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푼크툼' 이라는 개념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영화가 있을까.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 병장 이수혁은 북한의 군사 오경필과 친분을 유지한다. 매일 밤, 돌멩이에 꽁꽁싸매 들려보내는 편지 한 통.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난 형이 있는게 소원이거든요." 라던 이수혁 병장과, "광석인 왜 이렇게 일찍 죽었대니? 우리 광석이를 위해서 건배 한 번 하자." 라던 오경필 중사. 그들과의 추억을 모두 공유하는 관객으로서는, 영화의 엔딩장면으로 쓰인 이 한장의 사진에 목이 메어오고야 마는것이다.
푼크툼. 나를 아프게 찌르는 그 무엇. 인생은 언제나 그렇게, '모두의'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닐까. 나에게는 '그 무엇' 이 존재하고 있을지, 내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 푼크툼의 순간들이 있을지, 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해 보게 된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찰나의 그 억겁같은 시간들.
"사진 예술에 대한 롤랑 바르트의 책에 등장하는 '푼크툼'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의 모습을 찍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에서, 그 사람의 구체적인 표정이나 자세보다 신고있는 운동화의 끈이 풀려있는 게 이상하게 가슴에 남을 때가 있다는 거죠. 그 풀려진 운동화의 끈이 사진에서 툭 튀어나와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듯한 느낌 말입니다. 저는 연출할 때 인위적으로 그런 푼크툼을 만들려고 해요. 그럴 때만 디테일에 집착하는 거죠. 달력 날짜가 맞는지, 이전 장면에서와 물건의 위치가 동일한지 같은 것은 사실 별로 신경 안 써요. 다시 말하면 저는 디테일이라서 집착하는 게 아니라 그런 디테일이 본질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 영화감독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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