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자식을 둔 아버지가 있다. 불행히도 막내 아이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몸이 성하지 않다. 아버지는 세 명의 자식 중 누구에게 가장 애정을 기울일 것인가? 당연히 막내 아이일 것이다. 몸이 성한 나머지 두 자식이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그들은 막내 동생을 사랑하고 돌볼 때 아버지가 가장 흡족해하리라는 것, 그리고 오직 그럴 때에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제 아버지를 ‘하나님=아버지’ 로 확장해보자. 기독교도들은 누구를 사랑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당연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웃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면 노동자일 것이다. 물론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더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라면 남성보다는 여성들을 더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다.
-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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