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언제나 젊은 가수 김창완이 권하는 '자존감으로 가득찬 인생살이'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고/ 대학을 나오고 직장엘 다녀도/ 아무것도 모르겠네 정말 모르겠네/ 한다고 하는데도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 언제 내가 어른이 돼버린 걸까/ 차라리 내가 사라져버리면 어떨까 지금/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 사라져라."(김창완밴드 <단 잇>(Darn it) 중) '김창완밴드'의 이름으로 최근 새 앨범을 발표한 가수 김창완(57)씨를 세 명의 청춘과 함께 만났다. 9월5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에스비에스(SBS) 본관 1층에서 만난 그는 흰색 티셔츠에 샌들을 신고 가볍게 걸어왔다. 록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박종현(29)씨,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사회적 기업 '유유자적 살롱'의 이충한(34) 대표와 고서희(24) 외부협력팀장은 마치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이들처럼 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부터 '어떻게 음악을 해야 할지'까지 진지한 대화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이어졌다.
"나를 도구화하지 않겠다"는 다짐
박종현
김창완밴드 새 미니앨범 내신 것 축하합니다. 노래를 듣다 보니 새로운 맴버도 있던데 어떻게 밴드의 역량을 맞추시는지 궁금하더라고요.
김창완
이번에 염민열이라는 걸출한 88년생 기타리스트가 합류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음악에 꼭 필요한 친구죠. 밴드는 개인적인 역량이 핵심이에요. 내가 작곡을 했다고 해서, 리더라고 해서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록은 '태도'(애티튜드)라는 말이 있잖아요. 각자의 음악적인 태도, 철학적인 태도 이런 것들이 모여 표현되는 거죠. 그걸 꼭 음악이라고 포장할 필요도 없는 거고요.
이충한
타이틀곡인 <단 잇>의 가사는 그 내용만으로 이번 '청춘상담 앱' 코너를 대변하는 것 같아요.
고서희
별생각 없이 사범대에 진학했습니다. 선생님을 하려다가 안 돼서 음악기자 일도 해보고 축제 기획도 해보고 장사도 해보다가 지금은 사회적 기업인 '유유자적 살롱'에서 은둔형 외톨이 청소년들에게 밴드 음악을 가르치고 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느라 머뭇거리며 시간만 흘려보내서 괴로운 청춘들이 많습니다.
김창완
내가 청춘에 했던 고민을 여러분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해요. 1970년대 말,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도 청년 실업이 문제였고 구직난도 심각했습니다. 다들 매우 불안했죠. 근데 지나고 보니까 그런 고민, 안 할 수는 없지만 그런 불안만을 생각하는 것은 인생을 아주 편협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기성세대가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가치들로 세상을 채워놨잖아요. 유명해지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하는 것들인데, 이런 쓸데없는 가치들이 청춘의 목표가 되다 보니 자기 내부에 갖고 있는 희망과 충돌하게 되고 분열증세가 나타나는 겁니다. 사회가 안 그래도 불안한 청춘을 더 위태롭게 만들고 있어요. 알껍질을 깨고 나와야 할 청춘들에게 어른들은 그 껍질을 더 두껍게 칠하면서 사자가 제 새끼를 벼랑에서 민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는 꼴입니다.
고서희
선생님은 어떤 방식으로 진로를 결정했나요?
김창완
젊은 시절, 단 하나 스스로 다짐했던 것은 "내 인생을 내 스스로 도구화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죠. "큰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의 경구에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었는데요, 많은 경구는 나를 좌절시키기만 했지 희망을 준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경구를 나는 혐오해요. 자존감이 생긴다는 것, 자기가 스스로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어떤 꿈보다 위대하죠. 내가 뭘 원하나 생각해보니 어릴 때 막연히 음대나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거든요. 내 스스로의 가치를 추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게 됐습니다.
고서희
도구가 된 걸 늦게 깨닫게 되면 어쩌나요? 뒤돌아보는 것도 고통스럽잖아요.
김창완
그래도 어떻게든 결별을 하고 자기 도구화 하는 것을 벗어나야죠. 자기를 노예화하지 말고 자기 자존감을 찾는 게 우선이지요. 사회는 늘 개인에게 "너 혼자 사는 세상 아니잖아"라며 보이지 않는 폭력을 휘두르게 마련이죠. 몽상가라 할지 모르지만, 사회가 개인에게 뭐 술 한잔이라도 샀습니까? 사회에서 시키는 대로 살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권리를 개인에게 돌려줘야 해요.
이충한
한국의 50대, 많은 것을 이룬 분들은 곧잘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거기에 청춘들은 주눅이 들곤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룬 것도 많으면서 별로 자기 자랑을 하지 않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김창완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는 책인 <도덕경>을 보면 뭘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하지 말라는 대목이 있어요. 그 사람을 칭찬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그 사람처럼 되려고 하니까 그런 거죠. 다 각자의 개성이 있고 자기가 잘하는 것이 따로 있는데 요즘 세상은 자, 스티브 잡스를 봐라, 요즘 신문 도배하는 안철수를 봐라, 생쇼를 한단 말이에요. 그 사람이 잘하는 건 잘하는 거지만, 다 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좋은 게 아니거든요. 내 자랑 하면 나처럼 되라는 거고 그건 자가당착입니다.
이충한
자녀분도 저희 또래라고 들었는데요, 선생님은 교육철학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김창완
우리 아이가 80년생이니까 여러분 또래죠. 자녀교육,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안 간 눈길을 아이 앞에 펼쳐주고 싶은 게 내 꿈이었어요. 아이에게 어떻게 살라는 얘기, 절대 안 합니다. 그게 내가 아이 키우는 방법입니다. 이건 후배들에게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후배 뮤지션에게도 아무도 안 밟은 음악세계를 선물하고 싶지, 내가 이러니까 이런 식으로 해라, 이렇게 하면 히트할 거다, 이런 어리석음 전달하고 싶지 않아요. 음악 해보면 알지만 100곡을 듣는 것보다 한 곡을 만들 때의 희열이 있는데 이건 만드는 사람만이 아는 것이거든요. 그 결과물이 좋고 나쁘고는 문제가 아니에요. 그 희열이 있으니 직접 경험해보라는 겁니다.
이충한
노래하고 연기도 하고… 선생님이야말로 아무도 안 간 길을 간 건데 외롭고 두렵진 않았나요?
김창완
나는 의외로 칭찬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렇게 칭찬받아온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죠. 그런데 혹여 칭찬이 좀 부족했더라도 내 길을 갔을 겁니다.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칭찬 때문이 아니라 자존감만으로도 걸어나갈 수 있죠.
이충한
요즘 넘쳐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바로 현재 기성세대가 청춘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우리 기준에 안 맞으면 능력 없는 거야" 이런 식이죠.
김창완
지금 있는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매우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난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리 기를 쓰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지…. 그냥 매일매일 만들어지는 졸작들, 만들고 좌절하는 음악, 실망스러운 문학작품, 그림들… 그게 다 그 자체로 예쁜 거거든요. 그걸 되지도 않는 잣대로, 박수소리 하나만 갖고 잣대를 매겨서 누굴 상 주고 떨어뜨리고. 그런 걸 즐기는 사람들의 잔인한 속성을 부추겨서 장사를 해먹는 건 나는 반대입니다. 잘하는 애 칭찬하지 말라는 것에도 배치될 뿐 아니라 진짜 음악·예술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상품화하는 거니까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그린 그림을 봐봐요. 어마어마하게 이쁩니다. 우리 어렸을 때 되는 대로 엄마·아빠 얼굴 그려놓고 여기 초록색을 칠해도 될지 불안해하다가 칠하고 나서 좋아하고 이런 기억들 있잖아요. 왜 그런 건 다 잊어버리고 점점 바보가 되는 건지, 사랑도 하고 배려도 하면서 자랄수록 아름다워져야 하는데 바보 같은 어른들 때문에 청춘들이 너무 불쌍합니다.
이충한
갈수록 '오디션'의 압박이 심해져요.
김창완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무하다 보니 이제는 개개인들이 다 오디션을 받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어요. 세상이 다 오디션중인 거죠. 이게 무슨 삶이고 인생입니까? 나한테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를 해달라는 제안이 왔는데 다 쫓아냈어요. 이제 세상이 갈수록 교활한 오디션을 합니다. 절대 현혹되지 말고 삶의 참뜻을 생각하며 '유아독존'적으로 살아가길 바랍니다.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박종현
앨범 작업을 하다 보면 외부의 기준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만들고 싶은데 "이렇게 해도 되나"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 꼭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의 노래 <모자와 스파게티>,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팩스 잘 받았습니다> 등을 듣다 보면 놀라요. 충격적이고, 정상적인 발상이 아닌데 모두 음악이 됐잖아요. 자유로워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책임에 억눌리곤 하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돼요.
김창완
<팩스 잘 받았습니다>는 진짜로 쓰레기통에서 '팩스 잘 받았습니다'라는 글씨를 보고 쓴 거예요. 실화죠. (웃음) 책임은 자기 삶에 지는 거지요.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작업을 해버릇하는데 이는 좋은 태도가 아니에요. '대중'이란 건 없어요. 너와 내가 있는 거죠. 대중은 상업주의가 생기면서 나중에 생겨난 괴물이에요. 어떤 가수들은 표절을 해서 노래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수백만한테 노래를 알리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내가 너에게 음악을 들려준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요즘에는 휴대전화 새 모델을 생산할 때 출시 뒤 몇 대가 소비될지도 예측이 가능하대요. 대중의 욕구를 계산하는 거죠. 근데 예술가가 왜 그따위 짓을 합니까?
이충한
무거운 책임감 속에 우울해하고 스스로 소외되는 이들이 많습니다.
김창완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께서 저희 어머니랑 점심을 드시다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어요. 저희 어머니가 "아유, 애들한테 신세 안 지고, 피해 안 주고 곱게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어요"라니까 박 선생님이 "때 되면 다 신세도 지고 추한 꼴도 보이고 그렇게 떠나는 거지요"라고 하셨대요. 이 얼마나 포용력 있는 이야기입니까?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죠. 누구나 살다 보면 더러운 꼴 볼 수 있고 다 그렇게 사는 것이죠. 그런 걸 뭐 되바라지게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추한 꼴 안 보여야 된다며 바동거리는 자세가 히키코모리를 만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거죠.
이충한
제가 가르치는 히키코모리 청소년들에게도 "미안한 짓 좀 해도 된다"라고 얘기해주곤 하는데 그게 쉽지 않나봐요.
김창완
새로 산 자동차나 휴대전화, 처음에는 흠집 안 가도록 애지중지하죠. 근데 이게 딱 흠집이 나잖아요? 그럼 느낌이 달라져요. 상처난 내 휴대전화가 굉장히 애착이 가게 되죠. 흠집 하나 없는 휴대전화에 더 애착이 갈 것 같은 건 착각이에요. 모든 게 그렇죠. 너와 나의 사이도 그렇고, 상처난 내가 더 멋있고 소중한 것이에요. 내가 아무 상처 없이 순결하다, 그거는 별로예요. 기업들이 가상 애인을 출시한다고 해봐요. 처음에는 매력있는 사람만 만들다가 궁극에는 질투, 불안감, 자학 이런 몹쓸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될 거예요. 결국에는 현실에 있는 웬수 같은 애인이 최상품으로 등장하겠죠.
박종현
오토바이 타는 거 재밌으신가요?
김창완
6년 전부터 타기 시작했는데 너무 좋아요. 부릉, 하면 강원도 한바퀴 돌고 부르릉, 하면 속초며 서산이며 국도 타고 못 가는 곳이 없죠.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어요. 마치 기름칠한 멧돼지한테 매달려가는 기분이었죠. 근데 그 짜릿함에 익숙해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죠. 독일어로 '
박종현
부모님들이 제일 걱정하는 게 자식이 음악한다고 하는 거랑 오토바이 탄다고 하는 거라는데 선생님은 그 둘 다를 하시네요.
김창완
그런가요?(일동 웃음)
박종현
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김창완
팀이 정비가 돼서 진짜 아주 사이키델릭(psychedelic)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젊은이들이 음악도 사고도 디지털적으로 하는데 그런 걸 대단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 난 불만이에요. 아날로그적인 세상이나 그런 사고를 어떤 방식으로든 보여주고 싶어요.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요.
진행·정리 임지선 기자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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