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하는 야구팀이 졌는데도 기뻐 날뛰고 있는) 소장입니다.
☞주의 이 글은... 스크롤의 대압박이 예상됩니다.
오늘 보시는 바와 같이 유시민 씨를 만나 사인을 받았습니다. 헤헤헿헿. 처음받는 사인도 아닌데, 어찌나 좋던지... 밖으로 나오면 서 괜히 함께 간 친구와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습니다. 어떡해! 너무 좋아!! 이러면서요. 그러고보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직도 왜 그렇게 좋다고 흥분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시민 씨를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유시민 빠' 라고 규정할 정도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일전에 한 번 사인을 받고 사진까지 같이 찍었을때도 이런 기분은 전혀 아니었거든요.
여튼, 자유인으로 돌아온 유시민 씨의 사인을 꼭 품고... 너무 좋아서 보고 또 보며, 집으로 오는 내내 사인 문구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자기답게 행복하게! 나 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나 답게 또, 나 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버스를 타고 오는 1시간여의 시간동안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오랜만에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잘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유시민 씨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신간에서 '쓸모있는 사람이 되라' 고 말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나의 쓸모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뭘 잘하는 인간인가를 먼저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잘 하는 일.
1. 글 쓰기
부끄럽습니다만... 그렇더군요. 물론 객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저는 제 글이 늘고 있다는것에 만족하는 사람이지, 잘 쓴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니까요. 사실, 여전히 갈 길이 멀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살아오면서 제가 칭찬을 받았던 경험의 상당수가 바로 글 쓰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최초의 기억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당시 작문 숙제가 6.25를 배경으로 짧은 단편소설을 써오는 것이었는데, 그 때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글 쓰기로 칭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6.25를 기점으로 역순으로 돌아가는 짧은 이야기를 구성했었는데, 그 형식이 독특하다고 평을 해주신것이지요. 아... 돌이켜보면 그 때 정말, 얼마나 뿌듯했는지!
대학에 와서는 영화평론을 써서 칭찬을 받았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교양과목에서 과제로 단편영화를 보고 A4용지 2장 정도 분량의 평론을 쓴 적이 있었거든요. 영화 <벤허>의 감독이 '신이시여 제가 정녕 이 영화를 만들었단 말입니까'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죠. 저도 처음 쓰는 영화 평론에 죽을동 살동 매달리며 며칠간을 매달렸는데, 완성 직후 '신이시여 제가 정녕 이 글을 썼단 말입니까' 라는 자뻑을 그 때 딱 한번 해볼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저만의 자뻑은 아니었는지... 교수님께서 100명의 수강생 중 7명을 꼽아 칭찬 해주셨는데, 그 때 제 글이 포함되어 있기도 했지요. 으헝허허허헣헣.
그 후에도 언론고시반에 몸 담았을 때, 매주 작문 과제를 하면서 선배들로부터 격려를 받았고, 블로그를 2008년부터 해오면서 종종 지나가시는 분들로부터 덕담을 들었습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우수 리뷰로 꼽힌적도 있으니, 그래도 나름 인정을 받은 셈이지요. :)
2. 영어 가르치기
음... 스무살 때부터 과외를 해왔습니다. 물론 계속 과외만 한건 아닌데... 대학 졸업할 때까지 대략 10명 정도 가까이 가르친것 같아요. 꽤 많이, 그리고 열심히 과외를 해 온 셈이지요. 초창기의 전과목 과외만 빼면 주로 영어를 가르쳐왔습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려니 굉장히 쑥쓰럽습니다만.... 학생에게 '선생님 어디서 가르치는 거 배워와요? 왜 이렇게 잘 가르쳐요!' 라는 오그라들면서도 입가를 씰룩거리게 하는 칭찬을 들은적도 있었습니다. 하핳핳핳... 물론 숱한 성적향상을 이끌어왔고... 덕분에 제가 먼저 '관두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늘 학생과 부모님의 신뢰를 받으며 과외선생으로서의 명성(?)을 쌓을 수도 있었지요.
가르쳤던 대상도, 초딩, 중딩, 고딩, 고3을 포함해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토익강의까지 해봤으니... 저는 가히, 영어 가르치기에 재능이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습니다.
3. 프리젠테이션
대학 다닐 때, 굉장히 강도 높은 프리젠테이션 훈련을 받았습니다. 1학년 찌질이, 2학년 어벙이 시절을 거쳐, 3학년때부터는 제법 괜찮은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갖추게 되었지요. 4학년때부터는 실로 날개를 달아... 경쟁 PT에서 1위도 하고, 교양수업에서 모르는 타과생에게 '프리젠테이션 정말 잘하시네요' 라는 칭찬을 듣곤 했습니다. 회사 인턴시절에도 동기들과 정직원들에게 '뛰어나다' 라는 평을 듣기도 했으니... 저는 과연... 스티브잡스...까지는 아니지만 꽤 프리젠테이션을 잘하는 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헤헤헣허허.
잘 하는 일이 있다면, 못하는 일도 있겠죠, 당연히! 잘 하는 일로 한 껏 업된 기분을, 누르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 못하는 일.
1. 예능
여기서 예능은 TV의 그 예능이 아니고 예체능 할때의 예능입니다. 저는 체육은 좀 했는데... 예능은 정말 젬병이었습니다. 중학교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가 도와준 딱 한번을 제외하고 전부 미술과목에서 C를 받았어요. 선생님께서 ㅡ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싶어 야속하지만ㅡ 저에게 C를 주면서 "넌 C도 잘 준거다" 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만들기, 그리기, 조각... 어떻게 손재주가 없어도 이렇게 없는지. 정말 하나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 때문에 저에게 늘 미술시간은 지옥이었고곤혹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음악도 참 못했지요. 물론 저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때 신기를 발휘해서 만든 자작곡이 있습니다만(히히) ... 청음, 악보 그리기, 기악시험 등 수업시간에서의 음악은 배우는 것마다 지지리도 못 했습니다. 여태까지 배운 악기만 해도, 단소-대금-소고-드럼-피아노-기타-우쿨렐레까지 다양하지만서도... 단 하나도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이렇네요. 예능엔 정말 젬병인가 봅니다.
2. 수학
고1 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수학고자로구나. 고 3때까지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해도, 점수는 오르지 않더군요. 다행히도, 요행스럽게도, 수능에선 평소보다 20점이나 오른 기적을 연출하며 꽤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것 뿐. 중1 수학도 어려워서 과외를 시도했다가 깨갱하며 물러섰고, 지금도 중3 수학으로 기억하는 속도 문제, 염분 문제, 뭐 이런거는... 10개를 풀면 2개 정도 맞추는 수준입니다. ....-//////-
3. 살림
네... 저는 마이너스의 손입니다. 빨래도, 요리도, 청소도, 다림질도... 정말 드럽게 못해요. 부끄럽네요. 길게 말하진 않겠습니다.
다음으론, 좋아하는 일로 넘어가 봤습니다.
잘 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일치하면 좋겠지만, 그리고 내심 그럴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니더군요.
#. 좋아하는 일
1. 응원
최근에 꼽은 대로, 응원입니다. 아마 좋아하는 일로만 직업을 정해야 한다면, 저는 '방청객' 이 딱일겁니다. 호응수준이 남다르거든요. 실제로 그 특유의 호응으로 방송국 FD님들에게 무한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친구 응원하러 <장학퀴즈> 갔다가 응원 잘한다고 문화상품권 잔뜩 받아왔었지요. 헤헤헿) 실제로 누군가를 향해 환호하면서 응원하는 게 정말 좋습니다. 전 그래서, 영원히 누군가의 팬이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2. 포토샵
제가 보기와는 다르게 포토샵을 좀 합니다. 모바일 회사의 이미지 보정 담당으로 일한적도 있으니까, 꽤 하는 편이지요. 그러나 제가 제일 몰입할 때는 여행지에서 찍은 제 사진을 다룰 때입니다. *-_-* 미술을 못해서 그런지, 명도와 색채를 조절하고, 선명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이 정말 재밌더군요. 어쩔 때는 포토샵을 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3. 연구
제가 소장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저는 호기심이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 파고들면서 공부하는 게 무척 재밌어요.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새로운 지식을 깨닫고 그것을 기존의 지식들과 연결하는 일이 정말정말 즐거운거죠. 제가 가장 행복할 때는 어떤 책을 읽는데 그게 내가 아는 내용이라는 걸 알아챌 때입니다. 예전이라면 다 모르는 내용이었을텐데, 그 동안 지식이 쌓이면서 이제는 '아? 이거 그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럴 때 왠지모를 희열을 느끼고, 새로운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가 샘 솟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싫어하는 일을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 싫어하는 일
1. 꼼꼼한 확인 작업
저... 이거 잘합니다. 예전에 모 식품회사에서 알바할 때 재고담당을 했었는데, 숫자 안 맞는다고 드럽게 욕을 먹었습니다. 정말 맨날맨날 욕을 먹었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덕분(?)인지... 그 이후로 뭔가 확인하는 작업이 있으면 틀려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긴장을 120퍼센트 하면서 꼼꼼하게 잘합니다. 근데, 진짜 너무너무 하기 싫습니다. 원고 오탈자 확인하는 편집자나, 수계산이 정확해야 하는 세무사같은 직업을 가진다면... 아마 전 돌아버릴것 같습니다. 꼼꼼한 거... 아, 정말 너무너무 싫습니다!
2. 돈 관리
전 정말... 숫자안티입니다. 숫자 꺼져! 숫자 아웃! 대학교 2학년 때 빵집에서 알바한 적이 있는데... 캐셔부터 재고관리, 운반에 직접 도넛 튀기기까지... 정말 버라이어티한 일을 시키고, 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생색은 드럽게 내는 최악의 알바였습니다. 근데 그 중에서도 가장 싫었던 게 캐셔일이었어요. 돈을 받고, 주고, 거스름돈을 계산하고, 이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실제로 계산 틀린적도 몇번 있었고, 한 3개월을 했는데... 끝날 때까지 그 일이 정말 싫고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3. 반복되는 업무
만약 저한테 누군가가 구청 공무원 특채를 시켜준다면... 배부른 소리지만, 전 거부할겁니다. 거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공무원 중에서도 활발하고 또 창조적인 일을 하는 보직도 있겠지요. 하지만 제가 경험한 공무원사회는 정말 무덤 같았습니다. 대학생 때 구청에서 알바를 한 적이 있었거든요. 일은 정말 편했지만... 진짜 너무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습니다. 말 그대로 '심심해 죽겠다' 를 온몸으로 느꼈던 나날이었지요. 저 뿐만이 아니었어요. 계장님, 과장님, 공공근로요원... 그 구청의 하루는 정말이지 '죽은 사람들의 사회' 라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아무리 편해도, 단순 반복업무는 정말 싫어합니다. 그게 적성에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고 그 일도 어느 누군가는 분명 맡아서 해야 하는 일이겠지만.... 저한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 못하는 일, 싫어하는 일, 잘하는 일. 이 네 가지를 써가면서 저도 몰랐던 저의 모습은 깨닫고, 알고 있었던 모습도 더욱 자세히 알게 된 것같은 기분이 드네요. 자기 답게 산다는 거, 그러려면 자기가 누군지 먼저 알아야겠지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대충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싫어하는 일과 못하는 일은 피하며 살아야지요. 오늘은 유시민씨가 사인을 통해 전해준 메시지 덕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또 미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나를 알고 나니까, 괜시리 홀가분해 지네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고. 못하는것도 많지만 잘하는 것도 조금은 있으니까요. 자기답게, 행복하게! 이제는 제 자신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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