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입니다.
누구에게나 로망이 있지요. 학창시절, 특히 고등학교 시절 저의 로망은 국어사전이었습니다. 고 2때까지 국어사전을 맨날 손에 들고 다녔어요. 베고 자기도 하고, 심심할 때 읽기도 하고. 그래서 당시 저랑 친한 친구들은 저를 이기문 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제가 들고다니던 동아국어사전을 감수하신 분 이름이 국문학박사 이기문 교수님 이셨거든요. 어찌나 국어사전을 좋아했는지... 광화문 교보문고 사전코너에서 국어사전을 들고 찍은 사진이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면 처음 국어사전의 재미를 알게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였던것 같아요. 그때는 좀 불순한 의도였지요. 일일히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때 저희반 아이들의 성교육은 국어사전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남자애, 여자애 가릴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서 민망한 단어들의 사전적 의미를 파악하고 깔깔대고 웃어대던것이 당시 저희들의 가지고 있던 수많은 장난중에 하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소설의 재미를 느끼면서 다시금 국어사전을 손에 잡았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봐도 저는 좀 허세를 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편린' 이라든가 하는 느낌의 단어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수가 없었어요. '핀트가 안 맞는다' 라든가, '방증이다' 라는 표현도 지적허세를 만족시켜 주는 표현들이었던것 같고요.
다시금 국어사전의 필요를 느낀것은 최근 유튜브에서 본 유시민씨의 강연 때문입니다. 그가 말하길,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아는 단어가 적은 사람은 결코 깊은 사색을 할 수가 없다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단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알수록 더 많은 생각을 머릿속에 담을 수가 있다고요.
그러고보니 정말 그런것 같더라고요. 제가 예전에 전주에 갔다가 최명희 문학관에 들렸었는데, 거기에 보면 '삭연' 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외롭고 쓸쓸하다' 라는 뜻을 가진 단어라고 하더라고요. 삭연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떠한 감정을 외롭다라거나 쓸쓸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거에요. 그리고 그 언어를 내뱉는순간 생각은 그 만큼 단조로워 질 수밖에 없고요. 그런데 삭연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은, 좀 더 복잡하고 오묘한 감정을 담을 수가 있는거죠. 그만큼 그 사람의 세상은 넒어지는것일테고요.
그래서! 저도 다시금 국어사전을 애용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은 구글검색에서 가져왔어요;) 집을 뒤져서 쓰던 국어사전을 찾아내거나, 여의치 않으면 새 국어사전을 구매하려고요. 아는 만큼 넓어지는 나만의 세계, 국어사전이라는 건 정말이지 매력적인 한 권의 책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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