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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극복실/멘탈붕괴의 현장

영화감독 장항준,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졌을 때

by 김핸디 2013. 7. 12.


 2001년 봄


죽을 맛이다. 준비하던 <불타는 우리집>이 엎어졌다. 캐스팅이라는 장벽을 뚫지 못했다. 지난 1년간 모두가 고생했는데. 믿고 따라준 스탭과 연출부들 볼 면목이 없다. 나란 놈은 지독히도 운이 없다. 스탭들과 가진 술자리. 내색하진 않지만, 속으로 피눈물을 쏟고 있다. 급기야 감성이 풍부한(그놈의 감성, 아니 술이 문제다) 연출부 한놈이 울음을 터뜨린다. 옆에 있던 제작실장도 뒤따라 흐느낀다. 씨팔…. 욕이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결국, 이대로,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는구나.


1시간쯤 지났나. 전화가 걸려온다. 아버지다. 이제 그따위 영화는 집어치우라신다. 벌써 3년째 같은 말씀이다. 서른 넘은 아들 생활비까지 챙겨줘야 하는 아버지로선 답답하기도 하실 테다. 용기를 북돋워주는 마누라와 나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어머니. 그들을 볼 낯이 없다. 그런데도 술자리가 끝날 무렵, 난 대책없는 호기를 부리고 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나 내일부터 다시 시나리오 쓴다. 다들 같이 갈 거지?” “어디로 갈 건데?” 이춘영 PD의 되물음에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제가 참 좋아하는 장항준 감독. 씨네 21에서 옛 기사를 찾다가 그가 썼다는 '눈물의 제작일지' 를 발견하고 옮겨봅니다. 늘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이는 그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군요. 왈칵, 목이 메어오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