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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 리포트] ⑭-1 '내 존재의 근간은 야썽이다' 건축가, 김진애

by 김핸디 2013. 4. 3.





#김진애의 야썽(야성)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왜 똑같이 밥을 먹는데 나만 살이 찌는지, 왜 나이들수록 시간은 더 빨리가는지, 왜 나보다 일을 못하는 동기가 승진은 먼저하는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로 의문은 늘어날 수 있겠지만 내가 유독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 사람들은 해병대 캠프 같은 것을 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다. 돈 주고 고통을 사는 꼴이라니, 대체 왜? 그냥 살아가는 것만으로 삶은 때때로 너무나 고되지 않은가.

 

현빈이 해병대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도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도대체 왜? 물론, 해병대로 가는 현빈. 멋있었다. 하지만 대중의 멋있다!’ 라는 반응을 위해 자신의 년을 혹독함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다니! 아무리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는 연예인이라도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대학시절 친구들의 국토대장정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대체, ? 평상시에는 잘 걷지도 않으면서, 굳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온 국토를 발이 부르트도록 걷겠다는 건데?

 

물론 그들의 선택에는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곤 한다. 어떤 고통은 분명 평범한 안락보다는 훨씬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가? 사실 고통은 성장과 늘 함께 온다. ‘성장통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무언가의 저항에 부딪히고 이겨내려는 순간 고통은 찾아오고야 만다. 하지만 그 고통과 한계를 넘어서면 분명히 얻는 게 있다. 수고로움이 성취감과 기쁨을 대가로 내어주는 것이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때로 고통을 선택한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픈 만큼 성숙할 것이라는 걸, 부딪친 만큼 많이 배울 것이라는 걸.

 

 

젊은이여, ‘야썽을 가져라.

 

 

건축가 김진애. 그녀 역시 삶에 정면으로 맞짱 뜨며살아 온 인물이다. 쉬운 길로 편하게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직접 부딪치는 삶을 택했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그녀만큼 우월한 간판을 달고 있는 이도 드물다. 서울대 졸업. MIT박사. 건축회사 대표.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엄친딸대열에 속하건만... 이외에도 입이 쩍 벌어질만한 타이틀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TIME지가 선정한 차세대 리더 100’> 라는 꼬리표다. 1994, 그녀 나이 불혹에 세계적인 잡지 TIME지에 김진애라는 이름이 실렸다. 빌 게이츠, F케네디 주니어 등과 함께였다. 유일한 한국인. 언론은 떠들썩했고, 사람들은 그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현명한 사람이었다. 타이틀이나 학벌이 곧 자신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TIME지 에피소드는 분명 김진애 자신에게도 흥분되고 놀라운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타이틀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만에 빠지기보단 오히려 스스로를 다 잡는 시간을 가졌다. 김진애는 그 때의 교훈을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타임>지 사건으로 하나의 시험에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지는 여러 유혹들과 시험들을 거쳐오면서 나 나름의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세우기로 했다. ‘절대로 세간에서 붙여주는 꼬리표들에 흔들려서 속 빈 강정, 빚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겠다, 내용과 내공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 남이 붙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이야기에 충실하겠다!’


남이 붙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만드는 이야기에 충실하겠다! 김진애는 다짐했다. 명성은 양날의 검이다. 꿀처럼 달지만 독처럼 위험하다. 남이 붙여주는 이야기에 연연하면 자칫 자신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김진애는 명성을 얻었으나 유혹에 흔들렸고,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녀는 의문을 던졌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라는 존재의 근간은 어디에 있는가.

 

그녀가 찾아낸 답은 야썽(야성)’ 이었다. 공대생 800명 중 유일한 여자였던 김진애. 그 도전의 심층에는 그녀만의 야성이 있었다. 익숙하고 길들여진 길을 가기보다는 거칠어보여도 가고 싶은 길을 가고자 하는 뚝심. 여자라서 안돼, 가 아니라 여자인게 뭐 어때, 로 밀어붙이는 패기. 온실속의 화초가 아닌 광야속의 잡초로, 직접 뛰어들어 배우고자 하는 그녀만의 야썽이 있었다.

 

우리의 삶은 크게 둘 중에 하나다. 야성이 있는 삶과 야성이 없는 삶. 동물원을 떠올리면 쉽다. 우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삶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그 만큼 지루하다. 제 아무리 사자나 코끼리여도 안에서 길들여지면 그 뿐이다. 발톱을 가졌으되 날카롭지 않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고, 내일이 뻔히 예상되는 오늘이다. 그래서 그들의 1년 후와 10년 후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그 안에 있으면 맹수의 공격을 받을 위험도, 음식을 구하지 못할 위험도 없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알면서도 견디고, 알면서도 선택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야성을 지니고 산다. 우리를 뛰쳐나온 동물들의 모험을 다룬 영화 <마다카스카>. 그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하나다. ‘모험하면서 살자. 위험하지만 로맨틱하게!’ 야성을 가진 삶은 위험하다. 언제 맹수의 공격을 받을지 모르고, 식량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사자는 끊임없이 사냥을 나가야하고, 순록은 죽어라 뛰어야 한다. 보호막도 없다. 한 겨울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한다. 그러나 흥미진진하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기에 매일이 놀라움과 반전의 연속이고, 무엇보다 나만의 이야기와 배움이 있다. 그래서 몇몇 이들은 알면서도 견디고, 알면서도 선택한다.

 

김진애의 삶은 의외로후자였다. 가진 배경으로는 누구보다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그녀였지만 기꺼이 우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창업. 30대 후반에 선택한 그것이 그녀가 스스로를 내던진 야성의 다른 이름이었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3년 동안 대한주택공사 연구원에서 일하며, 한계를 느끼고 활로는 안 보이는 가운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오라는 데가 없는 것은 고사하고 정말 가고 싶은 데도 없었다. 선배들이나 동료들, 친구들이 하나같이 어느 대학, 어느 연구소, 어느 회사에 가라고 조언하는 것을 듣는 데에도 점차 지쳐만 갔다. 도대체 이런 길밖에 없는 건가?

그런데 어느 새벽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가고 싶은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으면 새로 창업하면 되잖아?’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