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동사의 욕망이 아니라 자동사의 욕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타동사의 욕망일 때는 바깥에서 회유나 위험, 예컨대 "너 밥줄 끊어버릴 거야", 아니면 "이거 해줄게" 라고 하면서 사람을 망가뜨리잖아요. 그런데 아예 그걸 포기하고 살면, 협박받을 것도 없지요. "밥줄 끊을 거야" 그러면 "끊어봐", 또 "이거 해줄게" 그러면 "너나 과자 많이 사 먹어" 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 진중권
제가 요즘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친구 축의금 내려고 시작한건데 일이 편해서 그냥 계속 하고 있어요. 인생은 2모작이라는 평소 신념도 있고요. 하여간 제가 하는 일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인데, 거기에 진짜 못말리는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보통 교육이라는것을 할때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잖아요. 저는 주로 당근을 많이 쓰는편이지만 진짜 말을 안 듣는 학생한테는 채찍을 써야할 때도 있거든요.
채찍이라는 말이 어감이 좀 그렇지만, 이런거죠. 너 자꾸 이러면 원장님한테 이른다? 일종의 협박을 하는거에요. 그러면 왠만한 애들은 움찔이라도 합니다. 저는 만만하지만 원장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란걸 아니까요. 그리고, 애들이 또 제일 싫어하는 말이 '너 이러면 집에 못 간다?' 라는 말입니다. 이것만큼 강한 말은 없어요. 이 얘기 들으면 백이면 백 애들이 전투능력이 막 상승하거든요. 어떻게든 끝내고 빨리 가려는거죠.
그런데 여기 진짜 못말리는 학생이 한 명이 있습니다. 이 꼬마는 이래요. 너 자꾸 이러면 원장님한테 이른다? 아싸~ 제가 미치죠. 너 이러면 집에 못가? 아싸~ 계속 아싸라고 그래요. 환장 하겠는거죠. 얘 한테는 어떤 협박이나 강요가 안 되는거에요. 너 이거 이렇게 많이 틀렸어? 재시험봐야겠다. 아싸~ 뭘해도 아싸에요, 얘는. 나중에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그냥 얘랑 계속 웃었습니다. 그냥 얼굴만 봐도 웃기더라고요.
물론, 아르바이트지만 교육자로서의 사명감이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지식을 전해주고 싶고, 이왕 하는거 잘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저는 얘가 참 예쁩니다. 다른 애들은 '해야한다' 라는 내면화가 되어있는데, 이 꼬마는 아직까지 정말 자유로운 거에요. 싫으면 절대 안하죠. 모든게 아싸, 인데 뭐가 두려운게 있겠어요.
진중권의 이 말을 듣노라니 그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 꼬마한테 영향을 받아서 제 카카오톡 프로필이 아싸 ㅋㅋㅋ 입니다. 8살짜리한테 배운거죠. 그래, 나한테 뭐든 와라. 아싸로 다 받아주마. 외부에서 뭐 어떤 기준에 맞춰 살아야되면 아주 힘듭니다. 근데 남들의 협박에 '아싸~' 하고 받아주면 아주 편한거죠. 물론 자동사의 욕망에서 나온 일들은 열심히 해야겠지만요.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겁이 많으면 외부의 목소리에 움직이게 되죠. 하지만, 팔짱 딱 끼고 있다가 '웃기고 있네!' 하고 뛰쳐나가는 사람에게는 두려울 게 없습니다. 물론, 노예로 사는게 훨씬 편하죠. 편하기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고요. 하지만 조금씩 틀을 벗어나보는건 어떨까요. 강신주의 말마따나 게릴라로 살다보면 게릴라를 만납니다. 혼자일것 같지만 자동사의 욕망을 따르는 순간, 거기서부터 진짜 '친구'를 만나고 진짜 '경험' 이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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