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멘붕극복실/괜찮아 : 아포리즘

<가끔은 제정신> 中 당신의 선택에 감사하세요

by 김핸디 2012. 6. 4.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내게 상담아닌 하소연을 하며 자신의 배우자에 대해 갖가지 불만을 털어놓는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가정을 등한시하거나, 자식만 예뻐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시댁만 챙기거나 등등 갖가지 사정을 얘기한다. 이때 결론은 대부분 하나다.



"내가 그 사람만 안 만났으면...."



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그 문장을 완성하지는 않는다. 그냥 암묵적으로 그런 문제점이 없는, 더 나은 상대를 만나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 문장을 꼭 완성해준다. 술을 좋아하는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말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 안 만났으면, 술을 더 많이 마시면서 때리기까지 하는 사람을 만났을텐데" 라고. 자식만 예뻐하는 배우자를 불만스러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을 안 만났으면, 배우자뿐 아니라 자식까지 버리는 사람을 만났을 텐데" 라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재보다 조금 더 좋은 상황을 상상하며 현실을 불만스러워한다. 하지만 현재보다 더 나은 선택만큼, 현재보다 더 나쁜 선택과 가능성도 존재한다. 결국 우리는 무한한 선택 앞에서 미래를 잘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안고 '하나' 를 선택한다. 그런데 나중에 선택의 결과를 알고 나서는, 마치 어떻게 될지 알았는데도 잘못 선택한 것같이 느낀다. 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항상 겸손하게 받아들이자. 그 순간에는 그게 최선이었음을. 그래야 주어진 현실과 내가 선택해서 만든 현실에 좀 더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




- 허태균, <가끔은 제정신> 中









저는 대학을 선택할 때 3일밤 정도 잠을 못이룰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 때, 제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어요. 하나는, 담임선생님이 추천하는 점수에 맞춰가는 선택. 조금 더 '학벌' 을 위한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가 하고싶은 선택, 조금은 낮춰가지만 그래도 원하는 전공을 공부할 수 있는 선택이었지요.


마지막까지 고민고민하고 결국 선생님과의 통화에서는 "선생님 뜻에 따르마" 하고 합의를 봤어요. 하지만 정작, 전화를 끊고 컴퓨터 앞에서 원서접수를 할때는 결국 제가 가고싶은 길을 선택했지요. 대학만큼은 내가 해보고싶던 공부를 해야겠더라고요. 후회가 없었으면 그 자체로 해피엔딩이었을텐데, 사실 얼마나 후회를 많이 했었는지... 정작 공부를 해보니까 제가 생각했던것만큼 재밌지도, 나와 잘 맞는것 같지도 않더라고요.


하지만, 한참뒤에 깨달았어요. 선생님의 선택을 따랐으면 더 힘들었을수도 있다는걸요. 저는 비록 후회했지만... 제가 선택했기에 누구도 탓하지 않아요. 하지만, 선생님의 선택을 따랐더라면 비난과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요.


아직도 제 전공을 선택한것이 그닥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의 전공을 안 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전공에 대한 후회와 그에 따른 방황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과정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 불확실성 속에 삽니다. 즉, 어떤게 좋은 선택인지 나쁜 선택인지 알 수는 없는거지요. 그러나 이왕 나의 선택이라면 선택하지 않은것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선택한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사는게 현명한 일 아닐까요.


아마 19살의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해도 죽을듯이 고민을 하고, 다시 또 제 선택을 따를겁니다. 그 때 저는 '최선' 을 선택햇던거니까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가장 좋은 선택' 을 했던것 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