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밑에 사람없다. 이 당연한 진리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법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라는 명제 앞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갸웃거린다. 평등이라는 말은 어느새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박제된 언어가 되었다. 사실상 이제 만인이 평등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던 지강헌의 외침은 시대가 갈수록 더욱 선명해졌고, 사람보다 성공, 사람보다 권력을 외치는 세상이 되어가는 게 아프지만 현실이다.
사람이 너무 흔해서 아무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세상. 노무현 대통령은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사는 세상’을 강조했다. 세상의 중심으로서의 사람, 세상의 주인으로서의 사람. 그가 꿈꿨던 세상은 단순하지만 확고한 ‘사람 사는 세상’ 이었다. 그리고 그의 오랜 동지이자 지기인 문재인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며 ‘사람이 먼저다’ 라는 슬로건을 들고 나왔다. 사람이 먼저다. 특별할 것 없는 이 한 문장에서 문재인이라는 사람을 본다. 이 하나의 문장은 문재인과 어울렸을 때 단순한 슬로건에 그치지 않는다. 사람을 중시여기고 그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문재인에게 ‘사람이 먼저다’ 라는 한 마디는 그의 삶이 녹아있는, 그의 삶을 관통하는 너무도 명확한 키워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예의
문재인은 오랫동안 변호사였다. 일반적으로 변호사하면 달변가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아니다. 대신 듣기를 잘한다.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와 눈을 마주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어린이를 만나면 기꺼이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고,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때면 무릎을 구부려준다. 청와대 민정수석 때 민원인이 찾아오면 통상 10분 정도 들어주는 게 관례였는데도, 그는 민원인의 분이 풀릴 때까지 들어주곤 했다. 경청. 이러한 태도는 그의 오랜 습관이다. 그와 함께 변호사를 같이했던 김외숙 변호사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수년 전, 우리 사무실에는 아주 질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의뢰인은 도무지 청구취지에 담길 수 없는 내용을 주문했고, 한 가지를 설득시키고 나면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 불쑥 나타나 업무를 중단시키고도 돌아서면 다시 문재인 변호사와의 통화를 요구하곤 했다. 그러나 문재인 변호사는 그 흔한 “법정 갔다고 그래!” 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찾을지언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서를 끈덕지게 듣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 문재인은 유독 예의가 돋보이는 사람이다. 그의 예의는 상대방을 가리지 않는다. 이념이나 정치색을 뛰어넘는 것이기에 더 눈에 띈다. 특히 작년에 불거졌던 새누리당 비대위 위원과의 일화는 그의 이러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작년 5월, 새누리당 비대위위원 이준석은 트위터에 문재인의 목이 잘리는 내용의 만화를 리트윗을 통한 형태로 게재했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그는 곧 사과했다. 그러나 사과하고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치명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를 두둔했다. 아래는 당시 그가 올린 트위터 멘션 내용이다.
이준석군은 제게 성의있게 사과했고, 저는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실수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겪으며 성장합니다. 좋은 경험이 됐을 것입니다. 이준석군이 그만 비난받길 바랍니다.
물론 이준석은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하며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나이차와 이준석이 한 실수의 파장을 생각했을 때, 문재인이 굳이 트위터를 통해 그를 감싸줄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사람이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비난받거나 멸시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였을까. 지난 번 총선기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서글플 때는 악수를 거절당할 때입니다. 수줍거나 바빠서가 아니라, 적대감 때문에 그런 분이 간혹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은 다른 당 후보가 내미는 손도 따뜻하게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이쯤되면 정말이지 지지자들을 괴롭히는 정치인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에게도 그렇겠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새누리당 후보란 얼마나 달갑지 않은 존재인가. 그런데도 ‘인간적으로’ 그들이 내미는 손 마저 따뜻하게 잡아주라는 거다. 문재인은 자신의 악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거나 ‘내가 누군데’ 하며 분해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느낀서글픔에서 다른 당 후보도 이렇지 않을까 하는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다.
4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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