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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추구실/멘탈갑 트레이닝

[멘탈갑 트레이닝] #4. 행복(1), '행복에 대한 통념에 저항하기'

by 김핸디 2012. 10. 29.

 

 

 

 

 

누구나 그런 생각들을 합니다. 이 시험만 합격한다면... 여기에 취업만 한다면... 이 사람과 결혼한다면... 나는 행복해질거라고. 하지만, 묘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불행 끝 행복시작!' 을 외치는 모든 결말은 동시에 또 다른 시작입니다. 고등학교 입학했을때 저는 그랬습니다. 마지막 고입시험의 세대였고, 100명의 탈락자를 뒤로한 채 위풍당당하게 합격했던 저는, 중3 내내 '고등학교 합격' 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려왔던 저는, 원하는 고등학교에 합격하자 모든게 끝났다고... 그러니까 '이제 내 인생은 탄탄대로다' 라고 섣부른 판단을 내렸었지요. 하지만, 영원할것같던 성취의 행복은 당연하게도 1개월도 안나서 끝나버렸고, 또 다시 고만고만한 학생들과 경쟁이라는걸 시작하면 제 인생은 중학교때보다 훨씬 더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멍청하게도, 고등학교 땐 '대학만 가면...' , 대학에 와서는 '취직만 하면...' 이라는 조건들을 생각하며 살았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회사생활이라는것을 해보고 나서야 '행복을 보장해주는 조건같은건 없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행복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조건을 생각합니다. '돈만 많다면... ' '얼굴만 예쁘다면...' '저 명품백만 산다면...' 등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열망하는것이지요. 광고는 그 점을 기막히게 이용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럼 카드로 일단 지르세요.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럼 저희 학원에 등록해서 그 시험을 준비하세요. 행복해지고 싶으세요? 그럼 당장 그 얼굴을 뜯어 고치세요!

 

이번 멘탈갑 트레이닝은 행복에 대한 오해를 함께 풀어보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를 찾아가고자 합니다. 도우미는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대니얼 길버트. 그가 말하는 행복에 대한 본질을 들여다보면서, 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열망하고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가졌을 때 왜 생각만큼 행복하지 않은지, 정말로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것인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한 사례를 보겠습니다. 이들은 샴 쌍둥이는 로리와 레바. 여러분은 이 사람들의 삶이 어떨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참하다? 괴롭다? 억울하다? 그러나 이들의 말하는 이들의 삶은 이렇습니다.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다' 과연 이들의 말은 진실인 것일까요?

 

인간은 유일하게 예측을 하는 존재입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인간에게 즐거움과 통제감을 주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러이러할 것이다' 라는 예측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조건을 보고 그 사람의 행복도를 추정합니다. 그리고 쉽게 상상되는것일수록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라고 생각합니다. 부자가 행복할것이다, 라고 예측하는것은 좋은집에 살고, 좋은차를 타고, 해외여행을 다니고 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가난한사람은 불행할것이다 라고 예측하는것은 그들이 돈 때문에 고생을 하고 누리지 못함을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상이 현실과 일치하는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 다시 샴쌍둥이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샴쌍둥이라고 하면 이런 것들을 떠올립니다. '불편함', '남들과 다르다는 부담' 그리고 이런것들을 토대로 그들의 삶을 추정합니다. '신나게 뛰어다니지도 못할테니 불행하겠군' '남들의 주목을 끌며 살텐데 안 됐어' '어쩌다가 저렇게 태어난걸까. 분리수술을 받으면 좋을텐데...' 하지만 이들은 말합니다. '더할나위 없이 행복하고 붙어있는 지금 이대로 만족한다' 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죠. 이들의 말은 사실일까요? 이들이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라면 우리의 생각이 뭔가 잘 못된것은 아닐까요?

 

사람들의 예측이 현실과 어긋나는 이유는, 자기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것을 현실에서 너무 과대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샴쌍둥이를 보며 쉽게 그들의 신체가 붙어있음으로써 가질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들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신체가 붙어있음으로써 느낄 수 있는 긍정적 요소 즉, '사랑하는 자매가 늘 곁에있다는 평안함과 안정' '우울하고 불안한 날에도 나를 알듯 나를 위로해주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늘 곁에있다는 느낌' 을 결코 함께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쉽게 떠올리는 부정적인 요소만으로 그들의 삶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라고 짐작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로리와 레바만이 느낄 수 있는 긍정적 감정은 분명 존재하고, 우리의 상상과 달리 긍정적인 요소를 더 많이 느끼는 로리와 레바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분리된 채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해보지 못한것을 경험해봐야만 진정 행복을 알 수 있는것은 아니지요. 가족들과의 식사가 너무 행복한 저에게 전도연씨가 와서 '칸 영화제에서 상도 안받아봤으면서 행복하다고?' 라며 제 행복을 부인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행복은 주관적인것이고, 로리와 레바가 기쁨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굳이 분리된채 살아가는 사람과 같은 성질의 것은 아닐지라도 분명 행복한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입니다.

 

 

 

 

 

 

 

자, 이번에는 다른 사례를 한번 보겠습니다. 첫번째 사람은, 아돌프 피셔. 그는 폭동을 주도하지 않았지만 주동자로 몰려서 사형을 당합니다. 1887년 11월 11일, 마침내 교수대 위에 섰던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두번째 사람은, 조지 이스트먼. 코닥 카메라 사업을 시작해서 부자가 된 그는 나중에 회사 주식의 1/3을 직원들에게 배당하고 장애인 편익을 제공하는 등 발명가이자 동시에 인도주의자였습니다. 그런 그는 어떤식으로 인생을 마감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서,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아돌프 피셔는 무척 억울하고 황당했겠군. 하지만 조지 이스트먼은 정말이지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거야. 이것이 쉽게 떠올릴 수 있기에, 가능성이 높을것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돌프 피셔는 죽기전에 "바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라고 이야기했으나, 모든걸 이룬듯 보였던 조지 이스트먼은 책상에 앉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까요.

 

이 차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이들의 삶을 예측할 때, 샴쌍둥이의 삶을 떠올릴 때 그랬던것처럼 쉽게 상상할 수 있는것만을 토대로 추정합니다. 아돌프 피셔의 삶을 떠올릴때는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로 사형을 당한 '그의 억울함'만을 생각하느라 그의 삶속에 실제로 있었던 다른 요소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죠. 마찬가지로 조지 이스트먼의 삶을 떠올릴때도 부자, 인도주의자 등의 키워드에만 갇혀 실제로 그의 삶에 있었던 다른 요소들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들의 삶에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걸까요?

 

아돌프 피셔. 그가 살던 시대엔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는 나오지만 세상이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았죠. 그러던 어느날, 공장 노동자들과 경찰들 사이에 폭동의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는 현장에 있었다는것이 계기가 되어 폭동의 주동자로 몰리게 됩니다. 갑자기 신문들은 그의 이름으로 장식을 하고, 그는 사회정의를 위해 개혁을 외친 선구자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날조된 증거에 의해 형을 선고받는 그 순간, 그는 문득 자신이 순교자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것을 깨닫습니다. 그에겐 억울한 누명으로 받은 사형순고가 오히려 우연히 찾아온 기회이며 인생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반면, 이스트먼의 삶은 이랬습니다. 그는 77세의 노인으로 그 때까지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척추질환으로 인해 여행이나 사냥등 더이상 즐기던 것을 즐길 수 없었고, 매일 침대에서 과거를 회상하는것만이 일상의 전부였지요.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갔고, 앞으로는 노쇠밖에 남지 않았음을 깨달은 이스트먼. 그는 인생의 마지막에서 허무를 느끼며 스스로의 삶을 총으로 마감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예전에 유행했던 <인생극장>이라는 프로가 떠올랐습니다. 아돌프 피셔와 조지 이스트먼의 삶. 중간까지만 본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스트먼의 삶을 선택하며 '좋은 결말' 을 기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결말은 스스로의 심장에 총을 겨누는 쓸쓸하고 허무한 노인의 말로인 것이지요.

 

물론, 여기 나타난 예들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일들' 은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러이러할 것이다' 라는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다, 라는 이야기를 강조 하고자 조금은 독특한 케이스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2편에서는 우리가 일상속에서 추구하는 행복의 조건들과, 그것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볼텐데요. 과연 우리의 인생극장은 어떤 반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요.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