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는,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까 대충 살아도 됩니다. 이것 저것 다 해보기도 하고, 그냥 시간만 보내기도 하고요. 청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너무 잘 살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거잖아요. 젊었을 때는 천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거 다하고, 보고 싶은 거 다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면 아마 시간이 너무 많아서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거에요. 맞아요. 그래서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엇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그렇게 책에다 몇 번 밑줄을 긋다가 잠들고 나면, 또 새로운 날이 시작됐죠. 역시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은 나날중의 첫 번째 날.
- 김연수
소장입니다. 지난 주 일요일, 엄마 친구 아들을 만나 취업조언을 해줬습니다. 어쩐지 그런자리는 쑥쓰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몇 번을 거절하다가 엄마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만나게 되었지요. 26살 청년인 그는, 지금 제 입장에서 바라보기에 한 없이 어리기만 한 나이에도 불국하고, 어쩐지 무겁고 진중해만 보이더군요. 할 수 없이 자기소개서나 면접에 대해서 몇가지 할 수 있는 말을 내뱉고는... 다시 결국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정말 너무도 어린 나이인데, 해보고 싶은 걸 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너의 머리속에는 취업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래도 내가 30대가 되서 취업을 해보니 그것도 그리 늦은 것이 아니더라.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20대에 내가 해보고 싶었던것을 원없이 해봤던것이 나한테 얼마나 큰 축복으로 남아있는지 모르겠어. 너도 지금 이 때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이 분명이 있을 것이고,그것을 해봤으면 좋겠는데...'
스물 여섯. 지금의 제가 보기엔 머리가 쭈뼛 설만큼 젊고 싱그러울 나이입니다. 그러나 그 친구는 그 시절의 제가 그러했듯이, 지금이 얼마나 좋은 날들인지 모르고 있더군요. 그저 취업이라는 산을 넘기위해 고군분투할 뿐. 솔직하게 자기는 뭘 좋아하고 뭘 하고싶은지도 모르겠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전히, 내가 지나온 길을 누군가는 이렇게 힘겨워하면서 걷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20대를 통과한지 얼마안된 나이이지만, 그래도 20대로 돌아간다면 정말 하고 싶은게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것을 몰라 그저 시간만 흘러보내곤 했었지요. 갈팡질팡 하면서, 아무것도 못한채로. 그럼에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것은, 20대 중 후반에 해보고싶었던 일을 결국엔 해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20대를 관통하며 꾸준히 책을 읽고, 그 감상을 글로 적어왔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감정들, 그 섬세한 나만의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김연수의 글을 읽노라니 '청춘은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보내라' 는 말이 많이 와닿습니다. 지금의 제 나이도, 지나온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죠. 그렇게 조급해 할 필요 없다고, 너의 시간에는 있는 그대로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고. 20대가 끝났다고 청춘이 진것은 아니라는 것.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겨보려 합니다. 그렇죠. 저의 청춘은 아직도 이토록이나 많이 남아있는거겠죠. 배우고, 경험하고, 웃고, 울고, 그렇게 지나가고 만나갈 시간들이. 그렇게 천년을 사는 사람처럼 겪어야할 무구한 사건들과 또 만남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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