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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추구실/멘탈갑 : 어록

루쉰, 가능성의 희망

by 김핸디 2012. 6. 24.

 

"가령 말이야. 쇠로 만든 방이 있다 치자고. 창문은 하나도 없고 부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야.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깊이 잠들어 있는데, 머지않아 모두 숨이 막혀 죽을거야. 하지만 혼수상태에서 죽어가는 거니까 죽음의 비애는 조금도 느끼지 않지. 지금 자네가 큰소리를 질러서 비교적 정신이 있는 사람 몇 명을 깨운다면 말이야. 그 불행한 소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종의 고통을 주게 될 텐데,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어? "

 

" 하지만 몇 사람이 일어난 이상, 그 쇠로 만든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 루쉰, <투창과 비수> 中

 


 




 

 

아큐정전으로 우리에게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가 루쉰. 그는 아무리 글을 써도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세상에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칩거 생활에 들어갔지만, 어느날 친구가 찾아와 중국의 청년들을 일깨우기 위한 잡지를 만들자고 제안하지요. 친구의 간곡한 부탁,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은 거절합니다. "몇 명을 깨운다면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을 줄텐데, 미안하지 않겠어?" 하지만 친구는 이렇게 반박하죠. "몇 사람이 일어난 이상, 그 쇠로 만든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여러분은 어느 쪽이세요. 절망하는 다수에 체념하는 쪽, 아니면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시도해보는 쪽? 저는 '가능성' 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중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서 생활기록부에 '발전가능성이 있는 학생임' 이라고 적어 주셨거든요. 그 때 이후로 그말이 그렇게 참 좋더라고요. 가능성. 몇 퍼센트인지는 중요한게 아니지요, 가능성만 있다면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니까요.

 

지금 할까 말까 망설이는 일이 있다면, 시도해 보세요. 그리고, 스스로를 믿어보세요.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건 어쩌면 내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니까요. 당신이 시작하고 움직이면, 누군가는 그 '가능성' 을 믿어주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그때는 혼자가 아니지요. 믿으세요.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될거라는 걸.

 

 

비현실적이 되자.

그래야 가능해진다.

 

- 프랑스 68 혁명의 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