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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 리포트] ⑬-1 '1구 2무, 공 하나가 곧 인생전체다' 야구감독 김성근

by 김핸디 2013. 3. 14.





멘탈갑 연구소는 제 13대 멘탈갑으로 야구감독 김성근을 선정한다.



프로필


대한민국 최초의 독립구단 고양원더스 감독.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전설의 야신. 프로야구의 세계에서 진심으로 '프로' 란 어떤것인지를 보여준 산 증인. 양준혁, 이승엽 같은 선수들이 존경하는 스승님. 어딜가나 "감독님 사랑해요!"를 몰고다니는 한국 야구계의 거목.



# 김성근의 절실함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킬만한 경험이 있다. 바로 4강 진출의 신화를 썼던 2002 월드컵이 그것이다. 그 때 대한민국은 말 그대로 미쳐있었다. 매일매일이 축제였고, 매일매일이 거대한 집회장이었다. 그 때는 정말 다들 제 정신이 아니었다. 48백만 온 국민이 모두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숨죽여 기도했고 바라고 또 열망했다. 그리고 영화처럼 포르투갈에 승리하고, 이탈리아를 꺾고, 스페인을 넘어섰다. 기적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 돌풍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매직이라고 불리웠던 사나이, 히딩크. 후에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만큼 뛰어났던 선수들의 기량. 개최국이 누리는 홈 그라운드라는 이점.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누구하나 빠질 것 없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의 간절함이 있었다. 이기고 싶다는 절실함, 이겨야 한다는 절실함, 그 간절한 마음이 결국 기적을 낳은 원동력이었다.


 

<시크릿>같은 책에서는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일이 이루어지게끔 도와준다고. 물론 순진한 생각이다. 오로지 바라고 바라는 것만으로 무언가가 이루어 질리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절실한 마음은 때때로 기적을 낳는다는 것이다. 태도의 차이가 행동의 차이를 낳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강렬하게 바라고 가지길 소망하는 사람은 그 만큼 움직이고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절실한 마음으로 연습하고, 공부하고, 매달리는 사람에게는 그 만한 대가가 찾아온다. 그게 진짜 <시크릿>같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만고불변의 우주법칙이다.


 

절실함. 이 단어를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김성근. 재일교포라는 편견을 딛고, 거장의 자리에 오른 야구감독이다. 성공한 이들이 으레 그렇지만, 그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삶의 매 순간이 말 그대로 경기였고, 늘 패배와 승리를 오가며 벼랑 끝에서 살았다. 4년 동안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김성근식 야구라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야신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하나였다. 연습, 또 연습. 그리고 그 혹독한 연습에는 순간순간에 전부를 걸어 내던졌던, 그만의 절실함이 있었다.


 

12, 공 하나에 그 다음은 없다.


 

김성근 감독이 사인을 할 때 팬들에게 늘 적어주는 말이 있다. 1球2無. 공 하나에 다음은 없다라는 뜻이다. 그는 말한다.공 한 개로 승부가 결정된다. 두 번째 공은 없다. 순간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인생은 순간의 신중함이다.’ 사람들은 흔히 야구에 인생을 비교한다.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야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9회말 2아웃부터 시작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잠깐 사이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야구다. 그렇기에 흥미롭지만 동시에 끝까지 사람을 긴장하게 한다. 패자에게는 희망이지만 승자에게는 저주가 될 수도 있는 반전의 순간. 아무리 오랜 시간 경기를 리드해왔다고 해도 마지막에 역전될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야구는 그런 면에서 정말이지 인생을 닮았다. 순간을 놓치면 다음은 없다. 흘러간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김성근은 그래서 늘 경기를 할 때마다 지독하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승부에 집착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50으로 앞서고 있다고 해서 방심하지 않는다. 철저한 승부사로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확인 사살이 승부의 기본이다. 승부는 어디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겼다고 생각할 때 패배는 다가와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태도로 인해 비난도 많이 들었다. 너무 철두철미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숱하게 보아오지 않았는가. 마지막 순간에 악당의 목숨만은 살려준 의로운 주인공이 어떻게 배신을 당하는지를. 배려와 인정은 때때로 어리석음이란 부메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 때 그러지 말걸. 후회를 하느니 확실히 매듭을 지어두는 편이 낫다.



김성근은 프로야구팀의 목표는 이기는 것이고 그 목표를 현실로 이루어내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끝까지 승리를 추구한다. 이러한 태도는 이길 때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더라도 상대에게 위협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야구는 인생과 같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점수가 크게 뒤졌다고 우리가 경기를 포기하면 팬들은 뭐가 되나. 질 때 지더라도 상대방이 끝까지 안심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떠오르게 한다. 소설 속 어부는 거대한 물고기를 잡아 오랜 시간동안 사투를 벌인다. 그러나 결국, 거대한 뼈만 매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어부의 모습에서 실패를 바라보지 않는다.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매달려 싸웠던 그 숭고한 정신의 승리를 본다. 절실한 투지에 감탄하고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에 감동한다. 작가 헤밍웨이는 소설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파괴되어 죽을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 라고. 패배할 수 없다. 김성근 감독의 지독한 절실함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김성근은 왜 이토록 절실하게 야구에 매달리는 것일까. 그의 승리에 대한 집착에는 그가 사랑하는 야구에 대한 애정과 예의가 담겨져 있다. 사실, 그의 진심이 빛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김성근은 매 경기, 매 순간에 전부를 건다. 거기에는 결코 자신의 명성이나 기업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야구는 없다. 그에게 야구는 늘 목적이다. 야구를 하는 모든 순간이 그 자체로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다. SK감독을 하던 시절, 한 선수는 “우린 1년 내내 시합 속에 있었다. 홍백전도 페넌트레이스처럼 했다. 보통 그렇게 안하는 데 우린 필사적으로 했다”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김성근에게 야구는 진지하게 다가서야 하는 매 순간 순간의 인생이다. 그러니 어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렁설렁이나 대충이란 있을 수 없다.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한편 그의 야구에 절실함이 담겨있는 이유는 그가 살아온 내력과도 관련이 깊다. 그는 재일교포였다. 가족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오로지 야구가 좋아서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이 그에게 야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혈혈단신, 가족은 물론이거니와 학연 및 지연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그는 오직 야구만 가지고 시작했다. 그래서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야구가 곧 밥벌이였고, 기댈 곳이었으며, 자신의 미래였으니까. 24시간 야구만 생각했고, 야구에만 열중했다. 일본에서 조센징이라는 편견에 휩싸였던 그는 한국에선 쪽발이라는 경멸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결과로서 실력을 입증해내는 것. 경기에 나가 이겨 보이는 것.



그의 절실함은 곧 감독으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다. 프로선수는 결과가 곧 연봉과 비례한다. 결과가 나쁘다면 어느 순간 갑자기 구단에서 내쳐질 수 있는 것도 프로의 세계이다. 김성근은 감독으로서 선수의 생명을 유지시키고 그의 미래를 열어줄 수 있는 것이 곧 승부라고 믿는다. 그래서 남들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김성근식 야구를 한다. 그는 무엇을 위해 야구하지 않는다. 오로지 야구를 위해 산다. 그래서 그 매번의 진심이 절실함을, 그 절실함이 두드러진 성과를 만들어 낸다. 사랑하는 대상에 언제나 마지막까지 신중하고, 자신을 따르는 선수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야신 김성근 감독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다른 이름이다.



팀을 나와 일반인이 돼서 보니까 가는 곳마다 나를 사랑과 관심으로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이 많은 분들도 나를 환영해 주시고,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다고 말씀을 해주셨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인간이 전력투구를 하면 그 가치를 알아주는구나 싶어서 가슴 깊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세상과 싸우며 살아오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세상과 타협하면서 살았다면 오히려 지금 더 큰 비난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