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너머에서 시작한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하나의 ‘인생역전’ 이었다. 로또도 아니건만 인생역전이라니, 대체 그녀의 삶의 공동체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공동체야 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함께 살면 비빌 언덕도 많고, 당연히 물건들의 순환도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우리 연구실만 해도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2,30대 독신 회원들의 경우, 50~60만 원 정도면 한 달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다. 서울 중산층의 기준으로 본다면 거의 5분지 1도 안되는 수준이다. 오해하지 마시라. 절대 금욕적으로 살지는 않는다. 하루 종일 풍성하게 먹고, 무엇보다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런 식의 환율인하는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고미숙에게 공동체란 첫째, 생존전략이다. 그녀는 말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6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갈 수 있노라고. 놀라지 마시라. 그녀가 이야기하는 60만원 정도의 비용은 단순한 주거비가 아니다. 이 60만원이라는 돈에는 집세와 식비, 책값 및 차비까지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 고미숙이 운영하는 한 공동주택의 집세는 월 15만원 이다. 월 15만원이니 그 환경이 열악할 것 같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공동주택의 평수는 50평 가까이 된다. 몸 하나 뉘이면 숨이 막히는 쪽방이나 고시촌이 아니다. 넓고 쾌적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방법은 하나다. 함께 나누어 쓰는 것. 같이 자고, 같이 밥 먹는 것.
물론 이러한 삶이 불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개개인의 방이 익숙해진 현대인에게 이러한 공동생활은 낯선 것일 테니까.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보면 이처럼 수지맞는 주거형태가 또 없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하루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 시간 아닌가.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가,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가. 여럿이서 살아간다고 해서 그 사람들로 인해 집이 항상 분주하거나 북적 거린다는 것도 착각이다. 50평 정도 되는 공간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동주택이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집 안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누릴 수 있고, 쾌적하고도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테니까.
이러한 고미숙의 공동체 실험이 의미 있는 이유는 획기적인 생활비의 절감과 그를 통한 경제적 자유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60만원으로도 충분히 한 달을 견딜 수 있다면 6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어지니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가능하면 많은 돈을 벌기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멈춰서서 생각해보자. 돈을 왜 버는가. 생활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러나 우리의 구직활동은 대체로 필요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벌어야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취업을 하고, 이왕이면 가능한 많은 돈을 주는 곳을 선호한다. 하지만 누구나 몇 백의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욕망의 가치로 따진다면 끝이 없겠지만 필요의 가치로 따진다면 우리는 사실 이미 모두가 노동과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벌어봤자 남는 거 하나 없는데 무슨 소리냐고. 맞다. 하지만 또 틀렸다. 과연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들이 꼭 필요한 것들인가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꼭 저녁식사를 패밀리 레스토랑가서 해야 하는걸까, 꼭 명품백 들어야 할까, 꼭 DSLR카메라가 필요할까. 간디는 말했다. 우리들의 세상은 필요를 위해서는 풍족하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라고. 버는만큼 쓰는게 아니라 쓰는만큼 번다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고미숙의 공동체는 함께 나눔으로서 밥값을 줄이고, 거주비용을 절감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자유는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그만큼의 시간적 자유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허락했다. 덕분에 연령이나 사회적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었다. 대학교수와 대학도 못간 고등학교 꼴찌가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 바로 고미숙이 만들어 낸 공동체였다.
사람들이 모이니 그것만으로 큰 시너지를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고미숙에게 공동체란, 둘째 든든한 자산이다. 공동체가 자산이라니, 이 무슨 소리일까.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 살아가는 데 이만한 자산, 이만한 빽도 없음을 알게 된다.
공동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알고, 그 사람들을 사귐으로써 얻게되는 혜택이 얼마나 큰지 말로는 다 설명하기 어렵다. 간단히 말하면 일종의 사이보그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신이 타고난 능력만으로 사는 건 바보다. 타인의 능력과 제대로 접속하면 내가 지닌 능력의 몇십 배의 능력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우리 연구실에는 중국통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그 네트워크에 참여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들의 존재는 나의 잠재력이기도 하다. 사이보그의 신체가 바로 그렇지 않은가. 원하는 대로 복제하고 변이하고... 중국어 기초부터 해서 그 경지에 다다르려면 내 둔한 머리로는 아마 다음 생을 기약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친구가 내 곁에 있으면 그 능력을 언제든 마음껏 활용 할 수 있다. 일본어, 동아시아 고전, 현대철학 등도 마찬가지다. 어디 지식만 그런가. 컴퓨터, 영상, 조각, 출판 등 고난도의 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돈을 지불한다. 외국어도, 컴퓨터도, 예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고미숙은 공동체를 얻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배운다. 돈이 아니라 우정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한 사람 주변의 이러한 인재들이 모여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사람이 대체 두려울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혼자를 사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지식과 능력이 쌓아야 할 스펙이겠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내가 언제든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이 되고야 마는 것이다. 나의 지식을 나누고 타인의 경험과 역량을 빌리는 삶. 고미숙의 말마따나 친구를 가진다는 것, 공동체의 힘을 빌린다는 것은 몇 십배의 능력을 발휘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그러니 어찌 든든한 자산이며 빽이 아닐 수 있겠는가.
공동체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수유리 공부방에서 시작된 수유너머 연구실은 현재 수유너머 N, 수유너머 R 등으로 분화 및 확장되어 운영 중이며 고미숙은 현재 남산강학원에서 머물고 있다. 어느 새 10여년을 넘어오면서 고미숙의 공동체가 이토록 범위를 넓히면서 성장한 것이다. 그녀의 실험은 앞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고미숙은 이러한 공동체의 공간을 넓히고자 하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면, 나는 이 프로젝트를 더 확장하고 싶다. 꼭 서경재 형식이 아니더라도 5,6명씩 함께 살 수 있는 주택 네트워크를 모색해 볼 작정이다. 여럿이 같이 사는 공동주택들이 서로 연결되면, 그것이 곧 마을이다. 일단 마을 네트워크가 형성되면 개별 주거공간은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다. 이것이 야기하는 경제적 효과는 말할 나위도 없고, 무엇보다 지방이나 외국에서 온 방문객들이 마음 놓고 묵어갈 수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함께함으로서 비용은 줄이고 즐거움과 배움은 배로 늘려가는 변주의 공간. 언젠가 고미숙의 공간은 마을단위로 번져 나가지 않을까. 언젠가 유시민은 이런 말을 한 적이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한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 말에 빌려 표현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고미숙의 공동체가 옳다면 결국엔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이루어내는 기적과도 같은 증여와 교류의 공간. 나눌수록 풍요롭고, 배울수록 행복해지는 공동체의 힘을 고미숙은 믿는다. 그녀의 말마따나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한 것은 보험이나 노후대책이 아니라, 함께 삶을 보듬어가고 나이들어 갈 친구들이 아닐까.
노후에도 계속 쇼핑과 회식을 하고 다닐 텐가? 아니다! 노후에 필요한 건 그런 허무한 소비가 아니라 사람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곧 친구. 가족은 결코 구원처가 아니다. 노년에 집에 죽치고 있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다. 그렇다면 노후대책의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투잡을 뛰고 각종 보험을 드느니 그 돈으로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데 써야 하지 않을까? 이게 훨씬 더 경제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창조이자 증여에 해당한다. 자신의 삶에 가장 유익한 일이 세상을 향한 증여가 되는 놀라운 역설! 우리 사회도 이제 이 역설의 경제학을 기꺼이 실험해 볼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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