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 이어 계속...
고미숙은 말한다. 고전은 오르기 어렵지만, 오르고 나면 삶의 활력과 존재이유를 찾게 해주는 마법과도 같다고. 마크 트웨인이던가, 그는 고전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었다. 고전이란 누구나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그런 책이라고. 맞는 말이다. 고전은 거장이 쓴 책이고, 그 거장의 사색의 깊이가 담겨 있기에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존재와 삶의 질문과 맞닿아 있다면 그 때 고전은 더 이상 머리를 싸매게 하는 고문의 도구가 아닐 것이다. 그 때 읽게 되는 고전은 현재에 매몰되어 놓치게 되는 관점들과 생각의 방향들을 제시해 줄 삶의 길잡이 일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이 먼저가 아니라 삶에서 찾고자 하는 질문과 나라는 존재가 먼저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텍스트가 바로 고전이다.
그렇다면 고전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고미숙은 고전을 통한 공부를 위해 첫째로, 스승의 존재를 강조한다. 그녀에 따르면 공부는 ‘스승과 벗을 찾아가는 네트워킹을 멈추지 않는 것’ 이다. 사실 위대한 존재들에겐 모두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김탁구 에게도 팔봉선생이 있고, 장금이 에게는 한 상궁 마마님이 있지 않았던가. 스승이 없으면 배움도 없다. 고전이 오르고 싶은 산이라면 스승은 그 산을 인도해주는 좋은 가이드이다. 혼자 오른다면 엄두가 나지 않겠지만 스승이 있다면 각오와 의지를 다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생의 스승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고미숙은 말한다.
스승을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는 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다. 평생 배움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먼저 간절히 염원하라.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고. 시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정 안 되면 책을 통해서라도 꼭 만나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사람이 셋 걸어가면 그 중에 한 사람은 스승이라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스승은 도처에 널려있다. 물론 인생을 바꿀만한 스승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앎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은 뜻밖의 장소에서 스승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니체가 말하지 않았던가. 삶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두었다, 라고. 그러니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는 자에게는, 평생을 배우고 닮아가고픈 스승이 길섶마다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에는 도서관에서 스승을 만났다. 때는 대학교 3학년 휴학시절. 도서관을 내집삼아 드나들던 어느 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강좌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제는 연극. 나에게는 무척 낯선 대상이었지만 그곳에서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강사님을 만났다. 턱을 괴고 팔짱을 끼고 있던 나는 곧 그의 열정에 감복하여 필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비로소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지적 환희! 그 날 나는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가면서 ‘아 내가 셰익스피어도 모르고 죽을 뻔 했었다니!’ 라며 벅찬 가슴을 부여잡아야만 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경험했던 첫 공부의 전율이었다.
물론 스승은 도서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승은 우리가 사는 모든 장소에서 잠재해 있다. 그러나 스승을 찾고자 하는 이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대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날 취업을 보장해주지도 않고, 사회에 나가자마자 빚더미를 안겨주는 대학이 그래도 가치가 있다면 이와 같은 만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전공과목 외에도 수많은 교양과목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지적 마주침을 제공한다. 때로 그 대상은 아일랜드 민요이고, 스페인 미술이며, 마르크스의 이론이기도 하다. 물론 배우고자 하는 능동성이 있을 때만 가능한 이야기다. 이러한 마주침을 위해서는 낯선 학문으로의 시도와 접속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앎에 대한 호기심, 앎이 삶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탐색의 과정에서 진짜 스승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진짜 공부는 시작될 것이다.
고미숙은 진정한 공부를 위해서 둘째, 동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스승이 공부라는 산을 오르게끔 도와주는 가이드라면 동료는 그 산을 지루하지 않게 오르기 위해 필요한 존재다. 이들은 같은 학문을 추구하면서 때로는 라이벌이 되어주기도 하고, 지적 자극을 주기도 하며, 내가 보지 못한 시선의 폭을 넓혀줄 수 있게끔 도와준다. 혼자 하는 공부는 괴로움일 수도 있지만, 벗이 있다면 배움은 그 자체로 놀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료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고미숙은 직접 세미나를 조직하라고 권한다.
세미나라고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왜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것이 유용할까. 하나의 책은 언제나 그 사람의 경험의 깊이만큼 읽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한 책을 읽는 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그 책을 온전히 내가 아는 지식 한에서, 나의 경험안에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거기에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가 다른 버전의 해석을 늘어놓는 거다. 그 때, 나는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그 순간 내가 얻을 수 있는 책의 대한 지식과 감동은 정확히 배로 늘어나게 된다. 물론 셋이라면 세 배, 넷이라면 네 배인 셈이다. 이러니 어찌 공부를 혼자 하고 혼자만의 지식으로만 성장하려 한단 말인가. 동료를 만드는 순간, 공부는 급속히 팽창하고 지식은 무한히 확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미숙은 이러한 공부의 즐거움으로 <열하일기>를 만나 고전평론가가 되었고, <임꺽정>을 만나 우정과 연대의 가치를 배우게 되었으며, <동의보감>을 통해 스스로의 신체를 구원하였다. 그녀에게 독서란 정확히 읽은 만큼 성장하는 투자였고, 씨를 뿌리면 수 십배로 돌아오는 ‘넝쿨째 굴러온 당신’ 이었다. 자발적으로, 스승을 찾아, 동료들과 함께 하는 공부. 하루하루 삶의 결이 달라지는 ‘인생역전’ 을 불러 일으켜 온 공부. 이쯤 되면 우리 삶에도 공부란 단어를 다시 불러올 만 하지 않겠는가. 수단을 위한 공부는 이제 그만! 찾고자 하는 질문만 명확하다면 공부는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모험이자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여정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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