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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갑추구실/좋은생각 : 강연 및 인터뷰

[한겨레 청춘상담앱]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by 김핸디 2012. 5. 20.

 

[한겨레]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들의 희망 메시지 "청춘의 고민과 방황은 헛된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되는 것은 '
가문의 영광'이다. 이른바 '출세'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순간 돈과 권력을 한꺼번에 쥔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만큼 욕도 많이 한다. 그간 미디어에서 법조인을 대부분 부정적으로 그려왔던 탓도 있다. 최근 영화 <도가니>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조인들은 돈과 출세를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들로 나온다.

모든 법조인이 '영혼'을 파는 것은 아니다. 이번 '청춘상담 앱'의 주인공인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변호사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들은 쭉쭉 뻗은 새 영동고속도로 대신, 옛 대관령길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변호사 그룹으로 출발해 여성,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속칭 '돈 안 되는' 쪽의 법률적 변호를 해왔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출세'와는 전혀 관련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공감' 변호사들을 만났다. 총 8명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지만 염형국·윤지영 변호사가 대표로 청춘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참여한 청년 인터뷰어는 '공감'에서 인턴활동을 하고 있는 미래의 법조인들이다. 청춘들에겐 '성공'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기회이기도 했다.

진행·정리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법률회사 그만둔 뒤 수입은 4분의 1 토막

변수양(이하 변)

공익 변호사라는 다소 생소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염형국(이하 염)

처음 사법시험을 보리라 마음먹었을 때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어요. 법대를 진학했고, 다들 시험공부를 하니 저도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어떻게 보면 고민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시험을 붙고 나니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변호사는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일까라는 것이었죠. 애초 제가 생각했던 직업 선택의 제1기준은 저 자신이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것에 맞춰보니 공익 변호사라는 직업이 제게 딱 맞더라고요. 물론 큰 로펌에서 일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보람된 길은 이쪽이더라고요.

윤지영(이하 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학창시절이었던 거 같아요. 막연하게 사회의 약자, 소수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학에 진학할 때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더니 부모님께서 "돈이 없으면 그런 일을 하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돈이 없어도 자신의 재능만으로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는 직업은 변호사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법대에 진학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그 당시엔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웠어요. '빚'도 많았고요. 하하. 일단 로펌에 들어가 돈을 벌면서 제 주변의 빚부터 청산했어요. 그러고 나서 공감으로 온 거죠.

강성대(이하 강)

대부분 사람들은 사법시험에 합격하면 권력이나 돈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변호사님들 주변에서도 그런 기대가 있었을 거 같아요. 공익 변호사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가 없었나요?



전업 공익 변호사를 하겠다고 하니, 처음엔 만류가 많았죠. 이런 직업이 한국 사회에 없었잖아요. 하지만 저의 의지가 확고하니 한사코 말리진 않더라고요. (웃음) 저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라'고 말해요. 부모님이 원하고, 부인이 원하고, 가족들이 원하는 길은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닐 수 있어요. 가족들은 행복한데 본인은 불행할 수 있거든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 해도, 개인적으로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닐 수 있어요.



대형 로펌으로 갈 때는 주변에서 다들 찬성했죠. 그런데 거기서 나올 때가 문제였죠. 하하. 그래도 다행이었던 게 만류하는 분들이 없었어요. 어머님이 박원순 변호사의 팬이시거든요. 그분이 만드신 곳이라고 하니까 어머님이 "그러면,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이 대목에서 기자는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질문을 던졌다. "로펌 다닐 때랑 수입 차이가 얼마나 나나요?")



(단호하게) 제 손에 딱 들어오는 걸로 따지면, 4분의 1이에요.

일동

(침묵) 우람(이하 우) 제 친구 중엔 학업을 포기하고 가족 부양을 위해 2년째 일만 하는 친구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우직하게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을까요?



대부분 청춘이 힘들어하는 것은 남들이 가려는 길을 가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로스쿨, 의학전문대학원, 대기업, 언론사 등 사회에서 알아주는 곳에만 가려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더 좌절을 많이 하는 거죠. 문은 좁은데 자꾸 그쪽으로만 들어가려고 하니까요. 본인이 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스스로 행복하거나 가치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는 거 같아요. 남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을 가면 문은 넓어요. 시야를 넓히세요. 지위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래 붙들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두 분 청춘 때는 어떠셨나요. 기억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제가 지금도 쓰는 아이디가 있어요. '
아웃사이더.' (웃음) 20대 초중반 때까지 아웃사이더였어요. 학교 언저리만 돌아다녔던 거 같아요. 법대 수업은 열심히 안 듣고 사회대에 들락날락했어요. 방황의 시절이었던 거 같아요. 어디에서도 주류가 되지 못한다는 생각?



저도 사실 너무 힘들게 지냈어요.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 입학해서 사법시험 준비하는데,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삶의 이정표를 정하고 가치관을 확실히 정립해야 할 거 같은데, 1학년부터 너무 일찍 시험 준비를 한 거죠. 지금은 그때보다 더 힘든 세상이잖아요.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할 거 같아요. 오히려 고민이 없어서 힘든 것일 수도 있어요. 막연하게 학점, 스펙 등에 매달리니 더 힘든 거지요. 고민을 하는 동안에 개인과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는 것이고요.



공감에서 하는 일이 하위 1~2%의 사람을 위한 일이잖아요. 경험에서 나오는 '인권 감수성'이 없으면 이런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아요.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소수자 인권 문제 가운데 장애인 인권 쪽에 관심이 많아요. 특별한 경험이 있는 건 아니에요. 저는 자신의 위치가 아닌 상대방의 위치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소수자의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으니, 이들이 왜 지원을 받아야 하는 건지 공감할 수 없는 거죠. 저도 처음부터 인권 감수성이 투철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공감할 수 있는 자세면 충분해요. 마음이 열려 있으면 누구나 인권 감수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커다란 경험이 꼭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대학 때 좋아하던 선배가 노동단체에서 일을 했거든요. 그 선배의 소개로 사법시험 합격 뒤 그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됐어요. 처음엔 내심 두렵기도 했죠. 하지만 막상 경험을 하니 '이런 곳이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눈이 떠지더라고요. 우리가 경험하는 게 별게 아니라도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주변을 보면 대학생활은 두 개로 압축돼요. 학점, 그리고 토익.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져요. 사회로 내쳐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두려워요. 청년들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요?



거창한 마음을 갖고 투신을 해서 나중에 열정이 사그라지는 거보다 정말로 오래 붙들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거 같아요. 사소한 것부터 출발하는 거죠. 자신의 스펙을 만들려고 사람에게 접근하지 말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계를 형성하는 게 실마리일 거 같아요. 취업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거보다 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것도 작은 출발점이지요.



뭐든 상관없어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정답이란 없어요. 운동 좋아하는 친구는 운동을 열심히 해보세요. 여행을 좋아하면 여행을 열심히 해보고요. 사소한 경험이 결코 '별게' 아니에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느끼는 건데, 제가 즐거우려고 선택했던 사소한 경험보다는 거창한 사회활동 경험이 우대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자기가 당시에 의미있었고 나의 삶을 사는 데 성장의 계기가 됐다면, 그 '사소한' 경험도 자기소개서에 담을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오히려 진정성이 있는 거고요. 남의 기준을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이탈한 자가 더 많이 본다



지금까지 7년 동안 인턴을 쭉 봐오셨는데 기억나는 인턴이 있으신가요?



특이한 인턴이 한 분 있었어요. 굉장히 염세적인 친구였어요.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는 걸 유예중인 상황이었는데, 변호사엔 뜻이 없고 대출을 받아 빚 갚고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그랬던 그 친구가 인턴 수료하면서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지금에야 변호사가 돼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여러 일이 있었겠지만 가장 보람찼던 경험과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이었나요?



최근 필리핀 출신의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의 '출국 명령 취소판결'이 생각나네요. 이번 판결처럼 '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힘들었던 순간은, 사실 매순간 힘들어요. 하하. (잠시 생각 뒤) 소송에서 이겨도 무언가 바뀌지 않을 때, 이 싸움이 쉽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힘이 빠지죠.



소송에서 승소할 때도 기쁘긴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제가 하는 일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들이 세상에 알려진다든가, 동참하고 싶다고 직접 연락이 오는 순간이 가장 행복해요. 역시 힘든 것은 기득권층의 저항에 대응하는 일이지요. 하던 일이 좌초되는 경우도 있고요.



공감 같은 단체가 많지 않잖아요. 앞으로는 더 많이 생길 거 같은데, 공익 변호사 그룹이 많아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요즘 청년들이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 도전하는 것에 주저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법률 쪽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 그렇고요. 기존 제도 안에서 사고하는 게 너무 익숙한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법이나 제도는 누군가 만든 것이거든요.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에요. 기존 틀에서 생각하면 경쟁만 심해져요. 공익 영역도 개척할 부분이 많아요. 공감 같은 모델이 10개 이상은 나와야 한다고 봐요. 그만큼 좀더 간절하게 원하고 분야를 찾으려는 도전을 하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지금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청춘 후배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란 시를 좋아해요. 거기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오죠.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저는 이 구절을 신념으로 여기고 살아왔어요. 이탈한 자만이 남들이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다고 봐요. 또 중요한 한 가지. 부모님에게 효도해야지, 주변 사람들에게 잘해야지 등의 의무감으로 살지 마세요. 부모님의 최대 행복은 자식이 행복하게 사는 겁니다. 자기가 행복해야 남도 행복한 거예요.



대기업, 변호사, 의사 등 목표로 한 직업을 얻었다고 가정을 해보세요. 그 뒤엔 어떡할 건가요? 직업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살 건가요? 자기가 어떻게 해야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고민을 해보세요. 고민의 시간이 길어져도, 크게 뒤처지는 게 아니니 걱정 마세요. 각자의 삶을 사는 거죠. 모두 다 똑같이 100m 달리기를 하는 게 인생이 아닙니다.

 

진행·정리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