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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탐사실/2013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9. 영어, 자부심과 놀이의 대상

by 김핸디 2013. 11. 23.




나에게 영어는 두 가지 의미로 함축된다. 첫째 자부심. 둘째 놀이의 대상. 


대학교 3학년 때, 아무생각 없이 책만 읽어오다가 문득 불안에 사로잡힌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취업준비라는 것을 전혀 하지않은 상태였다. 그저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영화제를 쫓아다니며 영화를 보고, 대학로를 놀이터 삼아 연극을 감상하곤 하는 그런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찾아온 그 불안감을 견딜수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무턱대고 시작한 영어공부. 그게 당시의 내가 찾은 해답이었다. 왠지 영어라도 해 놓으면, 이 불안감을 상쇄할 수 있을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했다.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고.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직장에 다니듯 꾸준히 영어를 그렇게 공부했다. 그리고 정확히 두달 후, 나는 모든 대학생들이 한번은 보는 시험인 토익에서 만점에 가까운 985점이라는 점수를 받을수가 있었다.


물론, 토익이 그리 대단한것이 아니라는것은 안다. 사실 토익따위는... 어차피 시험일 뿐이지 않은가. 그래도 이 경험은 나에게 꽤 큰 영향을 끼쳤다. 단순한 성적이 아니라 성취감의 증거로 남았던 것이다. 하여 훗날, 어떻게든 나를 붙잡아주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던것도 사실이다. "봐라,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도 영어는 나의 알량한 자부심이자, 적어도 "어디가서 밥벌이는 하겠지"라는 대책없는 낙관주의의 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요즘, 다시 영어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험을 보겠다거나, 이제와 새삼 실력을 향상시키겠다는 각오는 아니다. 그냥 '몰입대상'으로서의 영어다. 시간을 재고, 무턱대고 문제를 풀어가노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게임처럼, 문제를 풀어나가는 나와 정복대상으로서의 영어만 존재할 뿐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그랬다. 인생이 풀리지 않는 거 같을 땐, 수학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있다고. 답이 없는 세상에서, 답이 떨어지는 문제를 푸는 쾌감은 생각보다 클 수 있기 때문에. 수학을 못하는 나는, 그리하여 가끔은 영어문제집을 펼친다. 지문을 읽고, 답을 체크하고, 채점을 한다. 그러면 무척 선명하게도, 내가 맞은것과 틀린것이 구분이 된다. 틀린문제는 언제나 이유가 있고, 그것을 기억하면 다음에는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그랬다. 공부가 가장 쉬웠노라고. 학창시절엔 길길이 날뛰며 그말에 분노했고, 어른이 되어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래서 그 대단할 것없는 공부를, 나는 이제 틈틈이 즐기고 있다. 무엇하나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정확히 노력한만큼 결과로 돌아오는 대상. 영어는 그렇게 나의 자부심에서, 어느새 나의 놀이로 변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