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3 시절을 생각해 봤어. 엄마는 그때 난생처음으로 힘든 시기를 맞았단다. 외할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셔서 하나밖에 없는 집이 차압을 당하고 우리는 그야말로 거리에 나앉게 되었던거지. 엄마의 마음을 다 줄 수 있었던 친한 친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버리고, 엄마가 짝사랑하던 사람은 어느 날 정말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어. 나름대로 이보다 더 불행하긴 힘들다고 생각했지. 실제로 숨죽여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제일 힘든건 우리 집안의 사정도 아니고 유학 간 친구도 아니고 짝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도 아니었어. 그건 나의 이런 딱한 처지가 알려지게 되어서 반 아이들이 처음으로 엄마에게 가엾다는 눈치를 보내게 되었다는 거지.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마는,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나 엄마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고, 참을 수가 없었어.
일부러 분식집에서 돈을 내었고 일부러 명랑한 척 떠들었다. 일부러 말이야. 맘속으로는 엄청 죽고 싶었는데 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일이었던 거야. 그때 생각했지. 죽고 싶다. 도망가 버리고 싶다. 교과서도 참고서도 보충수업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 버리고 싶다. 그런데 말이야. 도망칠 곳이 없더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온몸으로 고3을 맞을 수 밖에.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中
누적 판매부수 천만부에 빛나는 작가, 공지영. 화려한 영광만큼이나 깊고도 아팠던것이 그녀의 삶이 아닌가 합니다. 저도 학창시절을 지내왔지만, 가난이 드러나는 것만큼 쪽팔리고 자존심 상하는 경험은 없죠. 어른이 되면 아무렇지도 않은것인데, 청소년기에는 부모님의 자가용이 뭐냐에 따라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곤 했었습니다.
공지영은 어려운 시기를 '열심히' 사는것으로 극복했다고 말합니다. 봉사활동도 매주 했고, 책도 열심히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요. 그녀는 '불행들이 나를 분발시키고 바른 자세로 살게 만들어 주었다' 라고 회상합니다. 지나고나서는 윤색되기 마련인게 과거라지만, 맞는 것 같아요. 고난은 나를 강하게 만들죠. 인생은 묘하게도 꼭 하나를 가져가면 하나를 내어주니까요.
매체를 통해서는 성공한 사람들의 빛나는 모습만 보게 됩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꼭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되지요.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 역시 강한것일테니까요. 자존심 상할때가 있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부끄러워서 숨고 싶을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도망칠곳은 없고, 그것을 견뎌내는것이 인생의 주인인 나의 몫입니다. 지나고나면 아무것도 아닐일들, 쉽지는 않겠지만 이겨낼 수 있는 담대함을 지닐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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