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너는 누구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자,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김정운은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고 말한다. 그는 목에다 힘을 주며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뻐기는 사람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살다보면 안타까운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람은 불과 몇 개월 몇 년에 불과한 사장, 은행장, 장관의 지위로 평생을 사는 사람이다. “저 분은 전에 무슨 은행장이었어,” “저 분은 전에 장관이었어.”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게 장관, 사장, 은행장 이후의 삶은 없다. 불과 몇 개월 몇 년의 지위로 수십 년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 자신의 노후에 만족할 리 만무하다. 잘못된 것이다. “저 분은 중국 고전 전문가야” “저 분은 민물낚시광이야” “저 분은 난초에 미친 분이야.” 그렇게 소개되는 이들은 전에 장관이나 사장을 한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하다. 진짜 성공한 사람은 노후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사람이다.
결국, 다시 재미다. 아이덴티티도 결국엔 재미로 획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로 자신을 규정하면 아이덴티티가 확고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덤으로 새삼 두려울 것이 없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 이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아이덴티티 때문이니까. 그래서 좋은 대학 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고 하고. 백수가 된다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어느 대학, 어느 직장 같은 것들은 결코 우리 자신을 설명해 주지 못한다. 우리는 어느 집단이 아니라 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춤추는 것을 유독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늘 그 아이는 몸을 흔들거리며 춤을 췄다. 보다 못한 우리가 그 친구에게 ‘그만 좀 해’ 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그 아이는 춤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교복을 입은 아이들 속에서 단연 돋보였고 단연 빛났다.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똑같은 옷을 입혀놔도, 아무리 똑같은 시간표 속에 묶어놔도, 자기만의 특색으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돋보이고야 마는. 그래서 누구하고도 바꿀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소속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사회적 지위 역시 마찬가지다. 김어준은 언젠가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태어났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김어준의 직업은 김어준’ 이다.
그렇다. 우리 모두 사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타인과 바뀔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김정운이 슈베르트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내 친구가 춤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냈듯이, 우리 모두에게도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 가만히 자기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자.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어떠한 인간관계도 내려놓고, 한 번 스스로에 대해 묘사해보자.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한다면 나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내가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대체 나를 어떻게 그려낼것인가.
나는 나다.
다시 다이어리를 들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해본다. 나이, 성별, 관계, 사회적 지위를 모두 지우고. 나는... 그러니까 나는....
강신주의 강연과 정여울의 글을 좋아하는. 서점에만 가면 심리학 서고에서 발길을 멈추고 책을 뒤적이는. 오락실에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리듬게임 펌프를 즐기고 하루 세끼 떡볶이를 먹고도 살 수 있는. 아일랜드 민요 Danny Boy를 백번이고, 천번이고 들을 때마다 감동하는. 5월의 광주를 생각하면 눈에 눈물부터 고이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의 대사를 줄줄 외는.
그런 사람이다.
백명이면 백명에게 캐릭터가 있고, 천명이면 천명에게 각자의 캐릭터가 있다. 어떠한 소속이나, 사회에서 강요하는 분류는, 그러므로 결코 내가 아닌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라는 질문에 사회적 지위로만 대답한다면 당신은 아직 당신이 아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가장 행복한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나를 울렸던 영화 속 캐릭터는 누구였는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당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것들이야 말로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혼이 바뀐다고해도 주변 사람들이 알아 볼만한 나만의 고유한 특질이기 때문이다.
김정운은 재미를 통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할 것을 권한다. 재미있게 인생을 사는 사람은 곧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기도 하니까.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쉬이 타인의 말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니까. 돈을 좀 못 벌어도, 취업을 못하거나 실직을 했어도, 실패나 실수를 해도, 그렇다고 내 본질이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나라는 특성은 불변하는 거니까.
집단에 휘말려, 남들을 따라서, 스스로를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이다. 그러나 기억하자. 내가 있어야 타인이 있고, 그제서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있어야 꿈이 있고, 비로소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있어야 사회도 있고, 그 안에서 역할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자기를 아는 것. 자기 자신을 분명히 아는 것. 김정운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두번째 교훈이다. 우리 모두에겐 지금, 장발장의 외침이 필요하다. Who am I?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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