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계속...
경험은 언제나 이론을 이긴다
창업. 말 그대로 일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주어진 일도 하기에 벅찬 상황에서, 김진애는 일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그녀라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지금도 창업이라는 말에는 취직과는 비교도 안 될 만한 무게가 있다. 하물며 그녀가 처음 창업했던 20여 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그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대개 대학교수가 되었다. 일부는 다시 연구원이 되기도 했다. 박사출신 공기업 연구원. 안락한 우리를 박차고 야생으로 나온 이는 그녀 하나뿐이었다.
왜 였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가고 싶은 데가 없었으니까. 하고 싶은 일이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만들어내야지, 별 수 있나. 모든 발명은 필요에서 나온다. 필요가 곧 발명의 어머니인것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내게 일을 주지 않는다고 마냥 기다리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크건 작건,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당장 시작하면 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시작하기만 한다면, 그곳이 어디라도 직장이 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도 차고에서 시작하지 않았는가. 노트북 하나, 책상 하나만 있다면 어디서든 창업,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힘든 일이다. 돈 벌이는 요원할지도 모른다. 김진애 역시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을 창업으로 꼽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은 1순위로 ‘창업’을 꼽는다. 왜 일까. 돈 보다 값진 경험이 남기 때문이다. 그 경험에서 스스로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창업은 취업보다 훨씬 고달프고, 훨씬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환에서 사장까지, 일의 모든 것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김진애는 말한다. ‘창업은 자신의 능력을 객관화 해보고, 성공과 실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는 일, 그래서 스스로 서는 일’ 이라고. 박원순도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이라는 책에서 젊은이들에게 취업 대신 창업을 권했다. 왜 누가 일을 시켜줘야만 하나.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고 싶은 ‘거리’를 찾아서 시도해 보라고 말한다. 돈은 누가 주냐고? 아무도 안 준다. 하지만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며 앞으로 나가는 시간이 삶에 이득이 될 것은 자명하다.
경험은 언제나 이론을 이긴다.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해봤을 때,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봤을 때,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울 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람을 사귀었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하여 김진애 역시 이론보다 실무를 더 중시했왔다. 그녀가 연구직에만 머무르지 않았던 이유도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진애는 말한다. ‘내가 어느 조직에 들어가서 안온하게 자리를 유지하는 삶을 선택했더라면, 결단코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그녀의 야성은 시야를 넓히고 공간을 확장시켰다. 그리고 경험을 축적시켰다. 그것이 지금의 김진애를 만들어 낸 원동력이었다.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 바로 10여년 전 mbc에서 방영되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대장금> 이다. 주인공인 장금은 타고난 미각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헤쳐 나간다. 그런 장금에게 라이벌이 하나 있으니 바로 대대로 최고상궁을 지닌 명문가의 자제 금영이다. 금영은 타고난 재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매우 수준 있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 덕에 단연코 수랏간에서 벌어진 여러 경합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그러나 금영은 결코 장금을 이기지 못한다. 재능은 둘째 치고 경험이 바로 그 핵심 원인이다. 엘리트로 궁에서 승승장구하는 금영과는 달리, 장금은 여러 문제에 휘말려 궁 밖으로 내쳐지는 고초를 겪는다. 그리고 궁 안에서는 결코 겪지 못했을 다양한 경험들을 쌓는다. 다재헌으로 좌천되어 약재에 대해 깨우치기도 하고, 절로 차출되어 궁 안에서는 보지 못한 맛의 비법을 배우기도 한다. 장금은 늘 현장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배운다. 금영이 이런 장금을 질투하며 대뱉는 극 중 대사.
늘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알아내는 장금이의 재주는 그 아이의 머리보다는 팔, 다리에 있습니다. 해보는 것이 많고 부딪치는 것이 많기에 생겨난 재주입니다. 만약 그 아이 머리가 부러운것이라면 제가 아둔한 것이나 그 아이의 경험이 부러운 것이라면 해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삼 장금이 가진 경험의 위력을 드러내는 말이다. 대장금. 이름앞에 ‘大’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은, 그녀의 능력이나 재능보다는, 부딪쳐 겪어내고 맞닥뜨려 깨닫게 된 그녀만의 '경험' 덕분이었다.
인생은 짧다. 모험하자, 유쾌하게.
김진애가 인생의 경험으로 꼽는 것은 첫째 창업, 둘째 출마, 그리고 낙선이다. 김진애는 후배들에게 꼭 한 번 이것들을 경험해보라고 권한다. 물론 여기서 방점이 찍히는 쪽은 세번 째 ‘낙선’ 부분이다. 어쩌면 떨어져보기 위해 출마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일까. 그녀가 말하는 출마와 낙선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출마를 한다’ 는 것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을 남에게 설득해 보는 일이다. 자신이 왜 적합한지, 무엇을 위해 일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정직해져 볼 수 있는 기회다. 말하자면 출마란 가방끈, 꼬리표 다 내려놓고 사람들과 통하는 일이다.
‘낙선’은 출마보다 더욱 중요하다. 세상이 내 맘대로 안 된다는 진리,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일의 어려움, 속칭 ‘운칠기삼’ 의 속을 깨닫는 과정이다. 낙선을 통해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 출마를 '시도' 로 낙선을 '실패' 로 바꾸어도 그 의미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김진애는 지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지역구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남부럽지 않은 이력을 가진 그녀에게 낙선은 어쩌면 인생의 오점이었을 것이다. 사실 비례대표로 가는 편안한 길도 있었다. 그러나 김진애는 직접 부딪치고 선택받기를 원했다. 그랬기에 낙선이었어도 귀중한 ‘경험’ 으로 남았다. 스스로의 야성을 더욱 북돋아 준 계기가 되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내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학생 회장 선거에 출마, 낙선한 것이 그것이다. 당시에는 엄마를 붙잡고 펑펑 울만큼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묘하게도 그 때의 경험이 아직도 마음 한 켠에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모르는 이를 잡고 지지를 호소하던 모습, 구령대 위에서 왜 내가 당선 되어야 하는지를 설득하던 모습, 수십 명의 친구들이 나를 도와주며 포스터를 붙이고 선거운동을 하던 모습,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곤 한다. 그런 큰 도전을 했던 내 자신의 용기가 자랑스러워서, 꽤 중요한 실패를 겪은 뒤에도 의연함을 되찾은 내가 대견스러워서. 무엇보다 그 경험이 내게 주고간 선물은, 당선여부와는 무관하게 그런 경험을 해봤다는 '자신감' 에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부딪쳤고, 깨졌다. 그리고 꼭 그만큼, 단단해졌다.
김진애는 야성은 언뜻보기엔 고생길 처럼 보인다. 하지만 결국 삶에 가장 큰 성취와 깨달음을 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김진애는 남이 만들어놓은 길, 보기 좋은 곳에만 기웃거리지 말고, 길을 잃어보라고 권한다. 나를 뒤흔들,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길에 스스로를 내던져보라고 권한다. 김진애에겐 그것이 창업이고 출마와 낙선이었지만, 사람들마다 그 ‘길 잃기’의 모습은 다양하게 존재할 것이다. ‘어떤 누구도, 지금껏 살았고, 현재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게 될 다른 누군가와 동일하지 않다.’ 김진애가 인생의 책으로 꼽는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 나오는 말이다. 과거의 누구도, 미래의 누구도, 현재의 나를 대신해서 내게 인생의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나만이 알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나만이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나만이 알고, 내가 못하는 일도 나만이 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언제나 부딪침에서 온다. 사건과, 사람과, 환경의 부딪침에서 온다.
김진애는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어서’ 공대를 선택했고, 그 안에서 한 명의 건축가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창업을 해서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깨달았으며, 출마와 낙선을 통해 하고 싶은 일과 지키고 싶은 가치를 발견했다. 내가 걸은 만큼만 내 인생이다. 인상깊게 읽은 어느 책 제목이다. 많은 이들이 걷기도 전에 자리를 지키기에만 급급하다. 그러나 김진애는 웃으며 ‘젊은이여 야썽을 가져라!’ 고 외친다.
믿어도 될까. 선택은 자유다. 우리안에 머물거나, 우리밖으로 모험하거나. 하지만 후자를 택하게 된다면 너무 겁먹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무리 그럴듯해도 사파리는 사파리일 뿐이다. 진짜 삶은 체험이 아닌 경험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리얼’ 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뿐이다. 수 억년전 도끼하나로 자연전체를 맞섰던 강인함, 본능에 충실하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던 깡다구, 예축 불가능한 삶에 어울리는 단 하나의 특징, 바로 '야성' 이다. 언제든지 잊지 않았으면 한다. 직접 부딪치고 겪어내는 '우리' 밖의 삶이 분명 가능하다는것을. 그리고 그런 삶도 충분히 누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인생의 어느 순간,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삼키고 씩씩하게 인생을 개척해 나갈 모든 이들에게, 김진애의 진심어린 응원을 전한다. 건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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