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입니다. 갑자기 지난번에 뉴스에서 봤던 내용을 반추해보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최근 뉴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입니다. '10억이 생긴다면 감옥도 갈 수 있나' 라는 질문에, 초등학생은 12% 고등학생은 무려 44%가 그렇다라고 응답을 했다고 하네요. 언론은 이 설문조사를 토대로 '배금주의' 니 '윤리 도덕성 저하'니 하고 떠들어댔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저도 이 질문에는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감옥은 '나쁜일을 하면 가는 곳' 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10억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냐' 하는 질문과는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다릅니다.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프레임적로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10억이 생기면 감옥도 갈 수 있나' 라는 질문에서 감옥에 가는 범죄상황들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는 힘든반면, 10억이라는 숫자는 너무 구체적입니다. 제가 Yes라고 대답할 수 있을것 같다고 한 이유도 '감옥에 간다' 라는 것이 어떠한 범죄행위나 남에게 끼치는 피해로 연결되기보다는, '내가 1년만 고생하면 된다' 라는 자기 희생적 의미로 먼저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프레임을 바꿔서, '10억을 주면 사람을 죽일 수 있나' 라고 묻는다거나 '10억을 주면 주가조작을 할 수 있나' 라고 묻는다면상황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10억이 아니라 100억을 줘도 그런 파렴치한 짓은 못한다 이놈아! 라고 외치며, 비분강개한 표정으로 질문자를 노려볼테지요. 사람을 뭘로 보고! 라며 씩씩대면서요. 아마도 질문의 프레임이 이렇게 바뀌었다면, 중고등 학생들의 응답률도 지금보다는 현저히 낮은 비율로 떨어졌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감옥에 감으로써 빼앗길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감옥에 가면 일단 '가족들과 자유롭게 만날 자유', '끼니때마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자유', '친구들과 만나서 치맥을 즐길 자유', '카페에 앉아 글을 끄적일 수 있는 자유' 등이 모두 박탈당하게 되죠. 저에게는 이 자유를 박탈당하는것 또한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일일 것 같습니다. 회사를 다닐때에도 패기있게 '간디로 살아도 좋으니 백수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라며 자유를 외쳤던 저인데, 하물며 감옥이라니요. 누가 저에게 '10억을 줄테니 1년동안 자유시간 없이 살 수 있나' 라고 물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유가 아니거든 죽음을 달라! 고 그 사람을 부지깽이라도 들고 쫓아다닐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세요. 1년이라뇨. 12개월, 365일 동안 내가 하고 싶은거 못하고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못 만나며 산다니요. 그게 어디 10억에 비할수나 있는 가치입니까.
물론 10억. 엄청 큰 돈 이죠. 아마 평생 못 만져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지금으로서는, 10억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권리와 자유가 더 소중한 것 같습니다. 10억을 주고도 바꾸지 않겠다는 건... 그러니까 이미 10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권리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요. 사랑하는 가족, 마음대로 유용할 수 있는 자유시간, 아침-점심-저녁의 메뉴 선택권, 즐거움을 안겨주는 친구들, 보고싶은 영화와 책을 고를 수 있는 권리, 내키는 대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통행의 자유, 만나기 싫은 사람과 받고싶지 않은 전화는 무시할 수 있는 거부권에 이르기까지!
추운 겨울. 말 그대로 허벌나게 추운 겨울. 골방에 가부좌를 트고 앉아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져 봅니다. 10억 생기면 감옥 갈 수 있나. 10억 생기면, 노예로 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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