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노, 하나 보면 하나 안다.
사람 속단하는 거 아니다.
- 김어준, <건투를 빈다> 中
나이 먹으니까 모순 된 속담들을 보며 '어쩌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가라' 와 '쇠뿔도 단김에 빼라' 이지요. 조심성을 가지고 차근차근 가라는건지, 그냥 확 지르라는 건지, 도통 모호해 지곤 합니다. 지혜를 담았다는 속담에서도 이렇게 모순된 부분이 있는거지요. 아마 저마다의 사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교훈이라 그럴겁니다.
한편, 이러한 속담도 있습니다. '하나 보면 열을 안다' 와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 어쩌라고? 싶기도 하지만, 또 살다보면 둘 다 '맞는 말이네' 싶기도 합니다. 무엇을 좀 더 유념해두고 선택할 지는 각자의 몫이겠죠. 하지만, 제가 요즘 김어준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연구를 하고 있어서 그러는지는 몰라도, 저 문구가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하나 보면 열을 안다? 노, 하나 보면 하나 안다. 사람 속단하는 거 아니다.'
생각해보면 속단으로 인해 스스로 배신당한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20대 초반때의 얘기죠. K대 출신의 대기업 다니던 키 180의 훈남. 외형적인 조건을 보고 짝사랑했었는데, 알고보니 공감능력 제로의 팔푼이 였습니다. 반면, 경찰공무원 준비하던 그냥 흔남은 지나고보니 정말 '됨됨이' 가 묻어나는 사람이었죠. 뭐, 남 얘기 할 것 있나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까불까불 하고 씩씩해 보이지만, 사실은 눈물도 많고 술도 못 마시고 엄청 여린 사람이거든요.
내 자신이 한 가지의 필터로만 걸러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속단하기에는 너무 정교하고 복잡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사 너무 복잡해서 정보들이 범람한다해도, 사람에게 만큼은 알아가는 속도를 늦춰서 서로를 좀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겨우 한 가지의 속성으로 판단하기엔, 우린 저마다 너무 깊은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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