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계속...
타인에게 받는 사랑이 나의 존재 이유다.
타인이 없으면 우리의 존재 이유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를 떠나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존재 이유가 되는 사람이 내 곁에 머물지 않는다면 나도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끔 사랑하는 이를 두고도 세상을 떠난다. 왜. 사랑했으나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어떠한 반응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심리학자 토머스 조이너는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라는 책에서 자살의 원인에 대해 이렇게 분석한 바 있다. 첫째, 좌절된 소속감. 둘째, 짐이 된다는 느낌. 그렇다. 사람은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타인이 없을 때, 사랑하는 타인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렇다면 죽음이 아니라 삶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살의 원인, 정확히 그 반대를 추구하는데서 온다. 소속감을 얻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 그렇기에 강신주는 이렇게 단언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죽을 수 없습니다. 자식이 자살 안 하게 하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야, 짐 좀 들어 줘라. 엄마 힘들어 죽겠다.” 이러면 자살하려다가도 짐 들어 줘야 되기 때문에 못 죽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느낌처럼 강한 건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느낌. 영화 <헬로우 고스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족들 때문에 힘들 것 같지만 결국 힘을 보태는 것도 그 가족이다’ 라고. 누군가가 내게 기대고 도움을 요청하면 힘들 것 같지만 묘하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도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기분 좋기 때문이다. 굳이 거창하게 봉사활동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지하철역에서 누군가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기분이 좋았다면, 어린아이를 도와주고 마음이 편안해졌다면, 댓가 없이 무언가를 해주고 으쓱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그 모든 것은 그 순간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 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강신주가 철학을 통해 대중들과 만나는 이유도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철학 박사. 흔히 떠올리기 쉬운 박사의 이미지와 그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대체로 지식인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만난다. 그런데 그는 학교 밖이 주 무대다. 그도 처음에는 시간강사 생활을 했다. 그러나 강신주는 제도권을 벗어나 재야로 나왔다. 고등학생들에서부터, 주부, 회사원, 파업 노동자등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 다닌다. 강신주는 어떻게 철학이라는 학문을 들고 학문의 전당이 아닌 현실 속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자 했을까.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학생에게 받은 이 메일 한 통이 자신을 바깥으로 이끌었다고 회상한다.
그냥 ‘쿨하게’ 학점이나 잘 주면 되는데, 괜히 사회비판적 이야기를 꺼내 자기 삶을 회의하게 만드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나 혼자서 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겠구나. 나중에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스스로 자기 고민을 할 때 읽을 만한 책을 쓰는 게 낫겠다 싶었죠.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그는 그렇게 대중철학자의 길을 걷는다. 철학. 지금에야 인문학 열풍을 타고 조금씩 관심을 받고 있다지만, 그가 처음 책을 썼던 2003 년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런 걸음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2003년은 인문학 열풍은 커녕 월드컵 신화의 여운이 남아있던 때였고, 이효리나 권상우로 대변되는 몸짱 열풍이 강하게 불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자신의 철학이 진짜로 필요한 곳은 대학의 강의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현장 속에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한 걸음씩 걸어 결국 여기까지 왔다.
내가 뭔데 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까.
강신주는 지금까지 약 서른 권의 책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연을 통해서도 숱하게 사람들과 대면한다. 지금도 하루에 평균 3~4개가 넘는 강연을 하고, 그와 같은 일을 통해 1년이면 수 만명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가 이렇게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특히 고등학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며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강연을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전 아이들한테 무조건 갑니다. 때때로 강의할 때 여고생들은 울어요. 물론 아직도 왜 울었는지 납득은 안 되지만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야 됩니다. 지난번에 강의를 했는데 학교 학생 열두 명이 메모를 적어서 주더라고요.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열어 봤는데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좋다고 하더군요. 그럴 때 피로가 사라집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 그 때문이다. 강신주는 강연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살아오던 삶을 성찰하는 느낌을 받았을 때 무척이나 행복하다고 말한다. 강연 요청을 수락할 뿐인데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뭔데 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독자들을 통해, 청중을 통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 간다. 그래서인지 그의 철학은 딱딱하지 않다. 이론이 아니라 삶이 강연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청중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어떤 이는 강신주의 강연을 들으며 ‘인문학이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 라고 고백하고, 또 다른 이는 ‘어떠한 영화나 드라마보다 마음에 와 닿는다’ 라며 감탄한다.
그에게 철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고, 그래서 더 좋은 삶을 살게끔 이끌 수 있는 도구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추구해야 할 사랑의 대상이고,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만남의 재료이다. 성공회대 교수 신영복은 언젠가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정보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리이며, 소리는 앉아서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나는 곳으로 달려가야 한다’ 라고 말한적이 있다. 신영복의 말을 빌어 표현하자면 강신주는 그런 사람이다. 정보를 듣기 위해 앉아있기 보다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기 위해 달려가는 사람.
너나할것 없이 힐링을 부르짖으며 삶을 어루만지는 시대에, 강신주는 돌직구를 던지며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하지만 그 아픔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아픔이다. 진짜 성장은 고통을 통해 이루어지니까. 사람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고, 그래서 스스로를 직면할 수 있게 하는 강신주를 그래서 나는 '사랑의 철학자' 라 부르고 싶다. 그가 타인에게 전하는 모든 글과 말은, 결국,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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