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의 리더십
에피소드 하나.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얻은 면접자리. 좌심방 우심실이 두근두근, 터져나갈 것 같은 그 순간에 면접관이 이렇게 물었다. “일은 잘하는데 성격인 별로인 상사와, 성격은 좋은데 일은 별로인 상사가 있다면 누구랑 일하고 싶어요?” 짱구를 굴렸다. 1초, 2초. 그리고 대답했다.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업무가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신입이기 때문에 일단은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나름 괜찮은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했는데... 떨어졌다. 물론 그 답변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쉬웠던 탓일까. 유독 그 질문이 끝끝내 미련으로 남았다.
에피소드 둘.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반은 비난이고 반은 비아냥을 일삼는 사수를 만났다. 매일 매일이 지옥이었다. 소화도 잘 안됐고, 늘 위축되어 지냈다. ‘누구랑 일하고 싶어요?’ 이번엔 다른 답변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조직생활에서는 인간성이 곧 업무능력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때로 돌아가서 열변을 토하고픈 심정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자리에서 성격과 업무능력은 별개일 수 없었다.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나도 따르고 싶지 않은 상사는 멀리하고 싶었다. 그 때는 그랬다. 출근을 할 때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좋은 상사를 만나지 못한 불운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어떤 상사와 일하고 싶은가. 누구나 한번쯤은 직면할만한 질문이다. 꼭 회사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사람은 사회에 속한 이상 평생 누군가로부터 배우며 살아간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인생을 먼저 산’ 선배들에게 삶을 배우고 생활을 깨우친다. 그들은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는 나침반이 된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성장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누구를 만나야 배울 수 있고, 또 인생이 바뀔 수 있을까.
야구감독 김성근. 그는 28세에 시작해 수십여년을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SK의 사령탑으로서 3번의 승리를 이끌고, 야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뛰어난 리더라고 칭할만 하다. 그러나 그 뿐이라면 좋은 리더에 불과할 것이다. 좋은 리더를 넘어서는 훌륭한 리더, 김성근 감독을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이런 성취가 아니라 제자들과의 일화에서였다.
그의 환갑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치뤄졌다. 제자들이 사비를 모아 직접 마련한 자리였다. 그 때 그는 LG트윈스에서 해임된 상태였고, 간단한 자리라고 생각해 부인도 대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마주한 것은, 간소한 축하연이 아니라 장소가 차고 넘칠 정도로 숱하게 모여든 그의 제자들이었다. 그가 감독했던 팀의 전 현직 선수들과 코치들, 심지어 그를 해고했던 프런트의 직원들도 있었다.
이들의 모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간단했다. 존경이었다. 걸어온 길에 대한 존경, 살아온 삶에 대한 존경.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중에서도 ‘존경’ 을 받는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은 김성근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하고 있었다. 야구감독 김성근. 그는 어떤 지도자일까. 무엇 때문에 수많은 제자들이 그를 거쳐 갔고, 그를 향한 ‘존경’ 의 헌사를 아끼지 않는 것일까.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김성근 감독하면 유명한 게 있다. 가능한 선수들을 모두 등판해서 경기를 펼치는 이른바 벌떼야구다. 김성근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벌떼야구를 못마땅해 한다. 경기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김성근이 생각하는 야구란 전적으로 ‘팀 플레이’ 다. 스타플레이어가 부족한 SK를 ‘최고의 팀’으로 만든 원동력이 바로 이 ‘팀 플레이’ 에 있었다.
김성근은 선수들에게 슈퍼맨이 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각자의 장점을 살린 팀 플레이. 서로의 장점을 합쳐 최상의 것을 만들어내는 조직의 리더십을 발휘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5개를 가지고 있는 선수에게 10개를 원하면 안 된다. 5개를 베스트로 만들면 된다.’
그래서일까. 그는 선수들의 장점을 알아채는 데 무척 능한 편이다. 그가 야신보다 좋아한다는 별명인 ‘잠자리 눈깔’. 이 별명에는 선수들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알아채는 그만의 능력이 자리하고 있다. 김성근은 늘 가능성에 주목한다. 작은 장점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살려서 성장시키고자 한다.
나는 감독으로서 선수들에게 처음부터 100퍼센트를 요구하지 않는다. 30퍼센트만 되어 있다면 거기서부터 출발하면 된다. 30퍼센트를 인정하고 칭찬하면서 모자란 70퍼센트를 메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누구든 장점은 있기 마련이다. 탓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게 우선이다.
그의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 성장한 선수 중에 신윤호라는 투수가 있었다. 그는 LG에 소속된 선수로서 빠른 공에 비해 제구력이 약했다. 김성근 감독은 그의 부족한 제구력을 탓하기 보다는 투수로서의 장점을 보고 지도해 나갔다. 가장 중요한 점은 탓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것이었다. 김성근은 끊임없는 신뢰를 보여주었고, 마침내 신윤호 선수는 제구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의 감독으로서의 리더십이 위기의 한 선수를 마침내 빛나게 한 것이다. 그에게 김성근 감독은 어떤 의미 일까. 지금은 은퇴한 신윤호 선수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감독님 만나기 전까지 저는 죽은 나무였어요. 그 나무를 물주고 가꾸고 살려놓으신 거예요. 그냥 끝나는 야구 인생이었는데 야구판에 제 이름을 남겼다면 감독님 덕분이죠.’
김성근은 엄하다. 무척이나 엄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선수들에 대한 넘치는 애정이 있다. 그가 말하는 지도자의 자세는 ‘아버지’ 이다. 손자에게 마냥 잘 해주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자식의 자립을 위해 엄정하고 단호하게 대하는 아버지. 그러나 그는 매정하지 않다. 자식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기꺼이 품어 낸다. 자신의 등 뒤에 선수들을 품고,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지켜내는 강인한 아버지의 모습이 바로 그다.
사실 김성근 감독은 여러 번 해고를 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 SK에서의 일을 포함, 총 12번의 해고였다. 6개월 혹은 1년, 계약기간을 남겨둔 채 그는 구단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12번의 해고가 아니라 13번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경질은 지도자로서의 자질 부족이 아니라 구단과의 마찰 때문이었다. 그는 왜 구단과 매번 어긋나며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을까. 그 내면에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선수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리더로서의 애틋함이 있었다.
태평양 감독 시절에는 이른바 ‘각서파동’ 이라는 게 있었다. 구단에서 실적부진을 이유로 팀의 고참 선수였던 임호균을 방출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러나 김성근은 지시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선수를 위해서 ‘임호균이 5승을 거두지 못하면 벌금으로 300만 원을 내겠다’ 는 각서까지 쓰며 버텼다. 그러나 구단은 완고했다. 방해공작을 펼쳤고 분열시켰다. 김성근은 결국 그 일로 인해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LG에 있을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는 감독으로서 팀의 코치를 선임할 권한이 있었다. 그러나 구단측은 그의 권한에 태클을 걸었고 김성근은 항의하며 맞섰다. 결국 그는 다시 해임통보를 받았다. 혹시 그는 그때의 일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러나 김성근은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단호하게 말한다.
그때 내가 굽혔으면 LG감독 수명은 연장됐겠지만 리더로서는 끝이 났을 거야. 내가 옳지 않은 것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물러설 순 없잖아. 당장 눈앞의 것을 잡으려고 작은 걸 탐내면 더 큰 걸 잃게 되는거야.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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