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갑 연구소는 제 3대 멘탈갑으로 서울시장 박원순을 선정한다. 서울시장으로 대중에게 널리 각인되었지만, 사실 박원순은 시민운동가로서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인물. 소장은 2010년 박원순이 설립한 아름다운재단 산하의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이라는 곳에서 인턴활동을 한 적이 있고, 그를 계기로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더욱 확장시켜왔다. 마침내, 서울시장이 되어 만천하의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드러내고 있는 박원순 시장. 그의 멘탈을 속속들이 파헤쳐보도록 하자. 팍팍!
프로필
2012 現 서울시장. 고등학교 재수, 대학교 재수라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 그러나 시국사건에 휘말려 감옥에 가게 된 그는 그곳에서 순박한 죄수들과 정도 쌓고, 무수한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정신을 깨우쳐간다. 후에 사법고시에 합격, 검사를 거쳐 변호사가 되지만 조영래 변호사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변심, 잘나가는 법조인의 삶을 접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척박한 시민사회 운동가로서의 발을 내딛는다. 이후,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손대는 NGO마다 성공을 시키고, 이제는 행동하는 서울시장으로서 서울시민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는 중이다.
박원순이 멘탈갑인 이유 하나,
옳은 것을 위해 좋은 것을 내팽개칠 줄 아는 결단력
박원순은 가난했다. 그래도 부모님을 생각하며 공부했고, 경기고를 재수해서 합격. 서울대를 또 재수해서 합격한 ‘개천에서 난 용’ 이었다. 중간에 감옥살이를 하며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마침내 사법고시에 합격. 이제 그의 인생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을 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한 달 동안 양말을 갈아 신지 않아서 발바닥이 다 하얗게 뜰 정도로 공부를 했다고 하니, 가난한 집 아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이 어떠했을런지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어렵게 얻은 것을 버린다. 검사 생활을 그만두고, 변호사 생활 마저 때려친것이다. 여기가 바로 그가 빛나는 지점이다. 그렇게 어렵게 얻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 마음속에 옳다고 여기는 것을 찾아나서기 위해서 지금 누리고 있는 좋은 것들을 다 버릴 수 있는 결단력. 박원순은 검사를 1년도 안되서 그만뒀을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검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한계랄까, 문제랄까 이런 점들이 그만두게 만들었죠. 2,3년 더할 수 도 있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고 했잖아요. 청춘을 여기서 보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물론 어머니가 검사하시는걸 좋아하시긴 하시겠죠. 하지만 어머님 때문에 제 인생을 살수는 없잖아요.”
그렇게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그는,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존경했던 조영래 변호사가 “박 변호사, 이제 돈 그만 벌고 외국 한번 가보라” 라는 말을 듣고 외국 유학길에 오르고, 돌아와서는 시민운동가의 길을 걷는다. 시민운동가의 길은 맨땅에 헤딩하기와도 같았다. NGO라는 개념이 정착되지도 않았던 시절이니 오죽했으랴. 박원순은 그때의 어려움을 이렇게 전한다.
“ 참여연대 초창기에는 운영비를 마련하려고 일일 호프를 열곤 했습니다. 지인에게 소개를 받고 주류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나중에 그 회사를 나서는데 제 신세가 참 초라하더군요. 잘나가던 변호사였던 제가 맥주 구걸까지 하게 되다니... ”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있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꿈. 그리고 그러한 꿈이 그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박원순이 멘탈갑인 이유 둘,
나보다 사회를 더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마음
때려치는것보다 어려운 것이 개척하는 일이다. 박원순 정도의 스펙이라면, 사실 변호사를 그만둔다고 해도 할 일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은 시민운동가의 길이었다. 그는 왜 이러한 선택을 했을까.
“ 저는 직업의 본질이 ‘내게 주어진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것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결과물일 뿐이죠. 먹고사는 원천으로서의 소극적인 직업이 아니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주체적인 직업이 진정한 직업이라고 믿습니다.”
박원순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외국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오면 적용시키고 싶은 것들이 많이 눈에 보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잘먹고 잘 사는 길이 아니라 어떻게하면 ‘세상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 첫 시작인 참여연대를 필두로, 아름다운 재단과 희망제작소까지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달려왔다.
소셜디자이너.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박원순이 스스로 창안한 직업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오는 삶을 살아왔던 그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라고 권한다. 물론, 그 길의 바탕은 그가 걸어왔듯이 나만 잘 사는 길이 아니라, 남도 잘 사는,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함께 잘사는 길이다.
“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세상의 어둠을 환하게 밝히는 또 하나의 인생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과 경쟁만 할 것이 아니라 협동을 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강박관념에서 탈출하면 가슴속에 고이 간직해둔 자신만의 꿈과 열정이 되살아납니다. ”
그는 안정을 쫓아 성공가도를 달린 자신의 친구들을 보면, 조금 덜 가졌지만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 자신의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깨달은 시행착오 없이, 지금 당장, 변두리로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며 즐겁게 살기를 권하는 것이다.
‘조금 버리면 조금 얻고, 다 버리면 결국 다 얻게 되더라’ 던 박원순. 더 많이 가지기보다 나눠주는 삶을 살아왔지만, 역설적으로 직업에 대한 만족도, 사회적인 명성도, 세상을 위한 변화도 다 이루었으니 정말 그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닐까. 가장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려와, 결국 더욱 높은 자리로 가게 된 멘탈갑 박원순. 그의 삶을 반추하면, 내 것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해피엔딩을 보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이 들 뿐이다. 소셜디자이너 박원순, 앞으로도 더 멋진 세상을 위한 노력을 아낌없이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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