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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 리포트] ⑩-1 "세상에 정 붙이는 방법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철학자, 강신주

by 김핸디 2013. 2. 7.




멘탈갑 연구소는 제 10대 멘탈갑으로 철학자 강신주를 선정한다.


프로필

'무려' 철학박사. 그러나 행색은 여름엔 반바지, 비 오는날에는 선글라스. 안 어울리게 귀여운 프린트의 티셔츠를 즐겨입는 반전남. 철학이 삶에 얼마나 밀접한지를 보여주는, 알려주는, 유일무이한 대중철학자. 들을 때마다 감탄하고 마음을 콕콕 쑤셔대는 강연의 달인. 인상쓰면 무섭고, 웃으면 한 없이 귀여운 인문학계의 아이돌.



멘탈갑 리포트, 강신주 편. 

"세상에 정 붙이는 방법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유서를 써 본적이 있는가. 철학자 사르트르는 언젠가 누구라도 자신이 꼭 필요한 인간이라고 느끼는 자는 더러운 자다라는 말을 남겼다. 살다보면, 한 번쯤은 내가 왜 사나, 살아 무얼하나, 라는 생각이 불현 듯 찾아올 때가 있다. 오래 공들이던 일에 실패했을 때, 죽고 못 사는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 또 다른 나인 가족이 죽었을 때, 앞으로 살아갈 날이 고통뿐이라고 여겨질 때.

 

실제로 우리나라 10대에서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다. 10대들은 성적을 비관하여 목숨을 끊고, 20대는 취업, 30대는 신세를 한탄하며 숨을 거둔다. 하지만 어찌 사람이 스스로 삶을 마감한 이유가 그리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겠는가. 외로움, 우울증, 경제적 어려움, 상실감, 불안, 질병, 등등.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저마다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래서 저마다 각각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또 사람들은 살아간다. 아무리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이다. 딱히 사는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태어났기에 삶을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문득 이제 살날이 3개월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라는 의사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우리가 이 삶을 아쉬워 할 것이라는 것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을 것이라는 것을. 이 지긋지긋하고 별 볼일 없는 일상이 축복이었음을 알고 감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삶의 존재 이유는 타인에게 있다.

 

 

철학박사 강신주. 그를 만나기 전까지, 철학이라는 건 삶과 가장 거리가 먼 학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리학도 아니고, 취직에 유용할 것 같은 경영학도 아니고, 예술적 감수성을 마구 발산할 수 있는 문학이나 예술도 아니고, 철학이라니. 대체 삶의 어떤 부분에서 철학을 써먹는단 말인가.

 

그러나 강신주를 만나고 비로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직면하게 되는 나는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사는가. 강신주는 사람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변한다.

 

삶의 이유를 여러분 자신한테 찾으면 무조건 망가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되고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작품처럼 우리 자신은 가볍습니다. 언제 무거워지냐면 사랑하는 사람을 목마 태우듯이 어깨에다 짊어질 때입니다. 그럼 무거워집니다. 그 무거움이란 건 내가 원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때문입니다. 그러면 의외로 가는 길이 가벼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인류를 메고 가기도 합니다. 여러분 자신한테 삶의 의미와 이유를 찾지 마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증발합니다. 힘은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나옵니다.

 

타인. 강신주의 대답은 명료하다. 우리가 살아야하는 이유는 타인, ‘우리가 사랑하는 타인때문이다. 사실 타인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것을 다 가진다해도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타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표류된 톰 행크스가 가장 집착하는 대상도 바로 배구공으로 얼기설기 만들어 낸 윌슨이라는 타인이었다.

 

강신주에게 삶의 의미를 준 것도 바로 이러한 타인이다. 그는 니체를 사랑했다. 스피노자도 사랑했다. 그리고 정신적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시인 김수영을 유독 사랑했다. 김수영은 그에게 무척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김수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저의 삶은 김수영이 넘어진 그곳에서 일어서겠다는 발버둥에 다름 아니었어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비겁해지려고 할 때마다 혹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질시를 받을 때마다, 김수영의 시를 읽었고 그로부터 많은 격려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김수영은 그저 낭만만을 노래하는 한국문학에서 시대의 질곡을 온 몸으로 살아낸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무늬를 그려냈고 강신주는 김수영이 가진 그 고유성을, 그 살아있음을 사랑했다. 그에게 김수영은 수많은 시인중의 하나가 아니라, 인생을 통틀어 다른 누군가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그렇게 강신주는 평생 김수영을 통해서 위로 받았고, 그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 아닌 오직 '너' 뿐이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삶에서 의미 있는 타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내가 아닌, 타인. 그러나 나를 있게 하는, 타인. 강신주는 이러한 타인의 존재를 라고 지칭한다. ‘는 누군가로 대체될 수 없는, 수많은 존재들 중의 하나인 그들과 분리되는 존재이다. 나와 처음 맞닿은 타인이 그들중 하나라면, 나와 관계를 맺고 나에게 다가와 결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는 타인이 바로 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로 지칭되는 타인의 존재는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나한테 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나와 너는 같이 가는 거니까. 나를 제외하고 다 그들이면 여러분은 존재 이유가 없는 거에요. 여러분이 굳건하게 살아있다면 사랑받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가 있다는 거죠. 여러분이 사회에서 생각하는 가치들, 즉 일등을 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여러분의 존재를 확고하게 보장하지 않아요. 여러분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살아있는 행복은 가 있는 것에서 찾을 수 있어요. 친구든 애인이든 아니면 어떤 시인이든 책이든, 꼭 찾으셔야 돼요. 사랑하는 를 꼭 찾으시기 바랍니다.

 

타인이 있어야 내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주고 이해해주지 않는 이상, 나는 이 세상에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함께 웃고 떠들며 식사할 사람이 없는 세상,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는 세상, 나의 성장을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없는 세상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에서 주인공 차태현이 자살을 시도하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가족이 없던 그는 어린이날에도, 어버이날에도, 졸업식에도 너무나 외로웠다. 존재하면서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거쳐 간 곳만 있을 뿐 있었던 자리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그는 결국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단 한 사람. 그렇게 사랑은 진부하지만 힘이 세다. 벼랑 끝에 서 있던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인 것이다.

 

그래서 강신주는 사랑을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강권한다. 물론 꼭 사랑의 대상이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학문일 수도 있고, 영화나 음악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사랑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고독하지 않다. 그는 소외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좋아하고 열중할 것이 있다면 그 자체로 우리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 진다.

 

국제사회복지사로 활동하며 작은 거인이라 불리는 김해영은 어렸을 때 부모님의 학대와 몸의 통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자 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던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하늘의 떠 있는 별이었다. 매일 매일 언제든 하늘만 쳐다보면 그 자리에 있는 별.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하늘을 바라보는데 별이 너무 아름답더라고요. 이대로 죽으면 별도 다시는 못 볼테고... 나만 손해 보는 거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그렇다. 사랑할 대상은 도처에 널려있다. 그게 별이어도, 나뭇잎 하나여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여도 괜찮다. 지금 이 순간,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으면 된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은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살아야 할 이유가 그 자체로 충분하다강신주는 그래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사랑하라고. 사랑하는것을 만들어 내라고.

 

여러분 사랑하세요. 음악이든, 꽃이든, 사람이든, 영화든 상관없어요. 사랑하는 게 없다면 여러분은 불행하게 사신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사랑하는 걸 만드세요. 세상에 정 붙이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