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영화를 한 편 봤습니다. 제목은 <멋진 악몽>. 형용 모순을 제목으로 달고 있는 이 영화는, 일본특유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휴머니즘이 잘 어우러진 영화입니다. 코끝이 찡해지는 감동이 영화 전반에 걸쳐있는 웃음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작품이죠. 이 영화는 '잘 만든 코미디' 입니다. 배우 이순재씨가 이런 말을 한적이 있어요. "희극에는 휴머니즘이 담겨있어야 한다. 희극을 웃기려고 만드니까 비극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 말에 비추어보자면 아주 제대로 된 희극인 셈입니다.
주인공은 매사가 엉망진창인 변호사 호쇼 에미(후카츠 에리). 아버지는 뛰어난 변호사였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아버지의 명성아래서 허우적대고 있는 중입니다. 의뢰인이 그녀를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기 일쑤, 보다못한 그녀의 상사는 그녀에게 마지막 기회를 통보하지요. 그런데, 그 마지막 기회라는게 정말이지 골 때립니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는 복잡한 사건, 즉 '유령이 증인인 살인사건' 이거든요.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사람도 궁지에 몰리면 말도 안되는 짓을 하기도 하는가 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거죠. 호쇼의 의뢰인은 자신은 범인이 아니며,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그 시간 자신은 패전무사 유령에게 가위 눌려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유일한 증인은 유령인거지요. 유령이 증인이라고? 하하하, 유령이 증인이래.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호쇼는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뭐, 어쩔 수 없는거죠. 딱히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영화는 여기서 부터 코미디의 향연을 펼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호쇼 에미를 비롯하여, 엉뚱하지만 귀여운 패전무사 유령 사라시나 로쿠베, 냉철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검사 오사노 테츠, 반전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 주인공의 상사 히야미등의 캐릭터가 재기발랄하게 뒤섞여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달아가지요. 감독은 촘촘히 이야기를 엮어가면서도 코믹의 요소를 놓치지 않습니다. 연실 웃음이 터지는데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짜릿함, 그래서 관객은 내내 재미를 느낄 수 있는거고요.
너는 지혜롭고 용기도 있어.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점이 있다면.... 자신감.
네가 스스로를 믿지 않는데 어느누가 너를 믿어줄 수 있겠어.
- 영화, <멋진 악몽> 中 로쿠베가 에미에게 하는 위로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또 성장 영화이기도 합니다. 부족하고 어수룩한 캐릭터인 호쇼 에미가 유령 로쿠베를 만나 위로를 얻고, 스스로를 긍정하게 되는 이야기이지요. 둘은 겉으로만 보면 루저입니다. 한 사람은 하는 일마다 안되는 변호사이고, 한 사람은누명을 쓰고 죽어 그 원한으로 이승을 떠도는 불행한 영혼이지요.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격려를 북돋아줄 때 그들의 상처는 치료되어가고, 두 사람은 어느새 자신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저만치 성장해 있습니다.
늘 외롭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나의 곁에 누가 항상 있어주었다는 따뜻한 진실, 역사속에서 잊혀져 갔지만 누군가는 나의 결백을 믿어주며 내 존재를 그리워했다는 사실, 정의를 위해 싸울 때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는 진리... 이 영화의 미덕은 코미디속의 이토록 많은 가치들을 담고, 몇 번이나 가슴을 뭉클하게 치고 간다는데 있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또 웃다가 울다가. 그러면서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거죠.
요즘 어떠세요. 다 괜찮으신가요. 아니면, 혹시 일이 잘 안 풀리시나요. 최근 가까운이를 잃어버리고 상심에 허덕이고 계시지는 않으시구요. 그것도 아니면, 억울하게 내 존재를 다른 이들로부터 부정당하고 있지 않으신지요. 혹여 당신이 빨간약으로는 치유되지 않을, 마음의 아픔들을 껴안고 있다면, 어제 이만큼 무너진 멘탈의 붕괴를 채 수습하지도 못한 채, 다시금 2차 멘탈붕괴로 허우적 대고 있다면, 이 영화를 권합니다. 아마도 행복해질거에요. 제가 그랬던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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