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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 리포트] ⑥ '사소해 보이는 게 사소하지 않은게 인생입니다' 광고인 박웅현

by 김핸디 2012. 11. 19.





멘탈갑 연구소는 제 6대 멘탈갑으로 박웅현을 선정한다.



프로필

광고인. 그것도 되게 유명한.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현대생활백서’ ‘잘 자, 내꿈꿔등 다수의 히트작을 만들어왔다. 인문학을 강조하는 남자. 특유의 깊이와 통찰력으로 주목받는 프로페셔널. 현재 TBWA에서 크레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박웅현의 키워드 1. 인문학

 

인문학은 꼭 필요한 걸까.

 

인문학 열풍. 솔직히 처음엔 벙쪘다. 한류 열풍, 다이어트 열풍, 조기교육 열풍 등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이 나라이기는 하지만 인문학 열풍이라니? 불과 몇 년전만해도 위기의 인문학을 떠들어대던게 한국 사회 아니였던가.

 

그런데 이 움직임, 심상치 않았다.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하버드 교수가 쓴 인문서적이 베스트셀러에 링크되더니 기어이 100만부나 팔려 나간 것이다. 아니 이 사람들이 돈, , 돈 하며 살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맞나? 아무리 유행 좋아한다지만 이런 것도 유행일 수 있는 거야?

 

높으신 분의 파란지붕이 하 수상하여 사람들이 정의를 외치겠거니, 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인문학열풍을 붙이긴 하지만 들끓고 지나가려니 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스티브 잡스라는 기이한 인물이 나타나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Think different를 외치며 최첨단 IT기기를 만드는 그가 뜻밖에도 강조하는 기술력이나 경영능력이 아니라 인문학이었던 것이다.

 

물극필반(物極必反) 이라 했던가. 이래 저래 물질만능주의 아래서 살아온 사람들이 비로소 보이지 않는 가치의 중요성에 눈 뜨기 시작한 듯 보였다.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과연 인문학 열풍이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고전을 읽히기 시작했고, 지 차체에서는 앞 다투어 인문학 강의를 개설했다.

 

이제 인문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인문학은 도대체 왜 중요한 걸까. 다들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속 시원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은 나도 몰랐다. 그래,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그게 대체 왜 중요한 거지?

 

그 때, 박웅현을 만났다. 자본주의 최전선에 서 있는 그는, 언뜻 어울리지 않게도 거침없이 인문학 예찬론을 펼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의아했다. 행복해진다고? 아는 게 많아지는게 아니라, 생각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 그런데 그랬다. 박웅현이 말하는 인문학은 곧 행복이었다.

 

행복하지 않은 인문학은 가짜다

 

여기서 잠깐. 인문학의 정의부터 다시 하도록 하자. 흔히 인문학을 이야기할 때 거론하는것은 문//. ,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고전이 딸려서 온다. 여기에 스티브잡스가 소크라테스를 좋아했었다는등의 이야기가 첨가되면 인문학의 환상은 완성된다. ,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인문학이란 사상가들의 생각을 공부하는 지식에 의미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박웅현의 인문학은 다르다. 박웅현은 인문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삶의 촉수, 라고. 책을 읽고 감동하고, 음악을 들으며 전율할 수 있는 힘이라고. 그리고 마음의 '울림' 을 위해서 필요한 훈련의 과정이라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연 인문학은 뭘까요. ‘생각의 기초체력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흔히 말하는 문//철만이 인문학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소위 말하는 인문학 열풍이 너무 좁게 문//철만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식만을 파고드는 것은 기계적인 것이죠. 중요한 것은 문//철을 통한 적용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경험으로는 인문학은 결국 촉수라고 생각을 합니다. 인문학적인 훈련은 민감한 촉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전까지는 전혀 모르는 그림들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것. 이것이 인문학의 본질 아닐까요.

 

박웅현이 전하는 인문학은 딱딱한 지식이나 문//철에 분류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에게 인문학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하는 모든 것이다. 그래서 책 뿐만 아니라 음악도, 영화도 예술작품도 그에게는 모두 인문학이 된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좋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아채지만, 진짜 좋은 것은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이런 것이다. 대학 다닐 때 늘 예술영화만 보는 친구가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허세라고 생각했다. 저 재미없는 걸 저렇게 뚝심있게 붙들고 있다니.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의 손에 끌려 억지로 예술영화관을 몇 번 찾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로 뻑이 가는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영화 <엘 시크레토> 였다. 엔딩 크레딧이 끝까지 올라갈 때까지 먹먹함으로 한동안 일어설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 네가 이래서 이런 영화를 보는 거였구나! 친구의 예술영화 취향은 허세나 시간낭비가 아니었다. 친구는 상업영화에서는 느끼기 힘든, 다른 차원의 감동을 예술영화를 통해 느꼈고 그것을 통해 행복했던 것이다.

 

물론, 상업영화나 예술영화를 보는 것은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세상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가 함께 존재한다. 그리고 예술영화를 본다는 것은 상업영화를 보는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것까지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경험 폭이 넓어지는 것이고, 그만큼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과 사과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봤을 때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 당연히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사과를 좋아함으로써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얻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웅현이 인문학을 통해 느낀 행복도 그랬다, 그는 그 느낌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유홍준은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어요. 저도 처음 피카소의 작품을 볼 때 왜 좋은지 몰랐습니다. 좋다니까 감동을 짜내며 좋은가보다 했죠. 그런데 지금은 좋은 걸 알겠거든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같은 책들을 읽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책들을 읽고 난 다음에 본 피카소의 그림은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이젠 앙리 루소의 어떤 그림을 보고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생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거지요. 이철수가, 최인훈이, 유홍준이, 김훈이, 그 외의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나를,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고, 해주고 있습니다.

 

그에게 인문학은 알면 유용한 지식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 같은 인물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성공의 발판도 아니었다. 오히려 순간의 기쁨을 더해주는 놀이였고,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주는 경험이었다.

 

박웅현은 이철수, 최인훈, 김훈을 만나 행복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시각에 감탄했고, 그들을 통해 지나쳤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박웅현에겐 최인훈, 김훈, 톨스토이 등이 가이드였지만 우리가 꼭 그를 좇아서 인문학을 할 필요는 없다. 박웅현이 말하지 않았는가. 인문학은 삶의 촉수이고 이전에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라고. 그러니 인문학을 하기 위해 읽지도 않을 고전을 기웃거리거나 어려운 용어등을 익히고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삶을 조금 더 행복하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들어 줄 감성의 확장연습이다. 오아시스를 듣고 무릎에 힘이 빠진다면,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를 보고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면 그게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박웅현 이전에도 인문학을 외치는 목소리는 많았다. 하지만 다들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것은 마치 새로운 스펙과도 같았다. 보여주기 위한 인문학, 그에 따라오는 지식의 강요, 하지만 박웅현은 우리에게 해방을 안겨 준다. ‘인문학을 해라.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인문학을 해라. 책을 읽고, 클래식을 듣고, 고전 영화를 보는 거. 도움이 돼서 하라는 게 아니다. 그거 하면 행복해지니까 하라고, 권하는 거다.’

 

박웅현은 인문학을 통해 끊임없이 행복을 강조한다. 필요해서라거나 도움이 돼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그것을 즐긴다. 그리고 오직 그 이유로 인문학을 권한다. 그래서 박웅현이 권하는 인문학은, 진짜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목표로 삼는 건 온몸이 촉수인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이나 오스카 와일드의 책을 읽고 나면 촉수가 더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혹은 없던 촉수가 생겨나는 느낌인데요. 세상의 흐름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오늘의 날씨, 해가 뜨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사람과의 만남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면 해요. 오스카 와일드가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인생이라는 포도를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씨까지 다 씹어먹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는데 저도 그렇습니다. 끝까지 다 꼭꼭 씹어먹고 싶어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