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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추구실/멘탈갑 트레이닝

[멘탈갑 트레이닝] #2. 불안

by 김핸디 2012. 9. 26.

 

 

 

멘탈갑 트레이닝 2 탄, 이번 트레이닝의 길잡이는 알랭 드 보통의 <불안>입니다.

현대인이 느끼기 쉬운 가장 고질적인 감정인 불안. 불안의 원인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함으로써 멘탈갑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불안. 불안이란 무엇일까요? 심리학자 김태형에 따르면 불안이란 '만성화된 공포' 입니다. 공포가 어떤 두려움을 강하게 느끼는 것이라면, 불안은 공포보다 그 강도는 낮지만 지속성이 긴 감정이지요. 대개 불안은 어떠한 공포를 경험한 뒤, 그 후에 트라우마 식으로 남습니다. 개에 물려 크게 다쳤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그 후로 개를 볼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불안' 인 것이지요.

 

현대사회, 특히나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는 이 불안이라는 감정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옭아매는 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어디서 온 것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일까요.

 

1. 불안경쟁에서 온다

 

 

 

 

오늘날의 사회는 승자독식의 구조입니다. 예전의 우리 사회가 승자가 6을 가지고 패자라도 4는 가질 수 있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승자가 8을 가지고 패자는 2만 가지는 것이지요. 수 억대의 출연료를 받는 스타와 수 십도 벌기 어려운 무명배우, 일반사원과 연봉과 그에 비해 수 십배 심하게는 수 백배까지 더 많은 임원의 급여를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수십배나 일을 더 많이하거나 잘난건 아닐텐데 말이죠. 그뿐이 아닙니다. 같은 일을 한다고 해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형편없는 급여를 받는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는 '승자' 가 되기 위해 기를 씁니다. 스펙쌓기 경쟁에 열을 올리는 것이죠. 그래서 너나없이 공부, 공부만을 외치고 일자리를 잃지 않기위해 발버둥을 칩니다. OECD 국가 중 가장 긴 노동시간과 가장 높은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의 불명예는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대한민국 국민들은 초,중,고,대학,직장에까지 높은 성적과 승진을 위해 끊임없는 경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쟁은 늘 한정된 승자의 인원이 있기에, 그 안에 들기 위해 우리는 늘 낙오될까 두려워하며 불안의 감정을 안고 살 수 밖에는 없습니다.

 

 

2. 불안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온다.

 

첫 번째가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불안이라면, 두 번째는 사람들의 시선, 즉 정서적인 부분에서의 불안입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부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동일화 되어있습니다. 아파트 몇 평 이상, 차는 중형차 뭐 이상, 해외여행은 1년에 한 번 이상... 이러한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즉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이고, 이것은 곧 사회적 관계에서 소외된다는것을 뜻하게 됩니다.

 

 

 

 

알랭 드 보통은 속물을 '하나의 가치적도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모든 사람' 이라고 정의합니다. 경제적인 것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인 대한민국은, 그런면에서 돈과 경제적인 가치를 지나치게 떠벌이는 속물들의 사회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은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지 '물질적으로 부족하다고 해서' 마치 그 사람의 인간가치마저도 낮은 것으로 치부합니다.

 

이런 속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얻지 못할까봐'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3. 불안내 자신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온다.

 

첫 번째, 두 번째 요소를 잘 살펴보셨다면 불안의 근원이 '외부' 에서 온다는것을 알 수 있으실겁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사회가 승자/패자를 나눈다고 하면 나도 패자가 될 수 있는 확률이 있는 것이고, 그 경제적 지위로 인해 속물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 역시 내가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오늘날의 불안이 '내 자신에 대한 평가' 에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아무리 가난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은 신분사회였고, 한 번 정해진 신분은 내 능력으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가난한 농부의 자식은 '출생의 한계' 를 탓했을지언정 자신의 '능력' 을 탓하며 스스로를 비하할 이유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평등' 이라는 환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은수저 물고 태어난 자식과 어염집의 자식이 같은 선상에 있을 수가 없는 노릇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똑같이 '수능시험' 을 보고 '입사시험' 을 치른다는 이유로 평등의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회에서는 내가 조금 낮은 지위를 가지게 된것을 '스스로의 능력부족' 이라고 자학하기가 쉽습니다.

특히나 신문이나 TV를 떠들썩하게 하는 '개천에서 난 용들' 은 안 그래도 기죽은 채 사는 보편적인 사람들의 기를 더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과외 한 번 안받고 서울대에 들어갔다' 느니 '지방대 출신의 성공한 벤처 사업가' 라느니 나팔을 불어대면서, 당신이 못난것은 오롯이 '당신의 능력 탓' 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하여,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살게 되었지만, 열등감은 더 깊어진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라든가 '누구구라도 잘 될 수 있다' 라는 환상은 우리를 더욱 욕망하게끔, 기대하게끔 하고, 그런 욕망과 기대가 클 수록 우리는 더 궁핍해 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불안이라는 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