어도, 주말이어도, 누군가는 계속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고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한 편 봤습니다. 100kg가 넘는 고물들을 실어 나르면서도 단 돈 몇 천원, 몇 만원어치를 손에 쥐는 사람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사회적으로 괄시받는 위치에 있지만, 그럼에도 그 분들은 '내가 남한테 피해끼치지 않고 땀흘려 돈을 번다' 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해하시더군요. 심지어 어떤 분은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타인을 위해 기부하기도 하고요. 500만원씩 두 번, 한 해 천만원의 돈을 기부했다는 폐지줍는 할머니를 보고서는 무척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나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으니 나는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 라는 말을 하고 싶은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늘 자기의 먼지만한 고통도 우주처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이니까요. 하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렇게 힘겹게 일하고 그 힘겨움을 오히려 별 거 아닌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언제나 배울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성실함, 타인을 위한 마음, 따뜻함,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인간다움의 모든 면모들.


모 비행기 회사에서는 '미국 어디까지 가 봤니' 라는 말로 고객을 유혹했었지요. 저도 가능한 세계 곳곳을 다녀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건 깊게 삶을 체험해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 세계를 돌면서 나와 같은 수준의 사람들, 내가 늘 보아오던 사람들과 삶을 만나는것은 의미가 없겠지요. 반면, 이곳에만 머무른다고 하더라도 가장 밑바닥의 사람들, 극한의 삶을 사는 누군가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 깨달음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모님, 아파트, 대학교육, 사무직, 자가용, 와인, 컴퓨터,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폰 등등등... 미디어나 일상속에서 늘 접하기에 전부인것처럼 보이는 우리들의 세상들. 그러나 그것만 보인다고, 그것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해서, 세상이 그것으로만 이루어져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손 때묻은 수레, 자글자글한 주름, 누구도 돌보지 않는 아이, 노인의 구부러진 허리, 고물상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걸, 그들역시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각자의 삶의 주인공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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