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갑 연구소는 제 9대 멘탈갑으로 정치인 문재인을 선정한다.
프로필
18대 대통령 후보. 국회의원. 정치돌. 한국의 조지클루니. 달님. 인간 블랙홀. 한 번 빠지면 나올수가 없는.
사람이 잘 생겼으면 똑똑하지나 말든가, 똑똑하면 따뜻하지나 말든가. 잘생기고, 똑똑한데다가 따뜻하기까지 한 한국 정치역사상 전무후무한 레알 사기 캐릭터.
처음 봤다, 그런 사람. 정치라고는 고등학교 때 사회과목이었던 ‘정치’ 밖에 몰랐던 내가, 그 ‘정치’ 선생님의 <16대 대선후보 공약비교> 과제를 통해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사실 지역주의가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 그걸 깨보겠다고 고생이 뻔한 길을 걸어간 정치인이라 했다. 민주투사였던 김영삼이 군사정권의 노태우와 당을 합칠 때, 황당했지만 대세라는 이유로 대부분 그 ‘넓은 길’에 합류할 때,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이 합당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반대를 외친 몇안되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를 알아 본,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팬클럽을 가진 최초의 정치인이라고 했다. 그의 이름은 노무현이었다.
못 봤다, 그런 사람. 그를 처음 알게 된 2002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2009년까지, 단 한 번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세상에는 너무도 멋지고,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처럼 미련하게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되는 길에 사람들은 길게 줄을 늘어섰고, 그 줄은 점점 더 길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 되는 길에 뛰어들어 부딪쳐 헤쳐 나가는 사람은 그가 마지막인 듯 보였다. 그래서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절망스러웠다. 그런 사람 다시는 못 만날까봐, 그런 사람은 또 없을 것 같아서.
그런데 있었다, 그런 사람. 세상을 떠난 그의 친구라고 했다. 늘 그의 옆에서 그림자처럼 함께 있었던 사람이라 했다. 변호사도 같이하고, 결국 청와대에 입성한 그를 따라 정치도 같이하고, 그의 마지막까지 함께 지킨 사람이라 했다. 반신반의했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한 법이니까, 그림자 일뿐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들여다볼수록 반짝하고 빛이 났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서지 않는 사람, 사람들이 나오라고 소리쳐도 자기가 아니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 그러나 도저히 나서지 않으면 안될 때 단호히 앞에 나와서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사람. 그는 문재인이었다.
문재인의 소신
문재인의 이미지는 젠틀하다. 화를 낸다는 것도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한다는 것도 어쩐지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지키되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에는 자기 목소리를 낸다. 맞서 싸운다.
학창시절의 그가 반대한 것은 유신독재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불의라고 생각해 저항했지만, 문재인은 그 중에서도 선두에 나섰다. 시위에 앞장선다는 것. 그것은 곧 불이익을 정면으로 감당해내겠다는 것을 뜻한다. 도망갈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며, 아니라고 잡아 뗄 가능성을 남겨두지 않는 것이니까. 문재인은 정면으로 응시했다.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닌 것에 아니라고 소리를 높였고 그 대가로 구속과 제적이라는 홍역을 치렀다.
그렇게 감옥과 학교를 오가던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사법고시를 준비한다. 사랑하는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 고시합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침내 2차까지 합격하고 3차 면접을 남겨둔 그. 그러나 그 때 그의 소신을 시험하는 난관을 만나게 된다.
사법시험 최종 합격까지 한 번 더 고비가 있었다. 3차 면접시험이었다. 3차 면접시험은 그야말로 신원에 큰 문제가 없으면 100% 합격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면접시험을 며칠 앞두고 안기부 요원이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가 지정한 호텔에 나가 인터뷰에 응했다. 묻는 핵심은 하나였다. ‘지금도 옛날 데모할 때와 생각이 변함없느냐’ 는 것이 요지였다. 일종의 사상검증이었다. 대답하기 정말 곤혹스러웠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오갔다. 그러나 젊을 때였다.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때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생각이 변함없다”고 버텼다. 그러고는 최종 합격자 발표 때까지 그렇게 대답한 것을 후회했다. 다행히 최종 합격됐다.
사람은 언제나 궁지에 몰리면 본색이 드러난다. 잔잔한 클래식과 불꽃이 수놓는 유람선 위에서는 누구라도 쉽게 사랑을 속삭일 수 있지만, 그 배가 가라앉을 때 ‘너만은 살아다오’ 하며 구명조끼를 내밀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 때가 진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좋은 것과 옳은 것 사이에서 사람들은 대개 조금 비굴하더라도 좋은 것을 택하니까. 좋은 것 대신 옳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은 사법고시 3차 면접에서 ‘학생운동 시절과 지금 생각이 같은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 생각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변함없다’ 라고 대답했다. 후회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진심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말 한마디, 사실 얼마나 가벼운가. 과거일 뿐이라고, 대학시절의 치기였다고 해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뭔가 고급스러워 보여서 내키지 않았다
문재인은 그 후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그는 ‘인권변호사가 되려던 것은 아니었으나 맡겨진 일을 피하지 않았을 뿐’ 이라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미 사법연수원 차석 수료 후에도 고액연봉을 제시하는 로펌의 제안을 거부했던 그였다. 문재인은 국제변호사나 기업전문 변호사가 ‘뭔가 고급스러워서 내키지 않았다’ 라고 고백한다. 뭔가 고급스러워서 내키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번에 짐작케 할 수 있는 있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좋고 화려한 것을 꿈꾼다. 이왕이면 많은 돈, 높은 사회적 지위, 명망과 영화가 있는 삶. 그래서 ‘로또만이 희망이다’를 외치고 툭하면 ‘부자되세요’ 나 ‘대박나세요’를 덕담으로 주고받는다. 재벌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대중매체에 등장하고, 연예인의 삶은 끊임없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세속적 성공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일부는 못 이기는 척 하면서라도 받아들이고 만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러지 않았다. 정당하게 노력으로 얻은 달콤한 열매였지만, 그는 그것들을 ‘뭔가 고급스러워서’ 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왜 였을까. 그는 자신이 걸어온 삶을 돌아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릴 적 가난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됐다. 더 이상 가난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혼자 잘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받았던 도움처럼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자라서 학생운동을 하게 된 것도,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혼자 잘 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문재인을 관통해 온 삶의 철학이었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중의 삶을 외치던 청년 문재인은, 변호사라는 직책을 달고서도 억울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돕는 쪽을 택했다. 출세하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지만 ‘함께 사는 세상’ 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길을 선택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 유혹의 길을 뿌리치고 다른 길을 걸어가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것이 달콤한 넓은 길이 아니라 쓴 좁은 문일 때, 인간으로서 그 사람은 한 걸음의 진보를 이루어낸다. 가난하지만 돈에 휘둘리지 않았던 청년 문재인은 그렇게 남들이 만들어놓은 길이 아니라 스스로의 지도를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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