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더 많은 선택과 자유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열 아홉살때의 제 얘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저는 고3 내내 광고홍보학과를 희망했습니다.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에서도 1,2,3 지망 모두 광고홍보학과를 적었고 결국 운 좋게 그 중 하나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을 얻었었지요. 자, 그렇다면 제 입시스토리는 해피엔딩이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니었습니다. 엉뚱하게도 제 수능점수가 생각보다 잘 나오는 바람에 저는 지옥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으니까요. 네, 점수가 못 나와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잘 나와서 였습니다. 잘 나와서였다라니! 대체 저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광고홍보학과를 희망했지만, 그 과의 입학 커트라인 보다는 제 수능점수가 조금 높았습니다. 점수가 아까웠던 선생님은 제 점수로 갈 수 있는 다른 대안을 권했고, 귀가 얇았던 10대의 저는 그 때부터 갑자기 머리를 싸매고 앓아누워야만 했습니다. 갑자기 선택지가 2개가 되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입니다. 결국 광고홍보학과를 선택했지만, 대학을 다니면서도 이따금씩 '그냥 점수에 맞춰 갈걸 그랬나' 라는 후회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싶은건지 아실겁니다. 만약 전지전능한 신이 수능시험을 앞둔 제게 '광고홍보학과에 아슬아슬하게 입학할 수 있는 점수를 주랴, 아니면 넉넉하게 갈 수 있는 점수를 주랴' 라고 물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둘 중에 무엇을 택했겠습니까. 두말할것도 없이 '가능하면 넉넉하게 입학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여유 점수가 저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가능성은 여러 개로 늘어났고, 그 선택지 때문에 저는 선택을 하고도 만족할 수 없었으니까요. 만약 제가 아슬아슬하게, 혹은 약간 미달되는 점수로 그 학과에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요? 단언하건대 아마도 과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넘쳐났을것입니다. 후회요? 물론 없었겠지요.
우리는 흔히 더 많은 가능성과 선택을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높은 점수를 맞아서 대학이나 회사를 '골라' 가기 원하고, 외모를 잘 가꾸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구애를 받기 원하며, 돈을 많이 벌어서 '무엇이든'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원하면 가질 수 있고, 여러 선택지중에서 무언가를 고를 수 있는 것이 과연 우리가 말하는대로 '행복한 고민' 이 될 수 있는 것일까요.
한 심리실험을 보시죠. 식료품 가게에서 한쪽에는 24종류의 잼을,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6종류의 잼을 시식하는 코너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24종류의 잼 시식코너에 더 몰렸들었죠.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6종류의 잼 시식코너에 있는 손님들이 맘에 드는것을 고르고 계산대로 향한 것과는 달리, 24종류의 잼 시식코너에 있는 손님들은 이것저것을 살펴보기만 하고 정작 구매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6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코너를 거친 손님들 중 30퍼센트가 잼을 구매했지만, 24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코너의 손님들은 겨우 3퍼센트 였습니다.
사람들은 왜 24개나 되는 잼을 보고서도 구매를 망설인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너무 많은 선택지' 가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24개 중 하나를 선택하는것은 23개의 다른 가능성을 기회비용으로 삼는다는것을 뜻합니다. 하나를 선택함으로서 놓치게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렇기에 선택을 주저하게 되는 것이지요. 게다가 24개중에서 잼을 고른 손님은, 6개 중에서 잼을 고른 손님보다 잼에 대해 덜 만족하게 될 확률이 훨씬 큽니다. 24개중에 고른 하나는 6개중의 하나보다는 훨씬 더 큰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시지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결국,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내가 다른 걸 선택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듭니다.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점점 커지고, 그 후회가 커질수록 이미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은 줄어드는 것입니다.
자, 이제 아시겠나요. 우리는 엄친아를 부러워하지만, 엄친아나 나나 결국 가질 수 있는 직업은 하나뿐입니다. 나는 그나마 잘하는것 하나를 선택했기에 진로에 대한 후회가 적을 수 있지만, 엄친아는 가진 능력이 많기때문에 하나의 직업을 선택했을 때 치뤄야 하는 비용도 큰 것이지요. 명문대 출신의 연예인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만 그는 오히려 명문대를 나왔기에 다른 연예인들보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회의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에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명문대를 나와서 가질 수 있는 다른 탄탄한 직장, 높은 연봉, 사회적 지위같은것이 기회비용으로 지급되는 일일테니까요.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가능성과 선택지의 세상에서 삽니다. 이제는 누구도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부모님이 짝 지어준 사람과 결혼하지도 않으며, 가업을 이어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만날지, 누구와 결혼할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가 온전히 나의 선택인탓에 그 책임도 온전히 내가 져야만 하는것이지요. 너무 많은 가능성은 우리에게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와 후회의 감정을 주고 결국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첫째, '내가 원하는 것' 을 명확히 하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면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을 하고 그 과정에서 후회를 경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면 부모님이 좋다는 직업을 선택해놓고 평생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대기업이 좋아보이기도 하고, 공무원이 좋아보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살아 보고 싶기도 할테니까요. 하지만 선택은 늘 기회비용을 포함한다는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게 돈인지, 안정인지, 자유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수 많은 기회가 열려있고 선택지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내가 좋아하는것 하나 딱 고르고나서 후회없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가능하면 세부적으로 쪼개는게 좋습니다. 내가 직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내가 이성을 만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것은? 내가 자유시간을 보낼 때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이런것들이 명확하게 정해지면, 남들이 돈 많이 버는 대기업을 다닐때도 '넌 시간이 없어서 불쌍하다' 라거나 킹카를 만나 결혼하는 친구를 보면서도 '유머감각이 없는 남자랑 결혼하다니 안타깝군' 이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남의 선택에 부러워하지 않고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 것이지요. 물론, 어떤 사람은 직장을 선택할 때 돈이 제일 중요하고 이성을 만날때는 외모가 가장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는 '공무원은 안정적이지만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니, 난 별로!' 라거나 '마음이 맞으면 뭐하냐, 볼품이 없는데' 라며 자신의 선택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이 선호 가치는 모두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고, 여기엔 어떠어떠해야 한다는 기준같은건 없습니다. 자신이 어떤것을 가장 선호한다면 그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선택하는것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일테니까요.
둘째, 삶을 단순하게 사는 것입니다.
첫째가 정해지면 사실 둘째는 절로 따라옵니다. 직업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만 정해져도 나의 선택지는 확 줄어들테니까요. 일상생활에서도 좀 더 단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단골을 정해서 그곳을 주로 가십시오. 괜히 발바닥에 쥐나도록 백화점을 돌아다닌다고 해봤자 선택지만 늘어날 뿐이고, 그 중에서 고른 물건은 필시 후회를 불러오기가 쉽습니다. 좋아하는 브랜드 2개 정도만 정해서 거기만 돌아보고 물건을 사도 충분합니다. 단순한 삶은 다른것을 할 시간을 늘려줌과 동시에 다양함과 자유가 주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만날때 어디서 만날까 골머리 싸매지 말고 갔을때 좋았던곳을 그냥 가시고, 맛집 찾아다니느라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좋아하는 식당 하나 정해서 반복해서 가십시오. 괜히 인터넷 검색해서 골라골라 가기 보다는 그냥 알고있는데 중 좋았던 곳을 가는것이 가장 성공확률이 높은 선택일 것입니다.
다양한 선택과 풍부한 가능성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개를 잘해서 가능성을 높이기 보다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선택을 하고 그것에만 삶의 에너지를 집중하십시오. 무슨 책을 읽을지 확실한 사람에게는 대형서점과 도서관의 수많은 양서가 축복이지만, 그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지루하고 답답한 미로일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고르는 시간이 행복한게 아니라, 빨리 고르고 그것을 누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 행복하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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