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나를 닮아서 거짓말을 못 해."
이 한마디가 뭐라고, 벌써 세 번째 손에 잡는 <중력 삐에로>를 읽다 펑펑 울어버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아버지와 아들이란 그렇다. 닮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면 어떨까. 피로 맺어지지도 않았고, 물려받을 유전자도 없다면? 소설 <중력 삐에로> 속 주인공인 하루와 그의 아버지가 그렇다. 하루는 아버지의 아들이지만, 사실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다. 그는 강간범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어느날, 예고없이, 불현듯 닥쳐왔던 추악한 그림자. 그 불행의 씨앗으로부터, 하루는 태어났다.
강간범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는 사실. 그것이 하루를 괴롭게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받아들였고 친자식처럼 키워왔지만, 형 이즈미 역시 단 한번도 피가 다르다는것을 의식하지 않고 든든하게 늘 곁에 있어줬지만, 하루는 가족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 가족들과 다르게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도 몸서리치며 괴로워한다. 어느 누구하나 가족이 아니라고 부인하지 않지만, 그는 끝없이 내적 갈등에 시달리는 것이다. 난 아버지의 아들이야. 아니, 난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야. 난 형의 동생이야. 아니, 난 형의 동생이 아니야.
소설은 방화사건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의문의 그래피티를 추적하며 이어진다. 미스테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하루와 그의 형 이즈미. 누가 불을 지른걸까. 왜 불을 지른걸까. 그래피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방화사건은 어떤식의 Rule로 번져만 가는걸까. 그러나 이러한 추리 구조는 구성상의 흥미요소일뿐, 결국 이 소설이 말하고자하는 것은 '신뢰라는 이름의 구원'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의심하며 괴로워하는 하루에게, 형 이즈미와 아버지가 보내는 묵직한 진심이다. '누가 뭐라해도 너는 내 동생이야. 누가 뭐라해도 너는 내 아들이야.'
몇번을 읽어도, "넌 나를 닮아서" 라는 부분에선 어김없이 목이 메어오고야 만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그게 진심이라는것을 알기 때문에 느껴지는 뭉클함.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끔 하는 뜨거운 진실. 믿음이란 언제나 이렇게 '이유가 없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근거가 있어서 믿는다면 그건 이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이유없는 믿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가 아니라 근거없이도 믿을 수 있는 누군가와의 관계가 아닐런지. 우리는 논리로 구원받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구원하는 것은 언제나, 근거보다는 믿음이다.
하루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을 힘주어 잡고 있었다.
"너는 나 몰래 큰일을 했어. 그렇지?"
아버지가 다시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잡은 손을 놓은 뒤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너는 거짓말을 할 때면 늘 눈을 깜빡여. 어릴 때부터 그랬어. 이즈미도 그래."
우리는 할말이 없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아니, 멍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버지는 다시 하루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우리 형제를 구원하는 최고의 대사였다.
"넌 나를 닮아서 거짓말을 못 해."
'행복탐사실 > 2013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영화 <공동경비구역JSA> (0) | 2013.11.28 |
---|---|
#13. 말들이 말을 거는 순간들, 단편소설 <그 남자의 책 198쪽> (0) | 2013.11.27 |
#12. 우리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영화 <토이스토리3> (0) | 2013.11.23 |
#11. 사소한 것이 때때로 인생의 전부다, 영화 <터미널> (0) | 2013.11.23 |
#10. 인생은 '그럼에도' 괜찮은거야,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2) | 2013.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