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멘탈갑추구실/좋은생각 : 강연 및 인터뷰

[한겨레] 김정운 칼럼,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기다!

by 김핸디 2012. 2. 7.


당분간 공부만 하겠다는 각오로
‘다 때려치우고’ 일본에 혼자 왔다
그러나 ‘괜히 왔어, 괜히 왔어’…

난 요즘 일본의 ‘나라’라는 아주 작은 도시에서 지낸다. 그동안 정말 정신없이 살았다. 폼 잡고 다니느라 도무지 공부를 안 했다. 나름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원고지 몇 장 쓰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생각이 넘쳐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샘물처럼 쉴 새 없이 흘러나와야 글 쓰는 행복이 있는 거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으면 쥐어짠다는 느낌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서 당분간 공부만 하겠다는 각오로 ‘다 때려치우고’ 안식년을 신청했다. 그리고 지금 일본에서 ‘혼자’, ‘고독하게’ 지낸다. 이럴 때는 ‘다 때려치우고’, ‘혼자’, ‘고독하게’라고 이야기해야 폼 난다.

아, 그런데 잘못 생각한 것 같다. 너무 힘들다. 한달 넘도록 한국말 한마디 못하고 산다. 정말 미치겠다. 온돌이 없는 일본은 방바닥이 진짜 차갑다. 발이 너무 시리다. 저녁 내내 두세 평에 불과한 차가운 방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며, ‘괜히 왔어, 괜히 왔어’ 하며 혼자 징징거린다. 정말 독방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언젠가 인터뷰했던 신영복 선생이 기억났다. 도대체 무슨 희망으로 무기수의 삶을 견딜 수 있었냐고 물었다. 그가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쓴 편지는 출소한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누가 무기수의 글을 본다고, 그토록 정갈한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표현할 생각을 했느냐는 거다.

신영복 선생은 오히려 그래서 글에 더 몰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출소 날짜가 정해진 유기수들은 오직 감옥에서 벗어나는 그날만 기다린다. 그들에게 현재는 미래를 위해 지워나가는 날들일 뿐이다. 그러나 무기수들에게 미래는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괴롭고, 견디기 힘들어진다. 현재의 삶에 끊임없이 의미 부여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쓰고, 사색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에 의미 부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은 나중에 아주 우연히 나온 것이라고 했다. 나 같은 어설픈 작가는 미래의 책을 쓰기 위해 현재를 참고 견딘다. 순서가 정반대다.

목적이 아니라 과정을 산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항상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여기와 현재’를 살 뿐이다. 물론 목적이 현재를 이끈다. 그러나 목적에 의해 과정이 생략된 삶을 사는 것처럼 불행한 경우는 없다. 군대 간 이들은 제대할 생각만 한다. 공부하는 이들은 학위 받을 생각만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제대하고, 학위 받는다. 그러나 학위를 따고, 제대한 이후의 삶만 내 삶이고, 그때까지의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게 제대하면 뭐하고, 그렇게 학위를 따면 뭐하는가. 그 아름다운 젊은 날은 그렇게 맥없이 사라졌는데.

발전과 성장의 모더니티에 속은 거다. 모더니티는 목적만 이야기하지, 현재를 사는 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더니티가 만들어낸 가장 큰 거짓말은 ‘청소년은 미래의 희망’이다. 그러나 그 청소년은 절대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없다. 그 미래에 가면 더는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자고,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이라고 그토록 중얼댔던 거다.

아니다. 우리는 과정을 산다. 현재를 살아야 미래가 오는 거다. 오늘을 제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삶이 날 속이지 않는다. 이 낯선 외로움을 통해 내가 요즘 뼛속 깊이 깨닫는 교훈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폼 나게 정리해 봐도 ‘괜히 여기 온 것 같다’는 생각은 잘 안 바뀐다. 발바닥 시린 일본에서는 몸보다 마음이 더 춥다.


출처 : http://www.hani.co.kr/arti/SERIES/253/51770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