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사는 거 정말 힘들어, 거지 같아,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 고생이야"라고 종종 내뱉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죽음이 눈앞에 왔을 때 안도해야 합니다. "아, 이제 죽을 수 있네" 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불평하던 사람들이 시한부 선고를 받는 순간 삶에 대한 애착을 가져요. 삶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실상 죽음을 반기지 않는다는 건 삶의 문제가 아니라 내 태도의 문제였다는걸 증명해주는 거예요. 조건은 바뀐 게 없잖아요.
만약에 삶이 목적이 없는 것이었다면 죽음에 이르러서 갑자기 삶이 더 좋아질 리 없어요. 그런데 왜 삶이 더 좋아지느냐, 그건 동일한 삶인데도 내가 더 이상 못 산다는 것 때문에 좋아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죽겠다, 힘들다 하는 건 영위하고 있는 삶의 일상적인 형태에 흥미를 잃었다는 거죠. 아침에 아이들 이부자리 개주는 행복을 우리는 잊고 있다는 거죠. 아침 먹고 출근하고 일하고, 점심먹고 싸우기도 하고 저녁때 사람 만나고 집에 가는, 이런 사소한 것들에 대해 '아우, 지겨워' 라고 했는데 내가 내일 죽는다? 그럼 다 그리워지는 것이거든요. 삶의 조건들은 동일해요. 그러니까 결국 흥미를 잃은 것은 삶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태도라는 의미입니다.
- 박웅현, <책은 도끼다> 中
박웅현, 그는 여행하듯 삶을 바라보라고 강조합니다. 파리가 아름다운건, 3일밖에 못 보기 때문이라는거죠. 그래서 우리의 일상을 매일 보는 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볼 지 모르는 여행지에서처럼 생각해보라고 권합니다. 그럴 때 애틋해지고 그 때 삶의 의미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요.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죠. 오늘 아침에 옛날 사진들을 쫙 보다가 지금은 고3이 되어버린 사촌동생의 어릴 때 모습을 보는데, 너무 뭉클하더라고요. 그 녀석이 어렸을 때 제가 정말 정말 예뻐했었거든요. 다섯살 쯤 되어보이는 모습으로 웃고있는 사진을 쳐다보면서, 이 순간이 이렇게 금방 지나버릴 줄 알았더라면, 이렇게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걸 알았더라면, 아이였을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걸 싶더라고요.
시간은 흐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죠. 이 시간이 영원히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정말이지 잊고 있었던 삶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오지 않나요. 20대 후반이 되니까, 20대가 정말 소중한 걸 알겠어요. 나라는 인간은 계속 살아가겠지만, 나라는 인간의 20대는 절대로 다시 오지 않을테니까. 이 순간이 내 인생에 너무너무 소중한 하루하루라는걸 알 것 같아요.
오늘 하루, 내가 만나는 사람,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읽는 책, 내가 보는 영화. 그 어느것하나 당연하게 주어진것이 없습니다. 죽기 전 마지막 사람, 마지막 음식, 마지막 책,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것이구요. 우리는 삶에 너무 쉽게 불평하고 있지만, 실은 삶 자체가 나빠서라기 보다는 너무나 삶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박웅현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 여기, 내 삶에 감사해봅니다. 삶은 정말이지... 매일매일이 그 자체로 선물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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