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회찬의 자유
자주 쓰는 말은 대개 개념이 모호하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다. 행복이 그렇고, 성공이 또 그렇다. 자유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이 쓰는 말이긴 하지만 누군가가 다가와 ‘자유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쉽게 대답해낼 재간이 없다. 기껏해야 ‘자유는 자유로운 것이지’ 라는 동어반복을 한다든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것이지’ 라는 기초적인 수준의 답변이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퉁치고 넘어간다면 다시 ‘방치와 방해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라는 개념적 구분에서부터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것’ 이 자유라면 과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라고 외쳐댈 만큼 ‘방해받지 않는 것’ 이 중요한가 라는 의문이 따라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란 무엇일까. 대체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리도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일까. ‘자유롭게 살고싶다’ 라는 생각이 유독 강하게 밀려오던 어느 시기, 책을 뒤지다가 문득 정치인 심상정이 자유에 대해 정의 해 놓은 것을 발견했다. 사뭇 고개가 끄덕여지는 자유에 대한 의미부여.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유라는 것은 ‘자기 이유’의 준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나의 이유가 분명한 선택이라면 그건 책임질 수 있는 선택, 즉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기 이유! 분명하고도 명확한 개념이었다. 개념을 정의하는 순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라는 말의 함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자기 이유가 곧 자유구나. 심상정의 다음과 같은 말은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더욱 깊은 이해를 주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나의 이유가 분명한 선택, 자기 이유가 분명한 삶, 그것이 자유로운 삶입니다. 그리고 내가 인생의 주인이고 나의 삶을 내가 주관할 수 있을 때 행복한 삶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비로소 분명한 깨달음이 들었다. 그래서 남이 시키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을 때 ‘자유롭고 싶다’ 라는 욕망을 느끼게 되었던 거구나.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나 선생님, 사회나 권력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구나. 자유를 알고 나니 자유란 가볍기보다는 무거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지고 가는 삶이기에.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삶이 곧 자유로운 삶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자유는 사람을 홀가분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누군가의 강요나 의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들어갈 삶을 보장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고대 졸업식 보다 행복했던 직업학교 졸업식
심상정의 평생의 동지인 노회찬도 이러한 자유가 누구보다도 돋보이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노회찬은 경기고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아주 낮은 곳에 있었다. 직업학교에서 용접을 배우고 실제로 공장 노동자로 여러 세월을 보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는 감옥에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좋은 대학교 나와서 공장에서 일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대체 뭐가 그렇게 신념이 투철했기에 가질 수 있는 것을 버리고 척박한 삶을 살수 있었던걸까. 하지만 이런 짐작들은 틀렸다. 그는 결코 노동운동을 하면서 무언가를 위해 ‘버티고 견뎌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길이 행복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3년 2월 전기 용접 2급 기능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런데 직업학교의 졸업식과 고대 졸업식이 같은 날짜예요. 저는 직업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해서 졸업장과 우등상장을 받았습니다. 몇 년 후 대학 졸업을 의심하는 가족들을 위해 졸업장을 받으려고 고대에 갔는데 학사과 직원이 이런 사람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요. 6개월간의 서울청소년직업학교 시절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혈육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시절에 깨달았으니까요. 이때 사귄 노동자들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며 일 년에 한 번씩 가족 동반 모임을 갖습니다.
대학 졸업식은 누구나에게 큰 의미이다. 그것은 아무리 요즘처럼 고교 졸업자의 80%가 대학을 가는 시기에도 그렇다. 하물며 명문대 졸업식은 말할 것도 없다. 부모에게는 자긍심이고, 졸업생에게는 자부심이 될 의식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노회찬은 고대 졸업식과 직업학교의 졸업식 중에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그는 그 직업학교의 졸업식을 자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기억한다. 모두에게 대학 졸업장이 동일한 가치일 수 없다. 노회찬에게도 대학 졸업장은 의미있는 것이었겠지만 그는 자신에게 물어 더 소중하고 분명한 자기 이유를 들었다. 그에게 대학 졸업장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 기술을 배우며 깊은 정을 나눈 동료들이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선택했고, 덕분에 그 날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 있었다.
영화 <리틀 미스 선샤인>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영화 속 주인공인 소녀는 미인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것이 꿈이다. 그녀는 가족들과 함께 찾은 식당에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그 모습을 본 소녀의 아버지가 소녀를 짖궂게 놀려댄다. ‘그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살이 찔테고 살이 찌면 넌 우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러자 그 아버지에게 눈을 흘기며 소녀의 어머니가 응수한다. ‘뚱뚱해지거나 날씬해지거나 이런 것들은 상관없어. 네가 무엇을 원하든지 괜찮아. 그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어.’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밤새 춤을 추고 술을 마시는 것이 인생 최고의 즐거움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책을 읽으며 밤을 새우는 것이 그 자체로 쾌락이다. 누구도 왜 너는 그렇게 삶을 사느냐고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다. 춤을 추든, 노래를 하든, 책을 읽든, 영화를 보든, 상관없다. 그것이 스스로가 원한 것이라면 괜찮은 것이다.
노회찬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래서 그 원하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다른 이들은 그에게 우려의 메시지를 보내고, 걱정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는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행복했다. 노회찬은 결코 일부러 무언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버티며 살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좋았고,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믿었기에 그 가치를 지켜 온 것이다.
그렇기에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멀리하며 살아왔다. 대표적인 것이 골프다. 하지만 그 역시 진보정치인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욕망을 검열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미지를 바꿔서 좀 세련되게 보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단호했다.
멋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은 없어요. 멋있는 건 좋은 거예요. 그러면 내가 골프를 치면 멋있어 보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면 골프를 쳤겠죠. 그런데 그렇게 안 보여지더라구.
골프가 고급 스포츠여서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멋있어보이지 않아서 선택하지 않은 것 뿐이다. 실제로 노회찬은 그리 촌스럽거나 투박한 사람이 아니다. 90년대 초반 핸드폰이 등장했을 때 먼저 구입해서 사용했던 사람이 그였고, 넷북이 등장했을 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이용하던 얼리어답터 이기도 했다. 지금은? 블랙베리와 아이폰을 양쪽에 끼고 활발하게 소통하며 IT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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