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새벽 두 시쯤 원고를 탈고했는데, 안 자고 있기에 "엄마 원고 탈고했다. 술 마시자" 고 했죠. 술을 마시는데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마, 정말 엄마 딸이라서 너무 다행이야." 그래서 "뭐가" 그랬더니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다른 애들이 얼마나 지옥 속에서 사는지 이제 알았어." 그래서 "뭐가 지옥이냐?"고 했더니 다른 친구들한테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계속 있다는 거예요. 내 딸 친구들은 얼마나 똑똑한지, 어떤 애가 하나 있는데 공부를 잘해서 교대를 갔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과목을 F를 받았대요. 그게 임용 때 굉장히 영향을 미치나 봐요. 그래서 온 집 안이 초상 분위기로 변했다는 거예요. 이 친구가 내 딸을 만나서 "내가 스무살인데, 난 이거 하나 실패할 수 없는 거니?" 하면서 울었다는 거예요. "너희들은 그렇게 고차원적인 말을 하면서 술 마시냐?"했는데, (웃음) 순간 저도 모골이 송연했어요. 물론 그 엄마, 아빠가 슬퍼하는 마음은 나도 엄마니깐 알지만, 정말 부담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우리 엄마 아버지가 내가 처음 이혼했을 때 '인생 끝났다' 이러면서 울고불고 그랬으면 난 어땠을까. 나도 가뜩이나 마음이 안 좋아 죽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내가 그 얘기를 한거죠. '젊을 때만이 실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다. 나이 들어서 실패하면 힘들다. 지금 마음껏 실패 다 해봐라. 그러면 적어도 어떻게 하면 실패하는 줄은 안다' 그런데 자기는 느꼈나봐요. 자기가 실패해도 엄마는 절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걸 안 거 같아요.
- 공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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