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 이어 계속...
중요한 것은 명성이 아니라 실력이다
리더로서의 김성근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결코 사사롭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선수의 명성에 기대거나 사적인 그룹을 만들어 특혜를 주지 않았다. 감독생활을 하면서는 오랜 시간동안 혼자 밥을 먹어오기도 했다. 선수들과 사적으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다. 오죽하면 SK 감독이 되었을 때는 이미 친분이 있었던 김재현 선수를 일부러 멀리하기도 했을까. 감독은 오로지 실력으로 선수를 평가하고 지도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김성근이 오래 유지해 온 하나의 신념이었다.
사실 야구도 사람 하는 운동이라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면 정이 쌓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적인 친분은 언뜻 보기에는 좋아보일지 몰라도 선수들에게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있다. 생각해보라. 실수를 하거나 부족한 경우에도 감독이 그저 웃어넘겨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그 선수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김성근은 스스로 외로움을 감당하는 길을 택했다. 그도 사람인데 어찌 웃고 즐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리더는 외롭기 때문에 리더라는 것. 개인에게 좋지 않을지라도 조직에게 플러스가 된다면 감내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그가 가진 생각이었다.
김성근은 말한다. 리더에게는 ‘조직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사명감’ 이 필요하다고. 그렇기에 팀을 맡은 감독으로서, 그는 선수들에게도 개인이기 이전에 조직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가 에이스라고 불리는 선수들에게 무척 엄격하게 대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성근은 결코 선수의 명성과 인기에 얽매이지 않았다. LG시절, 신인왕으로 화려하게 데뷔, 숱한 안타기록을 보유했던 이병규를 2군으로 내려 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김성근은 오직 선수를 자세와 실력으로 평가하고자 했다. 그는 단호했다. 스타 플레이어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설 자리가 없었다.
실력으로만 평가한다. 언뜻 보기에는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기 힘든 기준이다. 특히 오랫동안 학연, 지연, 혈연으로 끈끈하게 뭉쳐왔던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우리 사회의 불안감과 좌절을 높이는 요소가 바로 ‘실력과는 무관한’ 평가와 판정들이다. 대학입시와 취직시험. 언뜻 보기에는 무척 공정한 것으로 보여 지는 것들에도 사실은 무수히 많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존재한다. 그 넘사벽은 때론 ‘아버지의 직업’ 이기도 하고, ‘거주지’ 이기도 하다. 어떤 몰지각한 회사는 취업원서를 쓸 때 부모님의 직업은 물론이거니와 부모님의 출신대학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나를 드러내는 서류에. 하나로 온전히 서있어야 할 성인의 ‘배경’ 을 묻는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죽어라 노력해도 별개의 외부요인으로 인해 인생의 무언가가 결정 된다는 느낌. 그것만큼 사람을 무력하게 하는 것도 없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사람은 실력보다는 인맥 같은 부분에 치중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선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차분하게 무언가에 매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오로지 ‘선수들의 실력’ 을 잣대로만 삼아왔다. 리더가 이런 식으로 자기 기준에 철저하면, 선수들은 감독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비록 훈련이 고되고 힘들겠지만, ‘내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얻어낼 수 있다’ 라는 마인드가 자연스레 생겨나기 때문이다. 노력한대로 성장하고 실력만큼 보답 받는다는 것. 그것만큼 선수들의 훈련의지를 북돋을 만한 원칙은 없다.
경쟁의 기본은 공평함이다. 공평함 속에서 이기는 거다. 그 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뭘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선수를 이름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 한순간이라도 소홀하게 야구를 대하거나, 한 번쯤 실수할 수 있다는 마음 자세로 야구를 하는 선수는 다음 번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는다. 현재의 상황 속에서 가장 맞는 사람, 그 사람이 그 순간에는 최고다.
김성근의 이러한 마인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가 SK의 최정 이라는 선수다. 그는 2005년에 입단했지만 초반에는 언뜻 불안한 성적을 비쳤다. 구단에서도 ‘성장하기 어려운 선수’ 라고 내심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그의 가능성을 믿었다. 훈련을 통해 다듬어지기만 한다면 발전가능성이 있다고 여긴 것이다. 감독은 글러브 까지 직접 선물하며 선수의 열정을 북돋았다. 그리고 그런 감독의 믿음을 선수는 배신하지 않았다. 최정 선수는 캠프 훈련 때마다 무척 열의를 보였다. 열심히 뛰었고 곧 주전선수로 발탁되었다. 마침내 4번타자로 지명된 최정 선수. 땀방울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는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김성근은 선수들을 신뢰하고 또 선수들에게 신뢰를 준다. 그의 리더십의 바탕은 모두 이러한 신뢰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일까. 그의 선수들은 경기가 안 풀릴 때나, 팀이 위기에 있을 때에도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다. 어떠한 문제가 있더라도 ‘감독님에게는 답이 있을 것’ 이라는 강력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믿고 따를 수 있다는 것. 그를 따르기만 하면 성장은 물론이거니와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큼 확실하고 믿음직한 리더의 모습이 또 어디 있을까.
한 시대가 무엇을 강조하는지를 보면 안다. 그 시대의 결핍이 무엇인지를.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던 군사정부 시절에는 유독 정의를 강조했다. 가장 정의롭지 못했기에, 정의를 상실한 시대였기에, 오히려 정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방송이나 출판계에서 꾸준히 멘토열풍이 불고 있다. 왜 일까. 같은 이유다. 멘토 열풍의 본질은, 역설적으로 본 받고자하는 어른의 부재를 드러내는 방증이다.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에 대한 갈급함을 드러내는 분명한 증거다.
김성근 감독은 이러한 시대에 단연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모름지기 리더란, 리더십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 그는 최근 한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로 자리를 옮겨 ‘패자부활전’ 을 준비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2~3년 안에 그의 밑에서 대단한 선수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아무리 꼴찌 전문 지도자라고 해도 ‘독립구단’ 에서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의심의 여지는 별로 없을 것 같다. 그가 ‘김성근’ 이니까. 이름 석자만으로도 존경하게 하는 거장이니까. 김성근 감독은 언젠가 ‘김성근가지고도 안된다.’ 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번의 기적을 써 내려갈 수 있을까. 그가 써내려온 야구의 '역사' 만큼이나 그가 만들어갈 야구의 '신화' 가 기다려진다. 야신 김성근. 그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잘한 게 있다면 그건 선수들을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거야. 다 내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여기까지 왔어. 그러니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있나. 아무리 아파도 걔들 훈련할땐 빠진 적이 없어. 그러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을 알아준 선수들에게 고맙지.
'멘탈갑추구실 > 멘탈갑 리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멘탈갑 리포트] ⑭-2 '창업과 출마와 낙선을 해 보라' 건축가, 김진애 (0) | 2013.04.03 |
---|---|
[멘탈갑 리포트] ⑭-1 '내 존재의 근간은 야썽이다' 건축가, 김진애 (0) | 2013.04.03 |
[멘탈갑 리포트] ⑬-3 '세상에 버릴 사람은 없다', 야구감독 김성근 (0) | 2013.03.19 |
[멘탈갑 리포트] ⑬-2 '노력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는 법이다' 야구감독, 김성근 (4) | 2013.03.15 |
[멘탈갑 리포트] ⑬-1 '1구 2무, 공 하나가 곧 인생전체다' 야구감독 김성근 (0) | 2013.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