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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추구실/멘탈갑 리포트

[멘탈갑 리포트] ⑫-2 "원래 4대강은 나일, 황하, 인더스, 티그리스강 아닙니까?" 정치인 노회찬

by 김핸디 2013. 3. 4.



1편에서 계속...




유머는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방식이다.




유머는 사실 약자의 무기이다. 코미디 영화감독인 육상효는 ‘코미디는 약자의 편에 선다’ 라며 코미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도 했다.


코미디는 약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자가 아니라, 약자들이 세상을 대하고 해석하고 응전하는 방식인거죠. 액션과 스릴러는 강자들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배신을 하면 죽이겠다고 하는 복수가 스릴러라면, 배신을 해도 '난 아직도 못 잊어' 하면서 따라다니는 게 코미디죠. 다시 오면, '다시 와줘서 고마워' 하며 얼마든지 비굴해 질 수 있는 게 코미디라고 생각합니다. 약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위로받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약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위로받는 방식. 어쩌면 노회찬의 유머는 세상의 약자를 대변하는데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오랫동안 노동자로 일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농민, 사회적 소수자, 장애인 등 약자의 편에 섰다. 그의 분노는 분명했고,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지도 명확했다. 그러나 유머를 잃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그에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도덕적 피로감이라는것이 있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게 반복되면 사람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그것을 회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TV에 나와서 ‘너무 괴롭고 힘들다’ 라며 눈물로 호소한다고 치자. 사람들은 처음엔 측은지심을 느껴 성금모금도 하고 응원의 메시지도 보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 반복되면 그 고통을 감당하는 것이 어려워 아예 시선을 피하게 된다.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면서 눈물 짓고 매번 가슴을 뜯으며 함께 괴로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치병의 환자가 밝게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농담을 할 때, 장난을 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그의 아픔에 다가가게 된다. 그가 더 이상 도와줘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랬을 때 비로소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그가 낫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도와주게 된다.


노회찬이 약자를 대변하며 말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서민들 다 죽습니다’ 라고 단식투쟁을 하거나 강자를 대변하는 정권에 대해 논리적 비난을 퍼붓지 않는다. 지난 MB정권에 대한 그의 발언도 단순하다. 그런데 무척이나 힘이 있었다. 노회찬은 결코 ‘이명박 정권이 나쁘다’ 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MB정권에 대한 그의 평은 하나의 기막힌 비유였다.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흠결이 많은 사람이지만 경제만 살린다면 괜찮다, 그러니까 불이 나서 다 허둥지둥 대고 있는데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이긴 한데, 소방호스를 들고 나타났다 이거예요. 불을 꺼달라고 한 겁니다. 소방관으로 임명된 거죠. 문제는 그런데 소방호스에 나온 게 물이 아니라 휘발유였다는 겁니다.


대체 어느 누가 그의 이런 표현 앞에서 핏대를 세우고 분노할 수 있을까. 그의 말에 동의하든, 아니든 그의 말에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고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귀에 잘 들어오고, 그 말은 어느새 마음에 들어와 공명을 일으키는 것이다.




유머(Humor)는 사람(Human)을 향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유머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유머감각이 있다는 건 첫째로 여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노회찬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 때 소위 말하는 엄친아 스타일의 상대 후보에 맞서 낙선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위로를 보냈지만 동시에 외모에서 밀렸다, 라는 반 장난식의 충고도 잊지 않았다. 이에 노회찬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훈남 상대 후보의 외모에서 밀렸다. 이런 의견에 동의하십니까?

- 저희 어머니는 결코 동의하지 않습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자신의 부족한 점 마저 유머로서 극복하는 센스. 한편, 언젠가 트위터에서 한 네티즌이 헤어스타일에 지적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기도 했다.


재료가 부족해서ㅠㅠ“@ziontiger95: @hcroh 의원님께선 헤어스타일 바꾸실 의향이 없으신지요? 머리를 기르셔서 옆으로 넘기심 더 young해뵈실거 같아요. 웨이브도 약간 넣으시구요^o^”


재밌다. 정말이지 사랑스러운 사람이 아닌가. 그는 단점이나 약점에 결코 움츠려 들지 않는다. 토론에 나와서도 상대의 말을 여유롭게 맞받아 친다. 무상급식 논란이 한참이었을 때, 그가 상대방의 논리를 지적하며 건넨 발언도 무척이나 유머러스하고 유연한 표현이었다.


무상으로 복지하면 자꾸 남용한다고 강조하시는데... 산소가 무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숨 일부러 가쁘게 쉬는 사람 있습니까?


유머가 있는 사람은 당당하다. 긴장을 하지 않아야만 유머가 나오고, 긴장을 하지 않는다는건 어떤 상황이던지 맥락을 잘 이해하고 준비가 철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노회찬은 토론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퇴장하십시오’ 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기도 하고, ‘3선 의원이므로 형을 낮춘다, 오랫동안 한국경제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낮춘다, 다 이런식이에요. 솜방망이 처벌 받았어요. 그러면 직장 생활 30년 하다가 재판 받는 사람한테 국가경제를 위해 30년동안 노동자로 일해왔기 때문에, 지난 25동안 농사짓느라고 땀을 많이 흘렸기 때문에 형을 경감한다. 이런 판결 보셨습니까? 없잖아요.’ 라고 속 시원한 어록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논리는 부족할지언정 하고자 하는 말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노회찬식 화법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이다.


마지막으로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인간적이다. 유머 자체가 사람을 향한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머humor와 사람human의 철자가 비슷한 것도 예사롭게 볼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 없이 유머는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일지라도 타인에게 상처가 될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유머가 될 수 없다. 그런 이야기에는 아무도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의 상처와 아픔을 헤집기 보다는 보듬을 때 웃음은 싹틀 수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누군가가 삼층밥을 했을 때 평범한 사람이라면 ‘밥을 이따위로 하고 난리야!’ 라며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유머감각이 있는 사람은 ‘한 번에 세 종류의 밥을 짓다니 대단한걸!’ 이라며 웃어넘길 지도 모른다. 그 때 그의 힘은 실수를 한 사람에 대한 배려로부터 나온다. 실패를 실패로만 보지 않고, 단점을 단점으로만 보지 않을 때 유머감각은 비로소 싹트는 것이다.


노회찬은 가진 게 많지도 않고 승승장구의 길을 걸어온 엘리트 정치인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도 유머감각이 뛰어난 정치인이다. 그리고 동시에 약자에 대한 애정과 사람에 대한 관심을 누구보다도 깊이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날을 세우되 상처 주지 않는 방식으로 토론을 하고, 지더라도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거를 한다. 찰리 채플린은 말했다.


실망과 근심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절망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탈출구는 철학이나 유머에 의지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머리를 싸매고 철학을 할게 아니라면, 지금 이 순간. 자살률 최고, 출산률 최저의 대한민국에 누구보다도 필요한 정치인이 바로 노회찬 아닐까. 힘의 논리에 의해서 정치의 일선에서 떠난 노회찬이 벌써부터 그립다. 당분간 그를 국회에서 보긴 어렵겠지만, 언젠가 꼭 다시 만나기를... 다시 만나서 웃을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