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만나면 괜히 기분이 좋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고 엔돌핀이 솟는다. 그건 미모의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그 사람의 분위기에 달려있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변한다. 앞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묘하게 닮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생글거리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생글거리게 되고, 인상을 쓰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인상이 험악해진다. 우리가 흔히 ‘사랑하면 닮는다’ 라고 말 하는 것은 바로 이 메커니즘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웃게 해주는, 우리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개그맨들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짓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단순히 웃기기 때문이 아니라, 먼저 웃으며 우리를 바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건 음악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기분이 좋은 영화나 음악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것을 만들었을 사람에게까지 애정을 가지게 된다. 물론, 책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누구인지 보이진 않지만,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는 어렴풋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리고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글귀나,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문장을 써내려가는 저자를 대하노라면 알 수 없는 애정이 솟아나 그 사람에게 막연한 호감을 가지게 되곤 한다. 한비야를 만나는 순간도 그랬다. 책을 읽고 나면 어딘가가 헤 하고 풀어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기분 좋음’을 만들어 내는 글 건너편의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웃으며 격려를 던지는 유쾌하면서도 발랄한 모습. 그건 정말이지 강력한 기운이어서, 흉흉한 참상의 현장에서든지, 발이 부르트도록 걷는 국도에서든지, 그녀가 어디에 서 있든지 간에 한비야를 만나는 순간은 어쩐지 입가에 항상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사는 게 즐거운 무한긍정 주의자
한비야를 처음 만났을 때가 문득 떠오른다. 저자와의 만남이라는 행사에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감에 부푼 채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때 뒷문으로 빠른 말투, 한층 업 된 목소리 톤의 그녀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훨씬 더, 밝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한비야는 저자라는 이름의 무게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통통통 튀었고 와하하 하고 웃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치는 그 순간, 나는 쉽게 그녀가 가진 에너지에 경도되어 버렸다.
괴로운 인생.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이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라는게 이래저래 참 우울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등록금은 너무 비싸고, 졸업 후에도 취업은 녹록치 않다. 좋은 일자리는 부족하고 비정규직은 넘쳐난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하기만 한 워킹 푸어, 집이 있어도 빚에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 평균 임금 88만원 세대, 하여 결혼과 연애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웃지 않는다. 지하철에 올라 사람들의 얼굴을 한 번 들여다보라. 하나같이 피곤에 짓눌린 무표정이다. 하긴 왜 안 그렇겠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수면시간, 실적에 대한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 동료와의 경쟁, 불규칙한 퇴근 시간, 살 떨리는 물가 인상, 달갑지 않은 회식자리, 그렇게 시달리고 집에 돌아와도 허락 된 여유는 채 8시간도 되지 않는 것을.
그런데 한비야는 좀 다르다. 그녀를 생각할 때면 어쩐지 찡그리거나 무기력한 모습은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그녀의 삶은 평범한 직장인이나 학생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경쟁사회를 살고 있는 한 사람의 평범한 대한민국 사람이 아닌가. 그녀가 가진 명성 등으로 그녀의 활기를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선망하는 SKY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김태희 처럼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며, ‘사’자 남편이 있다거나, 수십억의 재산을 쌓아놓고 사는것도 아닐텐데 뭐가 그렇게 좋아서 펄펄 기운이 나는 걸까.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조증환자 라고 부른다. 사람이면 누구나 조와 울, 즉 기분이 좋았다 가라앉았다 하게 마련인데 나는 언제나 조조조조, 기분이 업되어 보이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사실을 말해볼까? 난 진짜로 거의 언젠나 기분이 좋다. 살다 보면 나라고 화나거나 마음 상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근데 무슨 조화인지 화가 나도 잠깐 바르르 하고 나면 금방 풀리고 몹시 마음 상한 일도 하룻밤 잘 자고 나면 잊어버린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 맞는 하루가 기대돼서인지 이불 속에서 혼자 배시시 웃는다.
이쯤 되면 ‘조증환자’ 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다. 거의 환자 수준으로 활기가 넘치고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바로 한비야의 성공비결이기도 하다. 존스홉킨스대의 존 가트너는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조증’을 지적한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조증의 증세는 말이 빠르고, 도전정신이 넘치며, 낙관주의를 지향한다고 한다. 그들은 이상적으로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강한 신념으로 밀고 나가 결국엔 성공을 한다는 것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한비야는 존 가트너가 말하는 모든 ‘조증’ 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
사실, 심리학에서는 긍정 및 활기가 주는 가치를 무척이나 높게 평가한다. 기분 좋은 상태에서 사람들의 창의력은 증진되고, 집중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구글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직원들에게 맛있는 간식을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사무실을 놀이터처럼 꾸며놓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최고 인기강좌로 꼽히는 ‘행복학’ 강의의 숀 아처의 핵심도 바로 이것이다.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들이 성공을 한다.
긍정과 활기가 주는 이득은 비단 업무에서 뿐만이 아니다. 미국 러커스 대학교의 사회학자 엘렌 아이들러 교수에 따르면,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도 건강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객관적으로 비슷한 건강 상태일지라도 스스로가 얼마나 건강하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실제 건강과 수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이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은 그 만큼 건강하게 오래 산다고 하니 이쯤되면 ‘긍정과 활기’ 가 하나의 경쟁력인 셈이다.
그렇다면 한비야는 어떻게 이렇게 매사에 기운이 넘치고 기분이 좋은 것일까. 그녀의 활력의 비결은 바로 감사에서 나온다. 한비야는 오지 여행을 통해, 또 세계 구호 업무를 통해, 자신이 누려오던 모든 일상의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의 말을 한 번 들어보자.
짐바브웨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꼽는다면 구호팀장으로서는 식량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수만 명에게 먹을 것을 전했을 때지만, 개인 한비야로서는 어느 비 오는 저녁, 하루 종일 쥐어짜는 듯한 복통에 시달리고 나서 드디어 고이 모셔두었던 한국 라면을 끓여 먹던 그 순간이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그 때의 행복감이 고스란히 밀려온다. 신기하지 않은가? 겨우 한국 라면 한 봉지, 한국 책 한권이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한비야는 국제구호활동을 위해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 한국 라면과 한국 책이 무척이나 그리웠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끼고 아껴서 먹었던 라면 한 봉지는 아직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기억이라고 고백한다. 사실 외국에 나가 본 사람이라면 안다. 한국에서는 발에 치이도록 널린 라면 한 봉지가 가끔은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운가를, 그리고 그 한 봉지가 주는 행복과 기쁨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외국생활을 많이 한 그녀는 그래서 한국 라면, 한국 책 등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것이다. 그러니 어찌 감사가 나오지 않겠는가. 천원도 안 되는 돈으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일상인 것을.
나는 내가 좋다, 라고 말할 수 있는 힘
한편, 한비야 활력의 다른 원천은 ‘자존감’ 이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얻어지는 ‘자신감’ 과는 다르다.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떠한 사건에 일희일비하면 서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중심을 지키고 그에 따라 한결 같은 평화와 행복을 누린다.
한비야는 어렸을 때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다. 심부름을 도맡아 하면서 가족들이나 동네어른들에게 들었던 칭찬이 자기애와 자존감의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도 정도의 크기만 다를 뿐, 모두 어렸을 때는 천재소리 들으며 자랐던 ‘귀한 자식’ 아닌가. 한비야의 남다른 자존감은 주변 사람들의 ‘한없는 애정’ 에 더하여 스스로가 아껴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 애정’에서부터 비롯된다.
난 내가 마음에 든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잘났다거나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사람의 소소한 부분이 마음에 든다는 말이다. 우선 나는 내가 한씨라는 게 마음에 든다. 공씨거나 노씨나 변씨였으면 어쩔 뻔했나. 공비야, 노비야, 변비야보다 한비야가 백번 낫지 않은가.
내가 58년 개띠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특징 없는 57년 닭띠나 59년 돼지띠보다는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동호회도 많은 58년 개띠라서 좋다.
내가 셋째 딸이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언니가 둘이나 잇다는 게 얼마나 큰 재산이며 호강인지... 셋째 딸은 서열상 자동적으로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있게 마련이니 정말이지 삼팔광 땡을 잡은 거다.
내 얼굴도 마음에 든다. 두 번 쳐다볼 일 없는 평범한 얼굴이지만 웃는 모습이 밝고 환해서 좋다.
이쯤되면 그녀의 자기자랑(?)에 얼핏 웃음이 난다. 하나같이 ‘그게 뭐라고’ 하며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비야는 이 모든 것에 즐거워하며 자기 자신을 ‘예쁘다 예쁘다’ 한다. 자뻑은 자뻑인데 결코 밉지가 않은 자뻑이다. 이 자뻑이 결코 밉지 않은 것은 그녀가 타고난 성씨나 출생순서 그 자체를 가지고 뻐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녀의 ‘내가 좋은 이유’ 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담담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공씨로 태어났어도, 59년생 이었어도, 첫째 딸이었어도 한비야는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봤을 것이라는 것을.
모든 일이 그렇다. 나빠 보이지만 좋은 점이 있고, 좋아 보이는 일에도 나쁜 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좋은 면을 보고 즐거워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쁜 면만 보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다. 어떤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 이다. 누군가는 ‘이만해서 다행이다’ 라고 감사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 라고 울분을 토한다. 하지만 사고와 같은 나쁜 일은 우리가 잘못했기 때문에 오고,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분실사고나 대형사고 같은 일들은 말 그대로 ‘벼락같이’ 닥쳐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10%의 사건과 그것에 반응하고 해석하는 90%으로 이루어진다’ 라고 한다.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는지가 인생을 달라지게 한다는 말이다. 한비야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10%의 평범한 자신을 90%의 만족과 감사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넘어서 산속을 오르며 만나는 풍경 모두를, 세계를 다니면서 손을 잡는 사람들 모두를, 예쁘다 예쁘다 하며 사랑해준다. 그러니 어찌 인생이 즐겁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예의와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딱히 싫어할 이유가 없다면 뭐든 좋아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마음에 든다 든다 말하면서 마음껏 내색하면서 살기로 했다. 나는 내게 어떤 선택권도 없이 주어진 성씨, 출생 년도, 집안에서의 출생 서열, 심지어 국적까지도 만족의 차원을 넘어 열광하는 내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생이 괴롭다고 몸부림치며 살기보다 재미있다고 호들갑 떨며 살기로 선택한 내가, 나는 제일로 마음에 든다.
한비야는 오늘도 깔깔대며 웃는다. 일상의 작은 것 하나가 무척이나 감사하고 스스로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매일 매일이 즐거운 여자. 그리고 그 즐거움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그 표정을 닮게 하는 여자. 그런 한비야가 좋다. 활기가 넘치는 그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멘탈갑추구실 > 멘탈갑 리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멘탈갑 리포트] ⑧-1 "우리 모두는 행복해지려고 산다." 심리학자 김정운 (5) | 2013.01.07 |
---|---|
[멘탈갑 리포트] ⑦-2 '언행일치를 하면 작은것이라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한비야 어록 모음 (2) | 2012.12.13 |
[멘탈갑 리포트] ⑦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은거야', 국제구호전문가 한비야 (0) | 2012.12.09 |
[멘탈갑 리포트] ⑥-2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조금도 두렵지 않다' 광고인 박웅현 어록모음 (0) | 2012.11.22 |
[멘탈갑 리포트] ⑥-1'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존이다' 광고인, 박웅현 (0) | 2012.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