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입니다.
장안의 화제인 영화 <변호인>을 보고왔습니다. 변호인은 아시다시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모티프로 하고있습니다. 모티프라고는 하지만, 사실 디테일한 부분에서까지 굉장히 많이 사실을 차용하고 있을 정도로, 그냥 '인간 노무현' 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영화를 보면서 좋았던 점은 그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화니 뭐니 딴지를 제기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김어준의 말대로 검증은 '삶 전체를 두고 하는 것' 입니다. 평가는 다를 수 있을지 몰라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이, 인권변호사시절이, 약자를 대변하는 시기였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영달을 포기하는 길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문득, 연극을 공부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선생님이 <햄릿>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햄릿을 우유부단하다고들 하는데, 중요한것은 그가 고민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민끝에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만하고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범한 이들은 갈팡질팡하면서도 결국 가야만 하는 길을 간다.'
사실 송우석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아무리 세상이야기를 떠들어 봐도 꿈쩍도 하지 않고, 국밥집 아주머니가 찾아와 애원을 해도 눈앞의 비즈니스는 포기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현실이지요. 그러던 그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갈팡질팡 들어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를 움직였던 건 결국 '사람' 이었습니다. 이념이나 사상이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 '어? 이건 아닌데?' 싶어 움직이는 뜨거운 진심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가야만 하는 길' 을 선택합니다.
사람은 자기 선택의 누적분이다. 김어준의 말입니다. 사람은 덜도 더도 말고 딱 그 사람의 '선택' 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송우석은 돈을 선택했고, 비즈니스를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선택하고 정의를 선택하기 시작합니다. 용기를 선택하고, 진실을 선택하고, 타협이 아닌 투쟁을 선택합니다. 옳은 것은 옳고, 잘못된 것은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여 '인간 송우석'을 만들어냅니다.
영화 <변호인>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그의 선택은 다시 수 많은 변호인들의 선택으로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제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묻겠지요. 처음부터 옳은 길 바른 길,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건 아니지 않아?' 라면서 한 걸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라며 또 한 걸음, '그래도 이게 옳은 것 같아' 라면서 한 걸음. 이렇게 걸어가는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우리의 선택이 곧 우리 자신입니다. 비틀거려도, 갈팡거려도, 결국 나를 배신하지 않는, 그런 선택들을 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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