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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 리포트] ⑤ "끝까지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겁니다". 영화감독 장항준

by 김핸디 2012. 10. 13.

 

 

 

멘탈갑 연구소는 제 5대 멘탈갑으로 영화감독 장항준을 선정한다.

 

 

프로필

 

개그맨보다 더 웃긴 영화감독. 서울예전을 졸업하고 FD, 방송작가등을 거쳐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거나,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유쾌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남자. 현재는 김명민 주연의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의 각본을 맡고 있다.

 

 

장항준에 대한 관심은 토크쇼에서부터 시작했다. 영화감독을 꿈꾸며 춥고 배고팠던 시절. 그는 가수 윤종신의 집에 얹혀살며 뻔뻔하게 식비부터 택시비까지 보조를 받았다고 한다. 얹혀살면서 돈까지 받았다니...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빈대 같은 모습에서 왠지 그에게 무엇인가 남다른 게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시라. 사람은 누구나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은연중에 나한테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도움을 주는 사람을 찾게 되어있다. 장항준이 그런 빈대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돈을 쥐어주면서도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픈 무언가가 장항준에게 있었다는 말이 된다. 윤종신에게 장항준은 순수하게 꿈을 유지하고 있지만 잘 안풀리는 친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을까. 장항준에 대한 관심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장항준이 멘탈갑인 이유 하나, 하고 싶은 분야에서 끝장을 보는 열정

 

 

장항준은 고등학교 때 뒤늦게 진로를 탐색하고 영화를 택했다. 자신이 잘하는 일은 거짓말이었고, 이야기를 지어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영화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대학, 서울예전은 2년제였던 탓에 입학과 동시에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는 그 짧은 시간이 많이 두려웠웠다고 한다.

 

저만의 시간표가 따로 있었어요. 시간표 보고 내가 뭘 살려야 할지, 나한테 필요한 게 저 과에 뭐가 있는지, 그러려고 만들었어요. 그래서 노가리 깔 시간도 없었죠. 친구들하고 어디 놀러 갈 시간이 없는 거예요. 중간에 공강 시간에는 프랑스나 독일 문화원 가서 영화 관련 자료실 뒤졌어요.”

 

공부도 못하고, 또 싫어했던 그는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비로소 열정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자신이 좋다고 선택한 영화마저도 대충 대한다면 스스로가 너무 싫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고 장항준은 그 때부터 쉬이 상상하기도 힘들법한 꿈으로 가는 자기 연소의 시간들을 보낸다.

 

 서울예전에는 다른 학교에 없는 대본이 참 많아요.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 시나리오도 있고, 동랑 유치진 선생이 직접 쓴, 몇 십 년 된 등사본 원고도 있고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서울예전이 생긴 이래 그걸 다 읽은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대학 시절, 단 한 번도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누구랑 얘기 나눈 적이 없어요. 대본이라도 읽지 않으면 제가 너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하겠다 생각하고도 반드시 봐야 하는 영화를 보지 못했던 게 걸려서 학교 앞에 있던 영화진흥공사의 시청각 자료실을 많이 이용했지요. 거기 있는 자료들을 다 보고 나니 볼 게 없어서 일본, 독일, 프랑스 문화원에 가서 영화를 봤어요.”

 

사람들은 흔히 좋아하는 일만 찾으면, 적성에 맞는 일만 찾으면, 그것에 올인하여 내 삶의 열정을 쏟아 부을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일에 파고들고 파고들며 이토록 열중할 수 있는 힘은 결코 아무나 지닐 수 있는 것이 아니다.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최선이란 자기의 노력에 스스로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장항준은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남자였던 셈이다.

 

 

장항준이 멘탈갑인 이유 둘, 현실과 이상의 조화

 

사람들은 무언가를 꿈 꾸면 바로 그것이 되려고들 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이렉트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이런 고민 상담글을 본적이 있다. “영화감독이 꿈인데 형편상 취직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하자니 너무 괴로운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그런데 그 해답이라는 것이 명쾌했다. ”취직을 해라. 대신 주말마다 시나리오 쓰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라. 그렇게 꾸준히 노력해서 40대에, 또는 50대에 감독으로 데뷔하면 되지 않겠는가.“ 무릎을 쳤다. 진짜 꿈이라면 이렇게라도 이뤄가면 되겠구나, 하는 발상의 전환을 이룬 것이다. 우리는 흔히 꿈이냐 현실이냐를 저울질 하며 이렇게 말한다.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하자니 너무 슬프다고.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디디면서도 충분히 꿈꿀 수 있다. 문제는 꿈을 목표가 아닌 핑계로 두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아닐까.

 

장항준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굉장히 잘 이루어 온 사람이다. 그의 첫 사회생활은 방송국 FD에서부터였다. 영화감독이 꿈이었지만 일단 FD를 하며 현실에 발을 디딘 것이다. 그러다 펑크난 대본을 자신의 습작으로 메꾸면서 방송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시기가 맞았던지, 한창 케이블이 생기던 시절에는 돈도 꽤 많이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영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지점이다. 자신이 FD를 하던, 방송작가를 하던, 필생의 꿈이었던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꿈을 키워가던 그는 꼬박꼬박 나오는 작가의 월급을 뒤로한 채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박봉곤 가출사건>의 성공으로 감독의 발판을 마련한다. 하지만 감독이 되는 길은 그 이후로도 험난했다. 준비하던 영화는 중간에 엎어졌고, 아버지는 넌 영화감독이 못 될 거다라며 함께 철공소를 하자고 종용하기 까지 했었으니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라이터를 켜라> 로 감독데뷔를 하게 된다.

 

그 후로부터 잘 풀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도 계속 현실과 이상사이를 오가며 줄다리기를 한다. 영화감독 장항준의 극장 개봉 장편은 단 두 편. 2003<불어라 봄바람>을 이후로, 그는 드라마 극본을 쓰고, 드라마 연출을 하는 등 계속해서 꿈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다. 장항준은 말한다. 나는 성공한 영화감독은 결코 아니라고. 그래 아마도, 봉준호나 박찬욱 같은 감독에 비하면 장항준은 결코 성공한 감독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공한 영화감독은 아닐지라도 성공한 인생이다. 꿈을 위해서 현실속에서 어떻게하면 오래 버틸 수 있는지,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어떻게하면 잘 이루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아주 유명한 분이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창작자의 창작 의지의 원천은 제작자의 금고에서 나온다.” 사실 이게 현실입니다. 셰익스피어도 모차르트도 돈을 받고 먹고살려고 작품을 만든거예요. 공짜로 만든 게 아닙니다. 피카소도, 고흐나 고갱도 먹고살려고 시장에 작품을 팔려고 했던 사람들이지요. 예술가도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게 현실이거든요. 물론 저도 그렇고요.“

 

직업을 생각할 때,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것만으로는 직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정다한 대가를 받아 나와 내 가족이 어느 정도의 윤택함은 누리고 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직업이란 하고 싶은 일이면서 그걸 해서 먹고살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기준으로는 가족을 먹여 살이지 못하는 직업은 올바른 직업이 아니에요.”

 

 

하고싶은 일을 하자. 대신 그러면서도 돈을 벌자. 그의 철학은 단순하다.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은 사냥하는 시간이 선행되었고, 나머지 시간에 그림을 그렸다. 사냥은 오늘날로 말하면 돈 벌이이자 생계유지이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일것이다. 누구나 꿈을 꿀 수는 있다.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그 꿈이라는건 결국 현실에 발을 디디면서 차근차근 이루어나가는 것이라는걸 명심해야만 한다.

 

영화감독 장항준. 그는 이번에도 드라마의 각본을 쓰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 놓여있다. 하지만 그는 영화감독이다. 나는 믿는다. 그는 한 편, 두 편, 다시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지치지 않은 덕에 쉰에도 예순에도 영화감독의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장항준을 보면서 깨닫는다. 꿈과 현실은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좋아하는 것을 골랐으면 그것을 정말 열심히, 그리고 끝까지 하자. 현실에 발을 디딜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면 멀리서 반짝이던 별은, 어느새 내 손안에 잡혀 나를 빛내주는 그 무언가가 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때, 꿈과 현실은 비로소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