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의 바운더리가 있습니다. 바운더리 안에는 나와바리가 있죠. 친구랑 커피 마시면서 두근두근 떨리고 그런가요? 그렇지 않죠? 너무 익숙해서 그렇지요. 이 익숙하지 않고 떨리지 않는 일들은 나와바리에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은 PT를 잘하고 싶어서 딱 100번만 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별 걸 다 하다 보니 어느 날 교수님께서 "잠실체육관 6,000명 앞에서 PT하는 게 있는데 같이 해볼래?" 하시더라고요. 자다가도 오줌 쌀 것 같은 공포였습니다. 교수님께 수백번도 더 전화하고 싶었어요. 못하겠다고요. 그러나 억누르고 또 억눌렀어요. 올라가기 전에는 너무 떨렸어요. 그런데 내려올때는 신기하게도 별 거 아니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그렇게 잘하진 못했고 실수도 했어요. 그래도 해보니까 별 거 아니더라고요.
문제는 겁을 먹었다는 데 있었던 거죠. 그래도 '네'라고 했어요. 이유는 단 한 가지였죠. 엄청 후달리지만 혹여 망치더라도 지금 어릴 때 못하는 건 애교가 되니까, 나만 후달리는 게 아니라 다 후달리니까. 결국 이기는 건 미리 후달려본 놈이니까.
하고 나니까 지금은 제 나와바리가 됐어요. 놀랍게도. 이제는 몇 천 명 앞에서도 떨거나 하지 않아요. 인생은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후달리는 작은 "네"를 해서 내 한계의 범위를 넓히는가에 화두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박신영
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초등학교때까지만해도 저는 무척이나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의 눈도 잘 쳐다보지 못하는 순딩이. 그런 저를 변화시킨 건 초등학교 6학년 전교어린이회장 선거에 나가면서였죠. 그 때는 진짜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어쩌자고 거기에 나간다고 해서... 여튼 저는 출마선언을 했고, 전교생 앞에서 연설을 했죠. 우황청심환까지 먹으면서. 죽고싶은 공포와 두려움이 저를 엄습했지만, 정말이지 하고나니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남앞에 서는걸 그리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죠.
대학에 와서는 프리젠테이션이 진짜 죽을맛이더군요. 장기자랑으로 대중앞에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처음엔 진짜 못했죠. 망했고, 그래도 정말 지겹게도 PT를 했습니다. 4학년때는 같이 수업듣는 타과생이 와서 '프리젠테이션 정말 잘 하시네요' 하고 인사를 건네줄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죠. 지금도 PT에는 꽤 자신이 있는 편이고요.
첫 면접에선 또 얼마나 찌질했는지. 면접관이 '떨지마세요' 라고 달랠 정도로 덜덜 떨었었죠. 조금씩 나아졌지만, 창업면접 볼 때는 이상하게 마치 첫 면접에서처럼 덜덜 떨어서 너무 쪽팔렸습니다. 면접 보던 날 회사에서 조퇴하고 갔었는데, 가는 내내 속은 답답하고 마치 위액이 역류하는 것 같고, 심장엔 나비가 벌렁벌렁 거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피하지 않고 마주했죠. 그 덕에 이렇게 합격하고 창업센터에 입주할 수 있었고요.
아직도 많은 것들이 두렵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후달리되 도망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망하고 쪽 팔리고, 자존심 상해도... 포기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조금씩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이 나의 한계를 확장시킨다는것을 믿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내가 경험해 본 만큼이 나의 한계다' 라는 한비야 씨의 조언입니다. 나와바리를 넓히는 일은 당연히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후달림을 이겨내면 나는 그 만큼 넓어지고 또 성숙해집니다. 이승환의 노래 <물어본다> 에서처럼, '현실과 마주쳤을 때 도망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겁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도, 버텨봅시다. 나를 주저앉히는 건 그 누구가 아니라 결국 내 자신이니까요.
'멘탈갑추구실 > 멘탈갑 : 어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정민, 감사의 위력 (0) | 2012.09.25 |
---|---|
이해인, 100% 짜리 행복은 없다 (2) | 2012.09.25 |
류재현,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5) | 2012.09.13 |
한비야, 인생은 세트메뉴다 (0) | 2012.09.11 |
김기덕, 누구나 올라가지 못하는 400m 이후의 이야기 (0) | 2012.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