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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탐사실/2013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6.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소설, <남쪽으로 튀어>

by 김핸디 2013. 6. 5.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수년 전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렇게 내 곁에 자리잡고 있다. 전설적인 투사이자 아나키스트인 우에하라 이치로. 그는 세금따윈 내지 않으며, 국가는 개인의 삶에 하등 필요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학교도 다닐 필요가 없다고 여길 정도이니, 그의 '과격함' 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리라.


그의 아들 지로는 그래서 아버지가 너무 창피하다. 사사건건 공무원들과 시비를 일으키고, 선생님에게도 찾아와 학교를 뒤집어놓고, 일은 전혀 하지 않고, 게으르고. 그러나 어쩐일인지... 엄마는 그런 아빠의 '짱팬' 을 자처할 뿐이다. 지로는 학교에서는 불량학생과의 트러블로 괴롭고, 집에 오면 아버지의 기괴함의 한숨이 나오는, 열 두살의 소년이다. 그런 지로에게, 세상은 온통 잿빛으로 우중충하다.  


이 소설은 과격파 운동권인 아버지를 창피하고 부끄러워했던 지로가, 아버지의 숨겨진 진면목을 발견하면서 가족애를 되찾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흔한 가족 소설일것 같지만, 이치로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소설을 빛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다. 이치로는 일견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무대포이지만, 한 마디를 무심하게 내뱉을 때마다 마음을 흔든다. 그는 불의에 싸우고, 정의를 추구한다. 그래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다. 그가 하는 말은 구구절절 옳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저 사람은 별나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옳은 소리를 하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이끌리곤 한다.


나는 낙원을 추구해. 단지 그것뿐이야.

- 허어, 낙원이라. 멀쩡한 어른이 그런 걸 믿어?

추구하지 않는 놈에게는 어떤 말도 소용없지.


이치로는 분명, 이상주의자다. 그러나 그의 외침이 공허하지 않은 건,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 때문이다. 그는 가족들을 억지로 끌고 남쪽섬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낙원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쓴다. 직접 고기를 잡고, 발전기를 돌리고, 또 집을 수리한다. 그는 국가나 관청으로부터 도움을 일절 받지 않는다. 오직 땀 흘리고, 그 땀의 댓가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권력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그를 괴롭히는 것은 개발의 논리이고, 자본의 논리이다. 우에하라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공권력은 그의 삶을 제압하고, 또 통제하려고 든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지로는,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성장해 간다. 그의 아버지, 이치로는 누구보다 용기있는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며, 강한 사람이었다. 아무도 부딪치지 않는 문제에 부딪치며, 힘이나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로는 계속 커져가는 키 만큼,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세상을 보는 시각도 넓어져 간다. 조금만 뒤로 떨어져 보니 아버지는 이상주의자일지언정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세상은 어느새 남쪽섬 바다처럼 온통 에머랄드 빛으로 물들어 있다. 


인간이란 모두 전설을 원하지.

그런 전설을 믿으며 꿈을 꿔보는 거야.


나에게 이 소설은, 누군가가 들려주는 '전설의 영웅담'같은 책이다. 그가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 그처럼 살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그가 있어 꿈 꾸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세상의 기준이 절대적인 무언가가 아니라는 거,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여기는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 가족이란 그저 이해하고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잿빛 세상을 쪽빛으로 물들 수 있는 존재라는 거. 나는 이 소설을 통해 배웠다. 이치로를 생각할 때마다 언제나 기분이 좋다. 이런 사람이 있어서, 젊은 시기에 이런 사람을 만나 꿈꿀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쩌면 그는 소설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결국 그것을 만나는것이 인생의 신비다. 나는 이미, 살아가면서 수 많은 '이치로들' 을 발견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