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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붕극복실/멘탈붕괴의 현장

인생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 영화 <똥파리>의 감독 양익준

by 김핸디 2012. 3. 31.




<똥파리>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도 어쩌면 무모한 것이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제작처와 투자처를 찾아다니면서 실망도 많이 했다. 몇 개월 동안 오지 않는 연락을 기다리며 절망하고 술만 마시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완성시키면서 올봄에 찍어야겠다고 세워놓은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런데 방에 틀어박혀 봄과 마음을 축내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을에 찍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거짓말처럼 가벼워졌다. 걱정이 없고, 세상이 편해졌다. 그러고는 방에서 나와 전재산 삼십만 원으로 단편 영화를 찍었다. 얼마 전까지 스트레스로 어쩔 줄 몰랐는데 갑자기 진심으로 행복해졌다. 그리고 그해 가을에 시작해 겨울을 이어가며 <똥파리>를 완성했다. 만약 봄에 찍을 수 없다는 사실에 매달렸다면 <똥파리>가 지금 이 세상에 나왔을까? 힘들고 괴로웠지만 값진 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이 소중하다. 아프고 쓰라렸던 경험조차 큰 자산이 됐기 때문이다.


답은 삶을 열심히 살고 소비해가는 중에 스스로 깨우치게 되는 것 같다.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으로 겪은 것들이 결국은 스스로의 정당한 답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순간이 언젠가 오게 된다면 그것은 당신이 건강하게 삶을 소비하고 겪어낸 것에 대한 세상의 작은 보답일 것이다. 


- 양익준, <인생기출문제집2> 中








최근 엠마왓슨이 좋아한다고 언급해서 다시금 화제가 된 영화 <똥파리>, 이 영화의 주연 겸 연출을 맡은 양익준 감독이 멘탈붕괴의 순간을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계획대로 봄에 영화를 찍고자 했지만 그게 어긋나다보니 많은 좌절과 불안속에 살았다고 하네요. 그러나 그는 마음을 비웠고, 상황이 아닌 태도를 바꿈으로써 결국 <똥파리>라는 호평일색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지요.


살다보면 이렇게 자신의 계획대로 흐르지 않을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계획대로 흘러갈때보다는 내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갈때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이런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모 기업에서 단기로 일을 하게 된것도 저의 계획에는 전혀 없던 스케줄이었고, 고등학교 때 감독을 꿈꾸며 영화제작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배우를 하기도 했고, 작년에 면접을 보고 떨어지고 나서야  그전에는 구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 멘탈갑 연구소도 개소할 수 있었지요.


지난번에 법륜스님이 했던 이야기를 제가 '인생의 아포리즘' 방에 올린적이 있었죠. 실패했을 때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건 꿈이고, 실패가 견딜 수 없으면 그건 욕심이라고요. 저의 경우에는 계획이 어긋남으로써 사실은 나의 계획이 욕심이었음을 알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다른 방향을 길을 찾아 보았고 그곳에서 의외로 다른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지요. 


우리의 삶이 우리의 계획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 정도인것 같습니다. 첫째, 양익준 감독의 경우처럼 막차를 억지로 쫓기 보다는 다시 올 첫차를 차분히 기다리는 것. 둘째, 저의 경우처럼 내가 가기로 했던 목적지를 바꾸어 주변의 대안을 모색해 보는 것. 전주가 목적지였지만 사실은 대신 간 순천이 더 좋을 수도 있는거니까요.


그러니, 인생이 자신의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자책하거나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원래 인생이란 계획대로 흐르거나 통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조금 불안하기는 해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봄에 못했다면, 가을에 하면 됩니다. 겨울도 있고, 여름도 있고, 다시 올 찾아올 봄을 기다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그 때까지 내 계획의 차례를 한 번 기다려 봅시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것이 내 꿈이 확실하다면, 내가 애쓰지 않아도 결국엔 그곳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