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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탐사실/2013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10. 인생은 '그럼에도' 괜찮은거야,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by 김핸디 2013. 11. 23.



20대가 지나기전에, 나에게 영향을 끼친 100가지를 꼽아보고 있다. 음악 10곡, 도서 10권, 영화 10편 등등등. 영화 10편을 꼽겠다고 펜을 들었을 때, 주저않고 내 머릿속을 스친 한 영화가 있었다. 콩가루 집안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그린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 이다.


모든 컨텐츠가 그렇지만 결국 그 컨텐츠를 완성하는건 수용자다. 받아들이는 관객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 작품은 명작이 되기도, 졸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퀄리티를 전적으로 주관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기때문에 명작은, 그 명작의 기준은 저마다의 사정에 의해서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이 영화가 이토록 좋았을까. 먼저, 주인공의 상황에 따른 감정이입이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아마도, 이 영화를 보던 당시의 나는 무언가에 도전중이었거나 혹은 무언가에 실패한 직후였던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의 등장인물, 곧 죽을듯이 노력하지만 결국 좌절을 맛보게 되는 비운의 소년, 드웨인에게 마음이 가 닿았던 것이다. 얼마나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었는지, 이 소년이 차에서 뛰쳐나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절규할 때, 나도 같이 엉엉 울어야만 했다. 그 때는 그랬다. 나의 서러움을 그렇게라도 발산하고 싶었다.


물론 그것뿐이었더라면 그저 감정 해소용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장면, 그의 동생 올리브가 드웨인을 응원하는 이 장면에서, 나는 멈춰섰다. 울컥했고, 감동했다. 그리고 완전히 이 영화에 빠져들고야 말았다.





동생 올리브는, 상심한 오빠 드웨인에게 아무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저 그의 등뒤로 가서 곁에 앉고, 그의 어깨를 감싸안을 뿐이다. 아무말도 하지 않는 위로. 그러나 그렇기에 말할 수 없을만큼 크게 다가오는 위로. 그런 따스함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느꼈다. 그건 그냥 '괜찮아' 로 퉁치고 지나가는 위로가 아니었다. '니 잘못이 아니야' 라며 애써 달래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런 일이 있었어, 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무슨일이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그 지점, 성취와 무관하게 너는 그냥 너 자신이고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거. 그 뭉클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 위로는 당시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기도 했다. 나의 성취와 무관하게, 내가 실패를 했더라도, 그냥 나를 나로서 받아들여줄 사람들, 그 누군가가 내게는 절실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며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의 좌절과 그의 실패는 그라는 사람을 무너뜨릴 수 없었다. 힘이 들어갔던 이가 힘이 빠졌을 뿐, 드웨인은 여전히 드웨인이었고, 올리브 역시 여전히 그의 동생으로서 올리브였다.


영화는 재미있고 또 엉뚱하게 흘렀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툭 하고 지나가며 감동을 안겨주었다. 마지막 장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명장면으로 꼽을 이 영화의 라스트 씬. 그곳에 다다라서 나는 이 영화를 오래동안 사랑하게 될 것임을, 그리고 내 마음 한켠에 오랫동안 간직하게 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가족이 타고 온 폭스바겐은 고장난다. 그래서 그들은 힘을 합쳐 자동차를 밀 수 밖에 없다. 끙끙대며 밀어가는 고물 자동차. 어쩌면 그게 우리 인생은 아닐런지. 누군가는 쌩쌩한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고, 누군가는 또 럭셔리한 세단을 타고 달린다. 그러나 누군가는 결국 고장난 자동차를 밀어가면서 달려야만 한다. 


느리고, 불편한 고물 자동차.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것은, 그 자동차를 함께 밀 다른 사람들의 존재때문이다. 고물 자동차는 함께 밀어야 한다. 그리고 그 차를 타고 달리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만 한다. 그렇게 덜컹거리며 그들은 달려간다. 상처나고, 또 좌절한 채로. 


멀어지는 자동차를 바라보며 '그럼에도 괜찮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동차의 기종보다 중요한것은, 언제나 그 여행을 함께 할 사람들의 곁이니까. 그래서 이 영화를 생각하면 한 없는 위로와 따뜻한 응원을 받는듯한 기분이 든다. 인생은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자동차다. 그러나 결국 다 괜찮을 것이다. 나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기에, 지치고 상한 그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내가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